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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5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온 신자들이 성전에 입장하기 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성전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지난 5월 5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온 신자들이 성전에 입장하기 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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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가장 곤욕을 치르고 있는 곳이 종교단체다. 제1차 코로나19 사태의 주범이자 진원지로 신천지교회가 되면서 개신교계의 곤혹스러움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는데, 제2차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사랑제일교회가 지목되면서 다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에 따라 모임이나 대면 접촉을 조심해야 하는 비대면 사회에서 더욱 치명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곳이 종교계다.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하지 않는 한 이제까지의 종교 행위는 모임을 통한 친교였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로 회중(會衆, ekklesia)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대중 집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종교계를 곤란하게 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 하필이면 코로나19 사태 확산의 진원지로 종교 집회가 지목되면서 호된 비난의 대상이 되자, 각 종단에선 자의반 타의반으로 종교 집회를 중단하게 된다.

한국천주교회의 경우 창립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전면 중단시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도 전국 사찰의 법회를 중단하고 있다. 신천지교회와 사랑제일교회로 눈총 받고 있는 개신교계 역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온라인 비대면 예배로 대체하고 있지만, 일부 교회에서 '교회당 대면 예배'를 고집해 지자체와 갈등을 빚기도 하고 있다. 그럴지라도 대체적으로 종교계의 집회 중단 조치는 코로나19 사태가 호전될 때까지는 이어질 듯하다.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지난 2015년 2월 28일 화쟁문화아카데미가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한국불교의 깨달음 지상주의’를 주제로 연 제1회 종교포럼에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믿음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를 설파하는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  지난 2015년 2월 28일 화쟁문화아카데미가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한국불교의 깨달음 지상주의’를 주제로 연 제1회 종교포럼에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믿음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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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비대면 시대가 종교의 본령에 주는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성당이나 예배당에서의 미사와 예배 같은 공적 전례가 거의 멈춘 이 시대, 신앙생활이라 하면 그저 종교 집회에 함께 모이는 것으로만 여겼던 우리들의 전통적 신앙관을 한번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는 없다>의 저자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종교를 두 가지로 나눈다. 곧 심층종교와 표층종교다. 표층종교는 자신 육신의 안녕과 무조건적인 믿음을 중요시하고 신을 초월적 존재로만 보기에 자기 밖의 신을 찾지만, 심층종교는 새로운 나로 태어남과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범재신론(panentheism) 입장에서 신을 초월이자 내재적 존재로 보기에 신을 찾는 길이 곧 참된 나를 찾는 것이 된다.

심층종교에서는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 더 큰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궁극목표로 삼기에, 교리와 율법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표층종교완 달리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의식의 변화,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종교인들 중에 95% 정도가 표층단계에 있다"면서 "표층도 필요하지만 심층으로 가야한다. 표층에만 머무는 것은 종교적 발달장애라고 볼 수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교회란 성전만이 아니고 하느님 백성이고, 신앙은 종교예식만이 아니라 삶 자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이 종교적 제식에만 치우지는 형식주의 매너리즘에 빠져들자,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나서 기복주의 신앙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 축의 시대를 연 예언자 이사야와 예레미야. 마르크 샤갈 작품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이 종교적 제식에만 치우지는 형식주의 매너리즘에 빠져들자,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나서 기복주의 신앙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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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택트(ontact)이든 언택트(untact)이든 대면 집회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이 시대야말로 오히려 대중 집회를 신앙 활동의 중심에 세웠던 종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도 신앙행태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데, 예언서들에서 그러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이 종교적 제식에만 치우지는 형식주의 매너리즘에 빠져들자,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나서 기복주의 신앙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 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 1,13~17)

아모스 예언자도 외친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1~24)

예레미야 예언자도 외친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예레 7,3~7)

축의 시대는 기존 세계관 붕괴의 팬데믹에 따라 주어진 깨달음의 뉴노멀 시대
 
지난 2천 년간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황금률 만든 고등종교과 고전철학이 탄생했던 ‘축의 시대(Axial Age)’, 인디아에서는 붓다에 의해 불교가 창건되고, 그리스에서는 철학시대가 열리고, 중국에서도 제가백가 시대가 진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창시자 예수는 ‘축의 시대’의 마지막 열매였다. 그것은 기존 원시적 세계관 붕괴의 팬데믹에 이어 주어진 깨달음의 뉴노멀이었다.
▲ 깨달음의 시대 "축의 시대"의 주역 4대 성현 지난 2천 년간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황금률 만든 고등종교과 고전철학이 탄생했던 ‘축의 시대(Axial Age)’, 인디아에서는 붓다에 의해 불교가 창건되고, 그리스에서는 철학시대가 열리고, 중국에서도 제가백가 시대가 진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창시자 예수는 ‘축의 시대’의 마지막 열매였다. 그것은 기존 원시적 세계관 붕괴의 팬데믹에 이어 주어진 깨달음의 뉴노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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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하면 교회란 건축물인 성전만이 아니고 하느님 백성이고, 신앙생활은 종교적 제식만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외침이다. B.C. 8세기부터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예언자들의 주도 하에 일기 시작한 이런 깨달음은 그 후 2천 년간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황금률 만든 고등종교과 고전철학이 탄생했던 '축의 시대(Axial Age)'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인디아에서는 붓다에 의해 불교가 창건되고, 그리스에서는 고대철학 시대가 열리고, 중국에서도 제가백가 시대가 진행된다. 그리고 '축의 시대'의 마지막 열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예수는 당연히 이런 예언자의 계보에 속한다.

그것은 2천 년 세계 각지에서 꽃피웠던 고대문명마다 강타했던 기존 원시적 세계관 붕괴의 팬데믹에 이어 주어진 깨달음의 뉴노멀이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와 인구 대폭발 현상은 기존의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윤리, 도덕 패러다임을 전혀 쓸모없게 만들었다. 뉴노멀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축의 시대'는 그러한 고민에 대한 응답으로 태어난 문명의 꽃이요 열매였다.

이제 다시 그런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종교의 본령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기가 되었다. 종교계에선 이미 그런 각성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그것을 더욱 앞당기고 있을 뿐이다.

종교 위기 시대에 종교 본령의 역할 찾아가도록 해야
 
지난 2017년 12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개혁 선언문 선포 및 기자회견'에서 각 종단의 쇄신을 바라는 신도 대표들이 종교개혁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종교의 본령을 되찾자!" 지난 2017년 12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개혁 선언문 선포 및 기자회견"에서 각 종단의 쇄신을 바라는 신도 대표들이 종교개혁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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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고 있는 시대다.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종교인 수를 더하면 총인구수보다 더 많다는 종교백화점 국가, 다양한 종교들이 전투적 포교활동을 펼치며 경쟁하고 있는 사회, 하지만 종교에 대한 국민들의 매력은 갈수록 잃어 가는지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본인이 무종교인이라 대답한 경우가 전체 인구의 56.1%를 차지하고 있는 무종교 국가. 이것이 대한민국 종교계의 실상이다.

종교적 이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깨달음과 깨우침,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지난 2천년 동안이 종교적 천재들인 고등종교 창시자의 깨달음을 단순히 추종했던, 본회퍼가 말한 '값싼 믿음'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개개인과 대중 스스로가 깨우칠 때다. 어쩌면 '축의 시대'가 다시 온다면 그것은 그렇게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그:#포스트코로나, #팬데믹, #표층종교, #심층종교, #비대면 종교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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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장애인복지특별위원장,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수석부회장,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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