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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대구노동학교에서 열린 청년회의소 모임 사진으로, 동그라미 표시된 사람이 현진건이고, 그의 뒤 왼쪽 검은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이상화이다. (윤장근, <대구문단인물사> 사진)
 1919년 대구노동학교에서 열린 청년회의소 모임 사진으로, 동그라미 표시된 사람이 현진건이고, 그의 뒤 왼쪽 검은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이상화이다. (윤장근, <대구문단인물사> 사진)
ⓒ 윤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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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빈처〉 〈고향〉 등을 남긴 소설가 현진건은 1900년 9월 2일(주1)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1901년 4월 5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등의 시인 이상화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현진건과 이상화는 1917년 백기만 등과 더불어 습작을 등사하여 제작한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행하면서 문학소년기를 함께 보냈다. 이들은 1922년에 창간된 〈백조(白潮)〉 동인으로도 함께 활동했다. (주2)  

두 사람의 인연은 이승을 떠나는 날 더욱 기가 막히게 전개되었다. 1943년 4월 25일 아침 이상화는 대구 중구 서성로 6-1 (현재 '상화 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택에서 운명했다. 같은 날 밤 현진건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현진건>

1936년 8월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시 '일장기말소사건(日章旗抹消事件)'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는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세계를 제패했을 때 동아일보가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삭제하고 게재한 사건이다. 당시 총독부는 이 사건을 동아일보 탄압 구실로 사용하여 동아일보를 무기정간 시켰다.

이 사건의 직접 책임자인 현진건을 비롯하여 이길용(李吉用)·최승만(崔承萬)·신낙균(申樂均)·서영호(徐永鎬) 등 5명은 "① 언론기관에 일체 참석하지 않는다. ② 시말서를 쓴다. ③ 만약 또 다른 운동에 참가했을 때는 이번 사건의 책임에 가중하여 엄벌받을 것을 각오한다"는 내용의 서약을 강요당하고 1936년 9월 26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현진건은 1939년 소설『흑치상지(黑齒常之)』를 연재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것은 백제 때 장군 '흑치상지'가 자기의 모국인 백제가 망하자, 의병을 일으켜 국가를 회복하려고 의병 3만을 결합하여 당장 소정방(蘇定方)에 항거하여 백제의 2백여 성을 회복했던 사실을 소재로 한 것이다. 『흑치상지』는 일경의 탄압으로 인해 52회로 게재 중지되어 미완으로 남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현진건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한 가지가 '일장기 말소 사건(日章旗抹消事件)'이다. 1936년 8월 9일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 동아일보 사회부장이던 현진건은 동료 이길용‧신낙균‧백운선‧이상범‧서영호‧장용서‧임병철‧최승만‧송덕수 등과 함께 신문에 게재할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구속되어 40여 일에 걸친 문초를 받았다.

현진건은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1936년 전후 무렵 특히 불우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약하던 형 현정건이 일제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45세(1932년)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윤치호의 조카인 형수 윤덕경도 남편 사후 41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인은 연재하던 장편소설 〈흑치상지〉가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중단되었고,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손댄 양계장과 미두(米豆, 현물 없이 거래를 하는 일종의 투기)에 실패하여 집도 날렸다. 

현진건은 우리나라 초기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현진건이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의 대표 정체성은 소설가이다. 그는 민족성 짙은 사실주의 소설을 남긴 우리나라 1920년대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21세(1921년)에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 24세에 〈운수 좋은 날〉, 25세에 〈불〉, 26세에 〈고향〉을 발표했다. 38~39세에 집필한 장편소설 〈무영탑〉을 41세에 출간했고, 39세~40세에 장편소설 〈흑치상지〉를 연재하다가 마치지 못했다.   
 
 대구 두류공원의 '현진건 문학비'
 대구 두류공원의 "현진건 문학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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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부암동 325-2 '현진건 집터'에 가면 전봇대 아래에 이런 내용이 담긴 작은 표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현진건 집터 / 玄鎭健 家址 / Former Site of Hyeon Jin-geon's House / 현진건(1900-1943)은 근대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자전적 소설과 민족적 현실 및 하층민에 대한 소설, 역사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표석의 안내문 중 마지막 문장을 특별히 여러 번 읽어본다. 현진건은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병사했다는 내용이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서정주가 〈창피한 이야기들〉이라는 글에 밝혀놓았듯이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미래의 일본 주도권은 기정 사실이니 한국인도 거기 맞추어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주3)에서 친일로 전향했다. 그러나 현진건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뜻을 굽히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일이 없었다."(주4) 그래서 필자는 표석의 끝 문장을 거듭 읽어보는 것이다.   

빈처 등 자전적 소설, 무영탑 등 역사소설

표석 안내문이 말하는 자전적 소설은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이다. 민족적 현실을 다룬 대표작은 〈고향〉, 하층민의 삶을 묘사한 대표작은 〈운수 좋은 날〉, 역사소설의 대표작은 〈무영탑〉이다. 

〈무영탑〉은 석가탑의 전설에 토대를 둔 장편소설이다. 백제 석공 아사달은 신라로 와서 석가탑을 쌓는 역사를 맡는다. 그의 아내 아사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마침내 서라벌로 찾아온다. 당시 여자들이 불사에 기웃거리는 것은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승려들은 아사녀에게 석가탑의 그림자가 못 영지에 뜨면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아사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영지에 탑의 그림자가 뜨지 않자 마침내 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린다. 소설에서는 아사달을 연모하는 귀족의 딸 주만이 등장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시중의 아들이 삼각 관계를 형성하여 긴장감을 더한다.

게다가 아사달 자체도 멀리 있는 아내 아사녀와 가까이 있는 주만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오락가락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아사달은 결국 물가 바위에 아사녀의 모습을 아로새기다가 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4호인 '영지 석불좌상'. 아사달이 아내 아사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조각하다가 미완성에 그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4호인 "영지 석불좌상". 아사달이 아내 아사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조각하다가 미완성에 그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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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무영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즉 작가의 주제의식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부분을 석가탑의 완성으로 본다. 다른 모든 사건들은 석가탑의 완성을 위해 복무한 소설적 장치로 해석한다. 현진건은 마침내 석가탑이 완성되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진건에게 대한 예의를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대구에서는 그의 생가터가 어디인지도 찾을 수 없고, 서울에서는 그가 살던 집이 파괴된 자리에 잡풀만 무성하다. 현진건은 〈고향〉에서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하다'고 했는데, 필자는 그의 생가도 고택도 없는 현실을 통해 '음산하고 비참한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을 똑똑히' 응시한다.    
  
(주1) 음력으로는 8월 9일이다. 여기 음력을 밝혀두는 것은 인터넷상에 출생일 8월 8일, 사망일 4월 25일로 음력과 양력을 혼재해서 쓴 경우가 많아 독자들에게 혼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양력으로는 9월 2일과 4월 25일이고, 음력으로는 8월 9일과 3월 21일이다.
(주2) 〈거화〉는 현재 책자가 발견되지 않아 어떤 작품들이 게재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고, 〈백조〉는 창간호·2호·3호가 모두 남아 있어 감상과 연구에 지장이 없다. 
(주3) <미당 서정주 전집 4>(은행나무, 2015), 149쪽.
(주4) 윤장근, <대구문단인물사>(대구시립서부도서관, 2010),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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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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