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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번 의사 파업 과정에서 의사 집단의 주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던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입니다. 그들의 동의를 받아 싣습니다.[편집자말]
 
지난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
 지난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
ⓒ 의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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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서 게시한 카드뉴스에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를 비교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과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을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이 카드뉴스를 통해 의사 집단이 가지고 있는 편협한 엘리트 의식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비단 이 카드뉴스뿐만 아니라 집단행동을 하는 내내 의사들은 여러 방면으로 우월감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여론은 그런 의사들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저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단체행동을 하는 의사들이 실제로는 엘리트주의에 빠진 채 의료 정책의 수혜자인 국민을 소외시키고 있는 현 상황을 비판합니다.

단체행동에 참여하는 의사들의 공통적인 요구 중에는 '의·정 협의체 설립'이 있습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정부와 의료계 인사가 1:1의 비율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 정책의 결정 과정에 의사는 꼭 참여해야 합니다. 의료 전문가이자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의료와 관련된 모든 것의 전문가는 아니며, 의료분야의 모든 사안에서 최종결정권자는 더더욱 아니어야 합니다. 특히나 의료가 가진 공공적 성격을 고려하면 이번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 문제를 논할 때 시민사회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번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한다면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보건의료계 종사자들, 지역 주민들, 환자들이 포함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배제한 채 의사들만이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醫) 중심 세계관 : 폐쇄적 엘리트주의가 낳은 결과물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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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아래 건정심) 구성 개편을 요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대위는 건정심 위원 구성에 있어 '공급자와 공급자를 제외한 위원이 각각 동수로 구성되도록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것이 정부·여당과의 최종 합의안에 반영되지 않자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비대위의 이러한 요구는 기존의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 8명, 공급자 대표 8명, 공익대표 8명이 1:1:1의 비율로 유지하고 있는 균형을 깨고, 공급자 대표의 비중을 대폭 늘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정심에서 공급자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만들어진 건강보험재정을 운용하는 데에 있어 국민을 더욱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비대위는 이렇게 의사들의 권한을 확대하고 다른 국민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 개정이 합의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환자들의 생명이 달린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이런 의(醫) 중심의 세계관은 폐쇄적인 의사·의대생 사회에서 엘리트주의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생겨난 결과물입니다. 의대생들은 의대 입학 이후로 점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지고, 시험 성적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지도 못한 채 시험이란 공정한 경쟁의 장이며 그 결과는 항상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정한 입시 경쟁에서 승리한 자신이 당연히 유능하다고 일반화하는 것입니다. 공공의대를 반대하는 의사·의대생들이 '공정'하지 못한 절차로 입학한 의대생이 의사가 되면 실력이 없는 의사가 양성되고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있습니다.

이 주장은 시험을 통해 의대에 들어온 의사는 유능하고, 시험이 아닌 방법으로 의대에 입학한 의사는 무능하다는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거둔 성적은 그 이후의 삶에서 어떤 것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국가고시 성적이 높다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하물며 입시 성적이 높다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너무나도 쉽게 입시 성적이 의사로서의 능력으로 직결된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또한 의사·의대생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다른 국민들을 '수준 떨어지는' 존재로 취급해왔습니다. 의사/의대생 커뮤니티만 들어가봐도 '개돼지', '국평오(국민 평균 5등급)'를 비롯하여 대다수 국민을 폄하하는 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일반 대중들은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의사 사회에는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곧 '의사들의 의견은 합리적이고, 이 타당한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선동에 휘둘린 비이성적 존재'라는 그릇된 이분법으로 귀결됩니다. 이렇게 대중을 멸시하는 이들이 다른 생각을 가진 비의료인의 목소리가 배제된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일관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지 못하는 자들의 입장은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특권이 아닙니다. 전문가는 전문성을 활용하여 대중을 설득하고 공적 담론으로 끌어들이는 가교 역할을 해야지, 사회 구성원들을 소외시키고 자신만이 옳다며 독선적인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의사들이 의료 전문가로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우리 사회의 공익 증진에 의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문가로서의 책무이며, 이러한 책무를 다하지 않는 전문가는 민주사회에서 전문가로 존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태그:#의사, #전공의, #집단휴진, #다른_생각을_가진_의대생_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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