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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녹색평론>은 '김종철 발행인을 추모하며'라는 제목으로 여러 문인의 글을 싣고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도 특별하다. 내가 선생을 처음 뵌 것은 대학 강의실에서였다.

나는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다시 영남대 한문교육학에 편입했다. 신학부 선생님들은 한국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한국 사상과 문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문공부를 위해 영남대에 들어갔는데 틈만 나면 김종철 선생의 강의(영미시, 시사영어 등)를 청강하러 영문과 수업에 들어갔다. 당시 그는 영남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기독교 예배 시 성경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목회자후보생이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명설교가들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설교집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매주 김종철 선생의 강의만큼 나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은 없었던 것 같다. 강의실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느꼈던 설렘은 나를 들뜨게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가 한 말을 되새기며 혼자 우쭐하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그는 종종 대학교수인 자신을 자책하며 학생들에게 학교를 떠나 각자가 보고 싶은 책을 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했다. 그가 <녹색평론>에 남긴 마지막 글,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에서 대기업 간부, 관료, 판사, 검사, 국회의원, 광고업자, 컨설팅회사, 증권분석가, 금융업자, 부동산 투기꾼, 과학자, 언론인, 그리고 대다수의 대학교수 등은 오늘날과 같은 비상상황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직업들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먹거리와 의료, 교육(보육), 그리고 가사노동과 같은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영국 같은 곳에서는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핵심 인력(key worker)'이라고 부르고, 미국에서도 '필수 직원(essential employee)'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종철 선생은 앞서 소개한 직업군을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의 말을 빌려 '쓰레기 직업들(bullshit jobs)'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직업들의 확대와 번창은 인간과 지구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올 여름에 지구환경파괴의 영향을 톡톡히 느꼈다. 이번 장마는 기록적인 호우를 뿌리며, 곳곳에서 물난리와 산사태를 일으켰다. 8월 9일 기준, 이로 인한 사망자만 38명이고, 실종도 12명이나 된다. 역대 최장 장마는 기후변화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영향은 장마뿐만 아니다. 지금 우리를 '집콕'하게 하는 코로나19도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많은 학자들은 생태학적 위기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근대산업문명과 라이프스타일의 전환을 언급한다.

특히 우리가 먹는 방식 중 기후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장식 축산과 산업화된 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Rob Wallace)는 코로나19 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다국적기업의 식량 생산 체계, 산업농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농기업은 오랜 기간 진화한 삼림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질병이 생겨날 조건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따라서 위험한 병원체가 애초에 등장하지 않도록 생산 공급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내는 땅과 소농을 보호할 생태농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종철 선생도 근대문명의 대안으로 농적(農的) 순환사회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가 남긴 유고(遺稿)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몽테뉴가 들려주는 프랑스 농민의 이야기가 나온다. 농민에게 죽음이란 삶(생명)의 순환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회피해야 할 재난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비상상황은 삶의 순환, 농적 순환이 잘 안되어 빚어진 것이다. 땅(지구)의 고통은 기후의 역습, 전염병과 기상이변으로 우리를 엄습해오고 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최고 작가로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禮 道子)를 꼽으며, 그 작가가 들려주는 새끼고양이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느 새끼고양이가 아스팔트 위에서 볼 일을 보고 자기 배설물을 덮으려고 하는데 흙이 없으니까 포장도로를 긁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 끝에 오물을 묻혔는지 이리저리 털다가 이시무레 미치코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새끼고양이는 이시무레 미치코가 보는 게 안쓰러울 정도로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직면한 비상상황에 대한 부끄러움과 농적 순환이 파괴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미안함을 온 몸으로 느꼈을 김종철 선생이 떠올랐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그가 이명(耳鳴)으로 고생했다고 들었다. 귀에 탱크가 지나가는듯한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 이명은 근대산업문명이 땅을 짓이기는 소리가 아닐까. 혹은 땅의 울부짖음이 아닐까. 그는 그 소리에 못 이겨 집 부근 산으로 자주 올랐고 끝내 산(땅)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종철 선생은 자신(글)의 영향으로 귀농한 이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농사지으러 갔어야 했다고 자신의 회한을 종종 드러냈다고 한다. 2003년 대학 수업 시간,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농민 이경해 열사의 소식을 전하며 무척 상기되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는 농부는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소농의 가치와 농적 삶을 주장해온 '농(農)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삶과 사상으로 피력해온 농적 가치가 비상상황에 직면한 우리에게 농적 삶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해본다.

태그:#김종철, #녹색평론, #농적 삶, #코로나19,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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