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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 당시 읽은 책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읽은 책은 김성동 작가의 '국수'(國手), 진천규 작가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지난 2018년 8월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의 휴가 사진.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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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도서 4권을 추천했다. 9월 1일자 글에서 "독서의 달을 맞아 제가 올여름에 읽은 책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소개할까 합니다"라며 <코로나 사피엔스>, <오늘부터 세계는>, <홍범도 평전>, <리더라면 정조처럼>을 소개했다.

그중에서 <리더라면 정조처럼>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정조대왕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고, 당대의 역사를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라며 "저는 정조대왕이 금난전권을 혁파하여 경제를 개혁한 이야기가 가장 좋았습니다"라고 평했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 발현된 정조의 리더십을 조명한다. 금난전권 혁파와 경제 개혁에 관한 이야기는 시대 흐름을 읽고 길을 개척하는 정조의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언급됐다.

정조의 신해통공을 주목한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이 추천한 <리더라면 정조처럼>(김준혁 저, 더봄) 책 표지.
 문 대통령이 추천한 <리더라면 정조처럼>(김준혁 저, 더봄) 책 표지.
ⓒ 더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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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정책 목표 중에서 정조와 통하는 부분은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정책이다.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표제가 달린 2017년 대선 공약집의 '공정한 대한민국' 편에서 그는 "적합 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 등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를 보호하겠습니다", "협력이익 배분제를 한국형 이익공유 동반성장 모델로 추진하여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이와 유사한 정조의 개혁은 한국사 교과서에 소개되는 1791년 신해통공(辛亥通共)이다. 음력 신해년과 상당부분 겹치는 이 해에 정조는 영세 상인에 대한 특권 상인의 단속권을 인정하는 금난전권을 크게 축소시켰다.

'통공'은 오늘날 한국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전부, 다 함께, 총계' 등의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현대 중국어의 '통공'으로도 정조시대의 통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단어가 정조시대에 표상한 의미를 살리려면, 통공을 두 개의 동사가 결합된 단어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통하다'와 '함께하다'가 결합된 단어로 이해하면, 경제세력 간의 이익을 조율하고 사회통합을 추구한 정조의 통공이 훨씬 선명해진다.

통공의 공(共)은 흔히 '함께' 혹은 '함께하다'라는 우리말로 획일적으로 해석되지만, '공'을 꼭 그렇게 해석해야 할 규칙 같은 것은 없다. 오늘날의 한자 번역자들이 습관적으로 그렇게 번역할 뿐이다. '공'은 '함께하다'와 의미가 같은 '더불다'라는 우리말로 번역돼도 무방하다. '더불다'로 번역할 경우, 경제적 약자와 강자가 더불어 함께 잘사는 방도를 추구한 신해통공의 의미가 좀 더 잘 살아난다.

통공이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목표로 했다는 점은 정조의 경제개혁과 문재인의 경제개혁에 상통하는 영역이 있음을 뜻한다. 문 대통령이 신해통공과 관련해 "가장 좋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뜻과 통하는 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금난전권은 법적 특권을 부여받은 시전 상인이 영세 상인의 노점 영업을 규제하는 권한이었다. 이를 통해 시전 상인은 특정 상품에 대한 전매권을 확보하는 대신,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를 조달할 의무를 부담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금난전권 부여를 통해 시장질서 관리에 드는 행정적 부담을 줄이고 필요 물자를 쉽게 조달하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과도한 난전 단속으로 인해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고 시전 상인과 관료의 결탁으로 부정부패가 양산되는 단점도 있었다. 정조시대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컸기에 정조가 금난전권 개혁을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신해통공은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함으로써 시장 행위자들의 경제력을 조정하는 개혁이었다. 조선 후기의 상업 발달로 크게 달라진 경제력 분포를 국가정책적 관점에서 재조정하는 정책이었다. 경제적 약자인 소상인을 배려하는 정책이기도 했지만, 비대해진 상업 분야를 국가 통제가 가능한 수준에서 묶어두겠다는 의지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신해통공을 추진한 정조의 의지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규정이다.

개혁 때마다 등장하는 황당한 반대론자들

지금의 부동산 개혁을 둘러싼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예나 지금이나 돈 문제가 걸린 개혁을 추진하면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나라님을 받들던 사람들도 자기 이익을 침해하는 개혁이 추진되면 "나라님이고 뭐고!"라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 논리를 내세우며 목숨을 걸고 맞선다. 정치 민주화보다 경제 민주화가 더딘 이유 중 하나는 그것 때문이다.

정조는 집권 2년 뒤인 1778년에도 그런 황당한 논리를 접했다. 재정 절감을 목적으로 수도권을 방위하는 5군영 중 수어청과 총융청을 통폐합하고자 했을 때, 반대론자들이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저항하는 일을 경험했다. '친(親)정조' 라인이면서도 정조와 의견이 갈리곤 했던 의정부 우참찬(정2품 장관급) 김종수(1728~1799)한테서도 황당한 말을 들었다.

1778년에 정조는 26세였다. 이 해에 50세인 김종수는 '옛 것을 그냥 두는 이익이 옛것을 고치는 이익보다 크다'는 논리를 내세워 통폐합을 반대했다. 음력으로 정조 2년 윤6월 24일자(양력 1778년 8월 16일자) <정조실록>에 소개된 김종수의 반대론을 들어보면, 같은 편끼리 이런 억지를 써도 되나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의 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잉구(仍舊, 옛 것을 존치)로 인해 생긴 병폐는 하루아침에 경장(更張, 개혁)하면 병폐가 사라지지만, 전적으로 경장으로 인해 생긴 병폐는 그렇지 않습니다. 경장한 후에는 그것이 병폐가 되는 것을 깨닫는다 해도, 잉구와 개혁이 모두 막히게 되어 어느 한 가지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잉구를 하고자 하면 경장할 기회가 생기므로 병폐가 해소되지만, 일부러 경장을 하고자 하면 그 병폐를 잉구와 경장 어느 쪽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그냥 두자는 것이었다. 김종수는 평균보다 2, 3년 늦은 40세 때 과거시험에 최종 급제했다. 40세 때까지 학문을 연마한 선비인 그가 개혁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말도 되지 않는 논리들을 쏟아냈던 것이다.

1791년 신해통공 당시의 정조는 15년간 국정을 운영한 39세의 군주였다. 적지 않은 경험을 거친 그는 이 개혁을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추진해도, 김종수 같은 황당한 반대론자들이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경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반대론자들이 '경제가 무너진다'며 위기감을 조성할 게 뻔했다. 김종수가 내세운 황당한 논리도 이런 국면에서는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시무n조'로 포장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구사한 방법은 자신이 전면에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좌의정 채제공이 건의하는 방식을 통해 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노련한 정조가 택한 방식

채제공은 영의정이 없는 상태에서 좌의정에 올랐으므로 사실상 총리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건의하는 형식을 빌려 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정조는 찬반 논쟁의 전개 과정을 지켜봤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정자나 중재자의 위상을 유지했다. 군주가 논쟁의 한쪽에 치우치면, 논쟁이 지나치게 격화될 경우에 상황을 수습할 길이 없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중재자의 위상을 유지하다가 논쟁이 진정 국면에 들어선 뒤에 군주권을 발동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방식을 정조는 선택했다.

텔레비전 사극에는 기득권을 가진 관료들이 군주의 경제개혁에 대항하며 논쟁을 펼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신해통공처럼 상업과 관련된 사안인 경우에는, 농업지주 출신의 관료들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낮았다.

그런데도 신해통공과 관련된 조정의 논쟁은 격렬했다. 시전 상인들이 경제력을 배경으로 관료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해뒀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논쟁은 영세 상인을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시전 상인을 옹호하는 정치세력이 벌인 일종의 대리전이었다.

정조 15년 6월 20일자(1791년 7월 20일자) <정조실록>에 따르면, 금난전권 폐지론자인 채제공은 시전 상인들의 이익 독점을 규제하지 않으면 "백성의 살림도 넉넉해질 수 없고 상인들도 활동할 수 없고 시장도 번성할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채제공에 맞서 존치론을 편 사람은 노론당 출신으로 시전 상인들과 이해관계가 돈독했던 김문순이다. 1791년 연초에 병조판서와 평시서제조(시장 감독)를 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는 정조 15년 2월 12일자(1791년 3월 16일자) <정조실록>에 따르면, "시전이 설치된 지 수백 년에 가까워, 뿌리가 단단해지고 국가 부역에 부응"하고 있다며 시전 상인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금난전권이 폐지되면 시전 상인들이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경제 위축을 가져올 거라고 경고한 것이다.

논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는 조정 밖의 상황을 통해서도 짐작된다. 번옹 채제공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번옹유사(樊翁遺事) 편에 따르면, "공에게 호소하러 오는 사람이 문을 메우고 울음소리가 거리에 차며 원망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무리지어 일어났다"고 말한다. 뜨거운 사회적인 관심 속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신해통공은 이같은 찬반 논쟁을 거친 뒤 군주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끝맺음 됐다. 경제 기득권층의 이익을 건드리면서도 외형상으로는 합의의 모양새를 취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정조는 시전 상인들을 옹호하는 기득권 노론당의 동의를 받아내 신해통공을 성사시켰다. 시전 상인들을 옹호하는 노론당의 동의를 받아냈으니 시전 상인들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2001년에 <한국정치학회보> 제35집 제1호에 실린 역사학자 박현모의 '신해통공의 정치경제학: 18세기 후반의 개혁 논쟁과 정조의 경제개혁'은 "개혁의 주체는 물론이고 개혁의 대상까지도 함께 참여하여 찬반 논쟁을 벌인 가운데 채택·추진되었다"며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개혁안의 논의 과정에 참여하여 격론을 벌인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정치가 단순한 문제 해결 차원에서 이해된 게 아니라, 당면한 문제의 해결과 함께 그 문제의 해결 방식 및 과정에 큰 의미를 두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경제 개혁을 꿈꾸는 지도자들의 모델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기 위해 일어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5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기 위해 일어서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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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신해통공 개혁을 무사히 안착시킴으로써 영세상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18세기판 경제 민주화를 한 단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소상인의 활동 범위를 넓혀줌으로써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영세상인과 소비자 양쪽에게 이익을 주는 개혁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조치는 상업과 시장을 더욱 발달시키는 계기도 됐다. 농업이 저물어가고 상공업이 발달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는 개혁이었던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이 한 줌의 이익도 빼앗기지 않고자 달려드는 경제 분야의 개혁을, 개혁 주체뿐 아니라 개혁 대상의 의견까지 들으면서 성사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처럼 힘든 일을 정조는 해냈다.

물론 모든 경우에 개혁 대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유해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의 동의를 받아내 개혁을 완성하는 것은 개혁가나 군주들의 공통된 꿈이다.

정조는 적어도 신해통공에서만큼은 그 꿈을 이뤘다. 그는 합의를 통해 경제개혁을 성사시키는 역량을 발휘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경제개혁에 뜻을 둔 지도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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