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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에 개학을 한 고3 딸아이는 왜 자기들만 등교하냐고, 고3은 코로나 안 걸리냐고 따지듯 물었다. 아이의 불만을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르고 달래 등교시켰다.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으로 출근하니 학교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개학하면 복도는 으레 아이들의 뜀박질과 괴성 그리고 그걸 나무라는 선생님들의 고함이 섞여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게 마련이다. 주인이 오지 못한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온라인 개학식을 하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 준비를 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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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지난 2월 말 코로나19가 처음 대규모로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는 코로나19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데서 오는 공포가 심했던 것 같다. 중국 우한이라는 도시가 통째로 봉쇄되었다는 소식은 공포심을 더 크게 했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전염병에 조금 정신을 차릴 즈음인 3월 초 코로나19가 대구에서 대규모 유행을 했다. 그래도 그때는 무지와 낯섦에서 오는 공포심이 어느 정도 줄어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대구, 경북을 방문하지 않으면 괜찮겠거니 했다. 전 국민이 최선을 다해 방역 당국을 믿고 노력을 한 결과 차츰 코로나19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아무것도 아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8월 중순 일부 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시작되었고, 일부 단체에서는 감염의 위험성이 높아 방역 당국에서 말리는 데도 대규모 집회를 열어 그동안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고 말았다. 전에는 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지키면 저 사람도 지키겠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지킨다고 저 사람도 지킬 거라는 믿음이 깨져 버렸다. 방역 수칙을 따르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서로 간에 불신이 생겨 버린 것이다. 또 전에는 코로나19가 주는 공포감에 힘들었다면 지금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됐다는 허무감이 힘들게 한다.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 앞에 앉아 나를 보는 아이들을 보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30여 개로 나뉜 창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수업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는데,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나를 보고 수업을 듣는 것처럼 하지만, 실제론 다른 화면을 띄워놓고 있다 소리가 나와 걸린 아이, 카메라에 대고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장난치는 아이, 수업을 듣는 척하지만 실제론 개그 영상을 보다 웃어서 걸린 아이. 참 다양하게 딴짓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난 뭐라 할 수 없다. 저 철없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제시간에 카메라 앞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학생은 학교로 의사는 병원으로

수업 같지 않은 수업을 마치고 좀 쉬고 있는데 작은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또 다리가 빠져 병원에 왔어."

"또 빠졌어. 어쩌다가... 그럼 지금 ○○병원이야?"

"길에 앉아 할머니들하고 이야기하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툭 빠졌나 봐. 다행히 언니가 있어서 119에 전화해서 앰뷸런스 타고 가며 ○○병원으로 가는데... 파업으로 못 받는다고 해서 소방관 여기저기 알아보다 겨우 △△병원에 왔어."

"그래서 뼈는 다시 맞췄어?"

"아직이야. 의사 기다리고 있어. 엄마가 너무 아파해서 일단 진통제 맞았어."


올해 여든네 살인 어머니는 몇 년 전 겨울 넘어지며 고관절이 빠진 이후 몇 개월에 한 번씩 빠져 다시 껴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의사들의 진료 거부로 환자들이 힘들다는 뉴스를 보며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어머니가 의사들의 진료 거부로 인해 이 병원 저 병원 다녔다니 화가 났다.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펴며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로 인해 학교마저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 정부의 의료 정책에 맞서 진료 거부를 해 환자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떠돌게 만드는 의사들 모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집회나 진료 거부라는 물리적이고 집단적인 방법이 아닌 비대면 집회나 기자회견 등으로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전 국민이 노력하고 있는 이때 꼭 그래야 하는가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번 일로 가장 피해 보는 사람들은 힘없고 약해 보호받아야만 하는 학생들과 환자들이다. 약자들의 아픔을 가볍게 보는 사람들의 주장은 옳지도 않고 옳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의다. 적어도 내 상식엔 그렇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혼자 점심을 먹고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 모습이 좀 안돼 보였는지 선생님 한 분이 슬쩍 옆으로 왔다.

"선생님, 애들이 안 오니까 편하죠? 애들이 오면 방역 담당으로 아침 일찍 출근하셔서 아이들 하교할 때까지 정신없으시잖아요?"

"그렇긴 한데... 전 그게 좋아요."

"저도 그렇더라고요. 애들이 와서 마스크도 안 쓰고 부둥켜안고... 하여간 말 안 듣고 난리 칠 때는 힘들었는데, 학교에 아이들이 없으니 여기가 학굔가 싶기도 하고..."

 
8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 편이 게시돼 있다.
 8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 편이 게시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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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의 가사가 게시되었다고 하는데... 딱 제 마음 같아요."

"그러네요. 요즘은 그냥 원래대로 모든 것이 돌아갔으면 해요"


그동안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때론 지겨워하고, 그런 일상에 얽매인 자신을 보며 한탄하며 살기도 했다. 학교가 아이들의 뜀박질과 괴성 그리고 그걸 나무라는 선생님들의 고함이 섞여 말 그대로 난장판인 '일상'이, 의사선생님이 환자 치료를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그 '일상'이 요즘처럼 간절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때론 익숙함에 그걸 놓칠 때도 있지만 학생은 학교에, 그리고 의사는 병원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다시 등교하면 학교 방역담당자로서 힘들어지겠지만, 난 하루라도 빨리 그 일상의 지겨움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이 교사인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가장 빛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그:#코로나 19, #진료 거부, #원격 수업, #정의, #위기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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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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