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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2월 말이 되면 나의 다이어리는 엄격하게 자체 검열을 받는다.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 세웠던 연간 목표와 계획서를 살펴보는 것이다. 무엇을 달성했는지, 어떤 것은 미완성인지를 확인하며, 달성한 것은 하트 표시를, 그렇지 않은 것은 별표를 그린다.

작년에도 그랬다. 아들, 딸의 대학 합격과 사회복지사 자격취득을 비롯해서 무려 14개의 희망사항을 써 놓았었다. 그 중 8개를 달성했으니 반 백을 넘긴 이 나이에 에너지가 넘친다는 말을 들을 만 했다.

올해의 목표 역시, 10여 개를 쓰면서 1번 자리에 '책읽기와 글쓰기'를 올려 놓았다. 작년 지역서점에서 운영했던 에세이 쓰기 팀에 들어가면서 내적 동기유발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작가의 지도를 받으며 월 2회 이상 글쓰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서점 가판대에 올라온 책들의 작가 이름에 내 이름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하더니, 내가 죽기 전에 이름 하나 남긴 책을 쓸 수 있을까' 혼자 상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사람, 자연 할 것 없이 전 세계를 뒤덮은 이때,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속하는 나는 2월부터 지금까지 예년처럼 학원 운영을 해보지를 못했다. 그런데 처음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봄 학기에 비하면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만큼 이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살아가는 행동 모드에 최소한의 생계 법칙을 적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준 시간, 이렇게 보낼 순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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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빈곤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 이치가 음과 양, 하늘과 땅, 낮과 밤, 여자와 남자 등 둘이 아닌 하나만의 존재가 몇이나 있겠는가. 일중독이라고 할 만큼 일에 빠져 있었던 내 삶에,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텅 빈 시간이 늘어났다면,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다른 것이 있겠지. 그런 생각 위에 올해 목표 1번이 생각났다. 지인들 덕분에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을 알았고, 매일은 아닐지라도 정기적으로 나의 일상을 써 나가는 있는 중이었다.

내 일생에서 나를 변화시킨 전환점을 꼽으라면, 첫째, 남편을 만난 것이요, 둘째, 두 아이를 낳은 것이요, 셋째, 영문학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요,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글쓰기 수업이었다. 비록 에세이 수업은 끝났지만, 꾸준히 글을 쓰면 회원들끼리 서로 읽어주고 후평해준다.

글쓰기와 책읽기는 내 삶의 에너지가 되었으며 나의 피난처도 되어주고 안식처도 되어주고, 진실과 거짓의 구별선도 되어준다.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공감의 다리가 되어준다. 이 얼마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들로 채워져 있었던가.

작년 9월 1주차에 글쓰기와 인연을 맺었으니 이제 만 1년 된 햇병아리 글쟁이다. 블로그를 시작으로 브런치 플랫폼에는 4전5기의 정신으로 입문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 공간은 바로 오마이뉴스다. 지금처럼 언택트(Untact), 온택트(Ontact)를 언급하는 시대에 오마이뉴스는 진작에 주류의 자리에 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을 코로나 덕분에 인연을 맺은 것이다.

올 3월, 에세이 수업을 진행하는 상주작가의 추천으로 '코로나로 인해 겪는 학원이야기'를 써서 보냈더니, 뉴스 상단 자리에 떡 하니 올라왔다. 또 주변의 지인들에게 기사 글 잘 썼다는 칭찬도 받았다. 바로 올해의 목표가 써 있는 다이어리를 펼쳤다.

또 다른 목표 하나를 추가하게 된 것이다. '도전! 오마이뉴스 기사. 1주에 1 기사쓰기!' 원고료 받으면 '제일 좋은 노트북 사기!' 잊지 말자고 빨간색 사인펜으로 노트 하단에 큼지막하게 써놓고 지인들에게 공시했다. 그래야 나와의 약속을 지킬 것 같아서였다. 그 뒤로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6월까지 스스로의 약속을 잘 지켰다, 다행스럽게도 취재 거리도 계속 있었다. 7월부터는 1주 1기사까지는 못하지만 월 2회 이상의 기사를 쓰고 있다. 채택된 내 기사의 등급을 보면서 새로운 말도 배웠다.

'잉걸, 버금, 으뜸, 오름' 처음엔 잉걸이 무엇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불이 핀 숯덩이, 다 타지 않은 장작불'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초짜인 내게는 적확한 표현이자 등급이었다. 내 기사는 지난 몇 달 동안 각 등급을 오르내리며 세상을 향한 나의 마음을 나타내는 꾸밈없는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또 신기한 것이 있었다. 같은 글을 쓴다 해도, 에세이를 쓸 때와 기사를 작성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상상력과 어휘력이 부족한 나는 직접 체험 하지 않고는 글을 쓰는데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읽기로는 소설과 시를 좋아하지만 쓰기로는 에세이(생활수필)를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기사를 쓸 때는 정보의 정확성과 진실성이 우선하기에, 직접 보고 들은 후에라야 글의 첫머리가 생각난다. 얼마전 '새만금의 흰발농게 이주작전'에 대한 기사 역시, 쓰기 전에 많은 경로로 얘기를 들었지만 체감이 되지 않아서 현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었다. 덕분에 남편과 여행하는 솔솔한 재미도 있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원고료 차곡차곡 모아 노트북 살 겁니다

대학생이 되었어도 한 번도 학교를 가보지 못한 딸이 여름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첫 월급 명세표를 보여주며, "엄마, 왜 노트북 안 사요. 오마이뉴스 기사 적립금이 아직도 모자라? 곧 엄마 생일인데 엄마 내가 노트북 사줄까?"라고 물었다. 물론 노트북 하나 살 정도의 원고료는 적립이 되었지만 아직 찾지 않았다. 좀 더 모으다보면 더 괜찮은 곳에 쓰여 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이 있어서이다.

그냥 딸의 선물을 받을까? 아니지, 우리 딸이 어떻게 번 돈인데. 나는 시원한 곳에 앉아서 세상 일에 대한 내 느낌을 타자기로 두드리는 일인데, 내 딸은 대학 생활 한번 못 해보고 서울에 얻어둔 월세방 값이라도 돕는다고 했던 아르바이트였다.

매달 나가는 방 값이 무슨 자기 잘못으로 벌금 내는 것처럼 내 눈치를 보았으니 속이 깊어도 너무 깊은 것이 문제라고 한 마디 했었다. 시간당 9000원 받으며, 한 번도 안 해본 식당 일을 해서 벌었는데 어찌 내가 받아 쓸 것인가. 단호히 말했다.

"안돼, 그 돈은 그렇게 쓰지마. 네가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에 다 써도 좋아. 오마이뉴스 원고료 털어서 노트북 살 거야. 단, 올해 연말까지 더 쓰고 살 거야. 그동안 네 노트북 빌려줘. 네 노트북에 엄마 얘기가 많이 담겨 있잖아. 왠지 네 걸로 쓰면 마음이 편해서 잘 써지니까. 잘 아껴야 잘 사는 거니까."

태그:#챌린지, #시민기자,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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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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