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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31일 미래통합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새 당명 소개 자료.
 지난 8월 31일 미래통합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새 당명 소개 자료.
ⓒ 미래통합당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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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새로운 당명으로 '국민의힘'을 잠정 결정했다. 당명 공모에서 '국민'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나왔다는 점이 그 이유다. 새로운 당명은 2일 전국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미래통합당은 다름 아닌 '국민의 힘' 때문에 지난 4년간 시련과 몰락을 경험했다. 당명에 국민을 넣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국민의 힘 때문에 시련을 겪은 정당이 시련의 원인을 당명에 명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시선을 끌 만한 일이다.

과거의 보수정당들은 국민보다 더 좋은 표현을 사용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국민보다 더 좋은 글자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념을 담은 '민주'라는 표현이다. 민주라는 이 표현은 민주당 계열의 정당들뿐 아니라 군부독재 시절의 집권당들도 애용했다. 박정희의 당은 민주공화당이었고, 전두환의 당은 민주정의당이었으며, 노태우가 주도적으로 만든 당은 민주자유당이었다.

임시정부 헌법을 계승한 1948년 이후의 역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이다. 제1조가 두 개의 항으로 나뉜 1963년 헌법부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항상 제1조 제1항에 배치됐다.

이처럼 우리 헌법의 최고 이념인 '민주공화국'을 당명에 가장 잘 반영한 것은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었다. 미래통합당이 아무리 좋은 당명을 만들어낸다 해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민주공화보다 더 좋은 표현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당명에 국민을 넣든 민주를 넣든 공화를 넣든, 이번 9월에 미래통합당이 새로운 당명을 채택한다면 이 당명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클 듯하다. 이 점은 보수정당 당명 개정의 패턴에서 드러난다. 당명 개칭의 역사가 아래 표에 정리돼 있다. 

지금까지의 창당-몰락 패턴
 
 보수정당 당명 개정의 역사.
 보수정당 당명 개정의 역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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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 세 번째 항목이 '해체'가 아닌 '몰락'인 것은 1951년 창당된 자유당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의 직격탄을 맞고 쓰러진 이승만의 자유당은 그해 7월 제5대 총선에서 2석을 획득하고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다. 이 당은 10년 뒤인 1970년에야 해체됐다.

그렇지만 자유당의 실질적 존속 기간은 1951~1960년이다. 이 기간에 자유당은 이승만의 당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정체성을 상실함과 동시에 유력 정당의 지위를 갖지 못한 제5대 총선 이후의 자유당은 이전의 자유당과 실질적으로 다른 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자유당과 명칭은 같지만, 연속성은 갖지 못한 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당이 1960년에 해체가 아닌 몰락을 겪은 사실까지 포함시켜 당명 개칭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 세 번째 항목이 부득이 '몰락'이 될 수밖에 없었다.

표에 따르면, 당명의 실질적 존속 기간이 자유당은 9년, 민주공화당은 17년, 민주정의당은 9년, 민주자유당은 5년, 신한국당은 2년, 한나라당은 15년, 새누리당은 5년, 자유한국당은 3년이었다. 이번 9월에 당명 개정이 이뤄지면, 미래통합당 당명은 1년도 못 쓰고 폐기되는 이름이 된다.

당명의 존속 기간을 음미해보면, 당명의 수명이 집권 여부와 직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보수정당이 독재자나 군부 출신 지도자에 의해 장악됐던 시절에, 자유당 당명은 9년, 민주공화당 당명은 17년, 민주정의당 당명은 9년간 사용됐다. 그런데 보수정당이 야당인 시절이 있었던 1997~2012년에 한나라당 당명은 15년간이나 사용됐다.

'이회창'이라는 존재감 
 
회고록 출간한 이회창 전 총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회고록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사진은 2017년 8월 2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회고록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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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당명은 민주공화당 당명 다음으로 오래 사용됐다. 이 당명은 2008년부터 4년간은 집권당 당명이었지만, 그 이전의 11년간은 야당 당명이었다. 한나라당 명칭이 사용된 시기에 이 당에는 독재자나 집권자는 없었지만, 이회창이라는 강력한 대선후보가 있었다.

이회창은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에게,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다. 하지만, 두 번 다 근소한 차이였다. 이회창이 38.7%를 득표한 1997년에 김대중은 40.3%를 기록했고, 46.6%를 기록한 2002년에 노무현은 48.9%를 기록했다. 이회창의 득표력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2007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음에도 15.1%나 득표한 사실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은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법치주의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는 속에서 검사 출신인 홍준표와 더불어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냉전적 사고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당시의 시대적 열망을 표상했기 때문에 김대중과도 얼마든지 제휴할 수 있었다. 대쪽 판사라는 이미지와 함께 법치주의 열망을 대변했다는 점이 이회창 득표력의 결정적 비결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보수정당 입장에서 볼 때, 대선에서 2연패한 1997년 이후는 '국민의 힘'(촛불혁명)을 경험한 2016년 이후보다는 못해도 상당히 힘든 기간이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당명을 오래 쓸 수 있었던 것은 이회창이라는 안정적인 대선후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이 처한 객관적 조건은 불안정해도 리더십이 비교적 안정적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보수정당 당명의 존속 기간이 리더십의 안정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래통합당이 지금 시점에서 채택하는 당명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비교적 오래 유지된 당명인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한나라당이 어느 시점에 채택됐는가를 보면 그 점이 드러난다.

자유당이라는 당명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2월 채택됐지만, 이 시점은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전쟁이 소강 국면에 들어간 뒤였다. 또 국회 내에 지지 세력이 별로 없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 연장을 위해 직선제 개헌을 추진한 1952년 1월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1951년 12월은 이승만의 리더십이 안정적인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당 당명이 등장했고, 이것은 그 후 9년간 제1당 당명으로 사용됐다.

17년간 장수한 민주공화당 당명도 5.16 쿠데타 2년 뒤부터 사용됐다. 민주정의당 당명도 1979년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전두환의 권력 기반이 안정된 1981년부터 사용됐다.

한나라당 당명 역시 1997년 9월 30일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이회창이 총재직을 인수하고 11월 7일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한 뒤인 1997년 11월 21일부터 사용됐다. 이회창의 당이 된 뒤부터 한나라당 당명이 사용됐던 것.

리더십이 공고해진 뒤에 채택된 당명이 수명을 오래 유지했다는 지금까지의 패턴은, 당명이 당을 안정되게 하는 게 아니라 당이 당명을 안정되게 한다는 당연한 결론을 생각나게 한다.

지금, 미래통합당의 리더십은?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온라인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의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당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를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은 지난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온라인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의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당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를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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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래통합당 리더십은 안정기 리더십이 아니라 과도기 리더십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당내 민주적 정통성이 거의 없다. 정치적 기반도 비교적 약하다. 그래서 미래통합당이 민주적 정통성을 새로 부여해주지 않는 한, 김종인 체제 하에서는 안정적인 리더십이 나오기 힘들다.

김종인의 지위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의 리더섭이 안정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미래통합당 자체가 불안정해서 그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보일 뿐이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통합당이 당명을 바꾸고 일신한다면 한국 정치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리더십이 불안정한 지금 체제에서 새로운 당명이 채택된다면, 지금까지의 패턴을 고려하면 2020년 9월 미래통합당이 당명을 바꾼다 해도 이 당명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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