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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교도=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신조 총리의 후임을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신조 총리의 후임을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발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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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총리를 목표로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을 두고 흙수저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존재한다. 본인의 주장과 달리 그가 빈농 출신의 야간대학 졸업자가 아니라 부농 출신의 주간대학 졸업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학 정치학 교수가 쓴 <일본의 내일>은 "젊은 시절의 스가를 이야기할 때 곧잘 언급되는 것이 '자수성가' '갖은 고생'이라는 키워드다"라며 "그는 세습이 아니라, 지방에서 상경하여 몸뚱이 하나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한 뒤 집안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스가는 아키타현 오가치군 아키노미야촌에 있는 농사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가의 부친은 '아키노미야 딸기'의 브랜드화를 성공시킨 지역 유지였으며 오가치정 의회 의원과 유자와시 딸기 생산 집·출하 조합장 등을 역임했다."
  
아버지는 아키타현 오가치군 오가치정(町) 의원을 지냈다. 읍·면·동 의원을 역임했던 것이다. 위의 한국어 번역서에는 '농사꾼'으로 표현돼 있지만 부농·지역유지·지방의원·조합장 경력과 잘 어울리지 않는 용어다. 대학도 야간이 아닌 주간에 다녔으니, 올해 72세인 스가 요시히데가 청년 시절을 과장되게 포장한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흙수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말이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호세이대학 법학부 졸업 뒤 건설설비 회사에 들어갔다가 27세 나이로 중의원 의원 비서관이 된 이래, 그가 접한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들이다. 48세 때인 1996년 이후로 8선 국회의원(중의원)을 역임했으니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가문은 일반 대중보다는 부유하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정치권과 비교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정치권에서 보면 그는 핸디캡이 있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이라면 논란 됐을 '세습 정치인'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NHK를 통해 생중계된 회견에서 "사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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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일본 정치권은 세습 정치인이 특히 많은 곳이다. 물론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므로 완전한 세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재산·인맥·지역구 등의 세습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세습의 혜택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1924~1991) 전 자민당 간사장(사무총장)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아베 신타로는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아베 신조와 가쓰라 다로에 이어 역대 장수 총리 3위인 사토 에이사쿠 역시 아베 신조의 외종조부(외작은할아버지)이자 기시 노부스케의 동생이다.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가 친형제간인데도 성이 다른 것은, 이들의 아버지인 기시 히데스케가 처가의 성을 따서 사토 히데스케가 된 데서 비롯됐다. 사토 에이사쿠는 아버지의 새로운 성을 쓴 데 반해, 기시 노부스케는 아버지의 원래 성을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한때 아베 신조의 상관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역시 정치인 가문 출신이다. 한국인 박경원이 1928년 도쿄 비행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는 것을 보고 후원자로 나선 고이즈미 마타지로 체신대신이 그의 할아버지다.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지역구 의원 출신으로 중의원 부의장을 지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는 원래는 사메지마 준야였다. 사메지마 준야는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사위가 된 뒤 고이즈미 준야가 되고 장인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 7선 의원이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둘째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는 28세 때인 2009년 중의원에 당선돼 4선 의원이 된 뒤 지금은 환경대신 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4.15 총선 전에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아버지 지역구인 의정부갑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아빠 찬스 논란' '세습 논란'에 휩싸여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오늘날에는 커다란 문제가 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한국에서는 부와 권력의 세습이 점점 더 대중의 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국회의원직 세습이 별다른 일이 아니다. 이 나라의 의원직 세습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해 2012년에 <비교일본학> 제27집에 실린 이유진 숙명여대 교수의 논문 '일본의 의원직 세습에 대한 연구'는 이렇게 설명한다.
 
"1950년대 말부터 세습을 통한 의원후보 충원이 시작되어 1960~70년대에 세습의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세습의원은 1958년 전체 중의원의 약 7%, 자민당 의원의 12% 정도였다. 1980년 총선에서 세습의원은 135가문에서 140명, 1990년 총선에서는 140가문에서 145명이 탄생하였다고 이치카와의 연구에서 집계되었다. (중략) 1993년 총선에서는 세습의원이 자민당 의원의 40%, 전체 의원의 25%를 점했으며, 이를 정점으로 감소하여 이후 전체 의원의 20~25%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세습 정치인의 강세는 총리나 각료직에서도 나타난다. 2016년에 <일본연구> 제67호에 실린 한의석 성신여대 교수의 논문 '정치의 세습화와 일본의 세습 의원'은 이렇게 정리한다. 
 
"1986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30년간 18명의 총리가 재임하였는데, 그중 세습 정치인이 아닌 경우는 6명에 불과했다. 2015년 10월의 제3차 내각에서는 아베 총리를 포함, 19명 중 10명이 세습의원이었다." 

강경, 보수, 국가주의 성향

무사(사무라이)가 지배했던 1868년 메이지유신 이전의 일본은 조선에 비해 공직 세습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였다. 그런 문화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일본 국회(참의원+중의원)에 전이됐다. 일본에서 의회제도가 생긴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의회제도를 매개로 정치적 지배층이 세습 무사에서 세습 의원으로 변모하는 데에 대략 1세기가 경과한 것이다.

의원 세습과 관련해 그 1세기 동안에 주목할 만한 현상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 두 가지는 1945년 직후의 현상과 1990년대 초반의 현상이다. 1945년 패망 뒤에는 군국주의 당시의 사상(思想)경찰인 특별고등경찰(특고) 출신들이 의회로 진출하고 이들이 의원 세습화에 일조했다. 위의 한의석 논문은 세습의원들이 강경·보수에다가 국가주의 성향을 띠는 일이 많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습의원들의 국가주의 경향은 집안 내력과도 관련이 있는데,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에서 반대자를 탄압하던 특별고등경찰 간부 출신자의 후손들이 많다."

2005년 3월 17일에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신분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 홈페이지에 '국회의원이 된 특고 경찰들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교토시 독자의 글이 실렸다. 이에 대해 <신분아카하타>는 "전쟁 전에 특고경찰의 고문 등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사람만도 1697명 이상이 넘습니다"라며 이렇게 답변했다.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특고들은 전쟁 후에 약 5000명이 공직에서 추방되고 특고 부서에 배치된 하급 경찰은 직위를 잃었습니다만, 특고 관료들은 휴직으로 취급되어 다수가 복권되고 요직에 박혔습니다. 야나가와 다다시 씨의 조사에 의하면, 국회의원으로는 다음의 54명이 됩니다(<고발-전후의 특고 관료> 참조)."
 
<신분아카하타>는 위와 같이 말한 뒤 54명의 이름과 경력을 그 다음 부분에서 열거했다. 특고 경찰 출신들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의원 세습화에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미국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 구체제를 온존시켰기 때문이다. 특고 경찰들의 의원 세습화가 미국의 전략이 낳은 부산물이라는 점은 일본의 정치인 세습화에 미국도 어느 정도 일조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안정을 선호하는 유권자들

세습 의원들이 주축이 된 자민당은 냉전 질서가 동요하던 1990년대 초반에 장기집권 시대의 종말을 맞이했다. 1993년에 야당으로 전락하면서 자민당의 독주 체제는 끝났지만, 이 당의 의원 세습화 경향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2011년 한국일본학회 학술대회 때 나온 송창석 태광고등학교 교사(고려대 박사과정)의 발표문 '일본의 의원 세습 연구 1980~2005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세습의원의 수는 1993년 25.8%, 1996년 총선에서는 30.4%를 차지하는, 다른 시기보다 세습 의원의 당선이 유독 많은 시기였다. 이는 정치적인 불안정 속에서 유권자들이 정치적 불안감을 새로운 정치인에 의한 변화보다는 기존 정치인에 대한 기대로 (해소하려는 태도로) 일관하였고, 이는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는 유권자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정치질서의 동요를 초래한 탈냉전 현상이 의원 세습 문화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지만, 일본 유권자들이 안정을 추구한 결과로 의원세습이 유지됐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의원 세습 문화는 미국이 구체제를 비호해준 것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고, 탈냉전기 유권자들이 정치혁신보다는 정치안정을 선택한 것에 의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고해진 정치문화 속에서 스가 요시히데는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는 일 없이 중의원에 진출하고 내각에 진출했다. 이제는 총리직에까지 도전하게 됐다. 나카지마 교수의 표현처럼 "몸뚱이 하나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할 만한 여지도 없지 않다. 스가 요시히데가 흙수저로 자처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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