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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보면 공자가 제나라 경공의 질문에 답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가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것입니다."라도 답하였다. 제경공이 "좋은 말이요."라고 하였다. "참으로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고 자식이 자식답지 않으면 먹을 것이 [넉넉히] 있어도 어찌 [사람들이 맘 편히] 먹겠는가?"(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 公曰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父不父子不子雖有粟吾得而食諸) 

여기에서 유교의 주요 가르침에 속하는 이른바 정명론(正名論)이 나온다. 한 마디로 사회적으로 정해 놓은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질적 자격이 없으니 그 이름으로 불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성혁명론을 제기한다. 왕이 왕답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니 그를 몰아내는 것은 반역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답지 않은 왕을 몰아내어 아예 그 성을 바꾸는 혁명,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은 정당한 것이다. 

하물며 왕의 지위마저 이러할 진데 그 이름값을 못하는 목사와 의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사실 아무 일도 아니다. 의사와 목사의 자격은 무슨 잣대로 재는가? 그들이 그 직업에 들어설 때 근엄하게 한 선서에 나온 것이 바로 잣대이다. 의사는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있고 목사도 안수받을 때 하는 선서가 있다. 그것을 만약 그저 형식적인 통과 의례로 여긴 목사나 의사가 있다면 그는 처음부터 자격이 없는 자다.

물론 목사와 의사도 먹고살아야 한다. 그러나 밥그릇을 놓고 아귀다툼을 하는 꼴을 보면 과연 그들이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healing'하는 거룩한 'calling'에 응답한 자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애당초 돈이 목적이었다면 목사나 의사의 길에 들어서지 말았어야 한다. 인간의 고귀한 영적 육체적 생명을 놓고 돈으로 흥정하려 드는 꼴이 물건을 놓고 흥정하는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 작태를 보인다는 그들은 더 이상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 그 자격을 박탈함이 마땅하다.

돈을 벌고 싶으면 애당초 의사나 목사와 같은 성직이 아니라 오로지 돈 벌기를 목적으로 삼는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어야 한다. 혹자는 말한다. 목사나 의사가 되려고 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얼마인데 본전 생각이 안 나겠냐고. 그러나 본전을 뽑고 더 나아가 이득을 보려고 목사나 의사가 되려 했다면 처음부터 성직의 그릇이 아니었다. 그러니 본전에 연연하려거든 당장 부끄러운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날 일이다.

의사나 목사가 성직인 이유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다루는 일을 하기로 신 앞에서 맹세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6년 이상의 공부를 하고 의사고시를 통과한 의사 후보들이 하는 선서는 정확히 말해서 1948년 세계의사회총회에서 채택된 '제네바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서의 원 바탕이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태양신 아폴로와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비롯한 모든 신 앞에서 드리는 의사다운 삶을 살겠다는 거룩한 맹세이다. 목사들이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실무를 거친 후 목사고시를 통과하여 비로소 참여하는 목사 안수식에서는 안수 예식 직전에 하나님 앞에서 목사 후보들이 목사다운 목사가 되겠다고 서약을 한다. 그런데도 인류에 봉사하겠다고 스스로 한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시정잡배 놀음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의사나 목사가 아니니 그런 대접을 할 필요가 없다.

한국보다 의사수가 2배 이상 많은 인구 6천만 명의 이탈리아도 의대 정원을 2019년 9779명에서 2년 만인 올해 3월 1만 3072명으로 늘려 이를 다 채웠다. 그리고 7월 23일에는 추가로 1500명을 더 모집했다. 물론 이는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도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미 2년 전부터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은 의대 정원을 2022년부터 10년간 총 4000명을 늘릴 계획이다. 따져보면 1년에 겨우 400명씩 느는 셈이다. 수천 명이 단기간에 늘어난 이탈리아에서는 아무 반발이 없는데 1년에 겨우 400명으로 10년에 걸쳐 총 4000명만 늘리겠다는데 이 난리다. 정말 속이 너무 빤히 보이는 철밥통 놓치기 싫다는 장사치 놀음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국민 보건 조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보건 의료 기관에서 일하는 이른바 페이 닥터의 평균 연봉이 1억 5600만 원이다. 이는 일반 직장인 평균보다 4.6배 높다. 공부를 잘했고 노력을 더 많이 했으니 더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 막말로 의사들이 일반 직장인보다 수능이나 내신 성적이 4.6배 높고 근무 시간이나 노동 강도가 4.6배가 되는가? 정말 치사하게 이런 소리까지 하게 만들지 말자.

의사가 의사답고 목사가 목사다운 나라가 오면 위정자도 두려워서라도 위정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민이 무서운 나라에서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치가가 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무서운 국민은 누구인가? 당연히 정명론을 따르는 이들이다.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해서 그런 상식을 충분히 알 사람들이 겨우 밥그릇 때문에 핏대를 세워가며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이나 하면서 '네가 먼저 나를 대접해야 나도 너를 대접할 것이다!'라는 자세로 나온다면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그 누구도 아닌 신 앞에서 그리고 인류 앞에서 장한 맹세를 했다면 그 명성에 맞갖은 모습을 보여 달라. 그래야 시민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 참다운 권위가 설 것이다. 늘 그렇듯이 진정한 권위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머리나 밀고 피켓 들고 거리에 나서고 주먹 흔들며 구호나 외치고 자기 말 안 들어준다고 자격증을 흔들어 대며 협박이나 하면 누가 그 사람을 존경할 것인가? 이제라도 의사다운 의사 목사다운 목사가 넘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돈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영혼의 안녕을 목적으로 삼는 의사와 목사 말이다.

태그:#의사면허 박탈, #의대정원 , #목사 면허, #정명론, #철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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