20.09.11 13:48최종 업데이트 20.09.1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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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우스 다코타 주 스터지스에서 열린 스터지스 모터 사이클 랠리. 2010.8.9 ⓒ 연합뉴스

 
[기사 수정: 12일 오후 3시] 

전에 살던 미 중북부 노스다코타에선 매년 여름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을 이루곤 했다. 웬만한 자동차보다 비싼 유명 오토바이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했는데 대부분은 사우스다코타에서 열리는 모터사이클 랠리 참가자들이었다. 매년 평균 50만 명이 모인다는 이 행사는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 내 모든 이벤트들이 취소된 올해에도 주지사의 옹호 속에 성황리에 개최됐다.


행사가 열리는 지역의 주민 60%가 반대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사우스다코타 모터사이클 랠리는 또 다른 기록 하나를 차지할 전망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코로나 바이러스 슈퍼 확산 이벤트로 말이다. 

8억 달러 vs. 122억 달러

"우리는 건강하게 모터사이클 랠리 행사를 치를 수 있습니다. 사우스다코타는 더 많은 이들이 행사에 오시길 바라고 있지요. 우리 주 경제는 많은 이들이 방문할 때 더 큰 이익이 있을 테니까요."

트럼프 대통령 재선 경선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던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가 폭스TV에 나와 8월 7일부터 열리는 모터사이클 랠리에 올해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달라고 홍보했다. '스터지스 모터사이클 랠리(Sturgis Motorcycle Rally)'는 매년 수십만 명의 바이커가 모여 이벤트를 치르는 여름철 대규모 행사다.

팬데믹 시기에 위험하지 않겠냐는 우려에 주지사는, 7월 4일 자신이 주관해 러시모어 산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를 언급했다. 2018년 주지사 당선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모시기' 위해 애쓰다 올해 기어이 성사시킨 행사였다. 화려한 불꽃놀이 속에 미국 역대 대통령의 큰바위얼굴을 뒤로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이 함께한 이 행사장에 초대됐던 8000여 명의 관객들 모두, 아무렇지 않았다고 장담한 것. 당시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가한 참석자 대부분은 노 마스크에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행사 직후 코로나에 감염됐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우스다코타는 그보다 더 큰 이벤트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주지사가 홍보한 스터지스 모터사이클 랠리는 인구 6600명의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유서 깊은 행사다. 올해 80회인 이 대회는 매년 8월 초 열흘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연간 약 8억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줘 인구 88만의 사우스다코타로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 수 있는 대회다. 

올해 참석한 약 40만 명의 바이커들 모두 예외 없이 노 마스크로 자유롭게 술집과 식당을 이용했다. 대다수 지역민들은 행사기간 중 다른 지역에 피해 있거나 바깥출입을 삼갔다. 그러나 참가자 중 한두 명이라도 확진자가 있다면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가 2020년 8월 26일 워싱턴DC에서 열린 2020 공화당 전당대회 셋째 밤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지난 8일, 랠리 당시 스터지스 시에서 수집된 트래픽을 분석한 결과가 발표됐다. 독일 노동 경제연구소(IZA)는 랠리 기간 동안 도시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추적해 이벤트 이후 감염률 증가를 기반으로 한 감염 가능성을 추정해 발표했다. "비거주자의 스마트 폰 움직임"과 "레스토랑, 바, 소매점, 엔터테인먼트 장소, 호텔 및 캠프장에서 각각 크게 증가한 트래픽"을 행사가 열린 10일 동안 휴대폰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것.  

이 분석에 의하면 집회 참석자 대부분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 등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권고한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조치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40만 명의 바이커들이 사우스다코타 작은 마을의 술집과 식당에서 열흘 동안 지내며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고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행사 후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사례의 26만6796건이 이 랠리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 저자는 46만2182명이 참가한 스터지스 모터사이클 랠리로 약 122억 달러의 공중 보건비용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사우스다코타가 얻은 수익 8억 달러의 15배를 미국 국민들이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참가를 독려했던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이 결과를 불신했다. 

"이 보고서는 과학이 아닙니다. 이건 허구입니다. 학술연구라는 미명 아래, 랠리에 참석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행사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입니다."

정확한 확진자 수를 알기 위해선 독립기념행사와 모터사이클 랠리에 참석한 이들의 명단을 주에서 공개하는 게 가장 빠르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코로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우스다코타 랠리에 참가한 이들은 언론 인터뷰에 당당했다. 그들의 말엔 공통점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별 게 아니다." 
"팬데믹은 개개인을 통제하려는 음모다."
"마스크의 효과는 과장됐다."
"이미 백신이 준비됐지만, 트럼프를 떨어뜨리기 위해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정부의 방역망을 조롱하는 이들의 주장은 인터넷에 떠도는 큐아난(QAnon)의 음모론과 흡사하다. 큐아난은 민주당과 유명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가진 인터넷 음모론자들이다. 그들의 믿음 속에 CDC와 FBI는 테러단체일 뿐이고 빌 게이츠는 바이러스를 퍼트려 세계를 장악하려는 악당이다. 반대로 이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사탄을 숭배하는 엘리트 소아성애자들과 비밀 전쟁을 벌이는 영웅이다. 트럼프에 대한 공격은 정부 내 포진되어 있는 '딥 스테이트'의 음모이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동 성매매 은폐를 위한 위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에나 소수의 음모론자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양분 역할을 해 주는 것은 공신력 있는 이들의 응원일 것이다. 8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의 실제 숫자는 공식 숫자의 극히 일부라는 메시지를 리트윗 한다. 미국 660만 확진자, 19만 사망자 숫자가 실은 매우 과장된 숫자라는 것이다. 이 트윗은 큐아난 메가 전파자의 것이었고 팩트체크에 걸린 대통령의 트윗은 곧 삭제됐다. 대통령이 리트윗 한 이는 트럼프를 유명 정치인과 언론인을 상대로 아동 인신매매 싸움을 이끄는 이로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큐아난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 4월 마피아 보스 살인 혐의로 체포된 이와 조 바이든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이 모두 큐아난 지지자로 밝혀졌다. 2016년엔 워싱턴 DC에 있는 피자가게에 총기를 난사한 남자가 구속됐는데 가게 지하에 납치된 아이들이 있다는 큐아난의 대표적 음모론을 믿는 이였다. 이 밖에도 웨이페어(wayfair)라는 인터넷 가구회사에서 어린이를 밀매하고 있다는 주장도 오래된 큐아난의 음모론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 집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QAnon'을 뜻하는 Q 사인을 들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 2018.8.2 ⓒ 연합뉴스

문제는 이들이 인터넷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지난달 조지아 출신의 큐아난 지지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Marjorie Taylor Greene)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다. 보수적 지역이니만큼 11월 의회 선거는 가뿐히 통과해 의회에 진출할 것이란 예상이다. < AP통신>은 다음 주 펜스 부통령과 저명한 공화당원들이 참가할 예정인 몬태나 주 모금 행사의 호스트가 큐아난 음모 이론을 공개 지지하는 부부라고 보도했다.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공화당 주요 인사들과 큐아난의 연루가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해악을 공유한 SNS에선 최근 적극적으로 계정을 폐쇄 중이다. 트위터는 다수의 대형 큐아난 계정을 삭제했고 페이스북도 수많은 큐아난 그룹을 없앴다. 수천 개의 큐아난 인스타그램 페이지도 삭제됐고 틱톡은 음모론과 연계된 해시태그를 차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페이스북 그룹 폐쇄 후 관련 다른 그룹의 회원이 600%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음모론을 잠재우는 방법 

"전염병 앞에서 음모론은 명령되고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지향합니다. 사회 기계가 고장 나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불충분할 때 음모론이 번성하지요." 

영국 BBC는 9월 3일 기사에서 코비드 음모론자들과 큐아난 군중과의 상호 교집합이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 설명한다.

"(큐아난 음모론자들이 제일 앞에 내세우는) 아동학대는 논쟁의 여지 없이 악한 것이죠. 그 바탕 위에 설명되는 이론은 절대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줍니다." 

심리학자 조반 바이포드는 큐아난의 새로운 슬로건 '#Save the Children'(#SaveourChildren)의 생성을 설명한다.

"위험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잠재적 관객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모론을 고립시키고 억제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난무하는 음모론의 해악을 걱정한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 앞에서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은 우리의 건강과 사회를 위협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성과 과학이 음모와 무지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11월 선거가 더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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