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1 14:48최종 업데이트 20.08.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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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을 파는 마트와 음식을 포장해 주는 식당은 문을 열었는데 들어가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발열검사를 하고 QR코드로 신원을 등록한 뒤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이봉렬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8일간 수도권에서 2단계 거리두기에서 보다 강화된 방역조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음식 섭취가 금지되고, 일반음식점에서는 저녁 9시 이후에 식사할 수 없습니다. 실내 체육시설도 문을 닫고, 학원과 독서실도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확산세가 잡히지 않으면 3단계 거리두기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3단계 거리두기가 시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0인 이상의 모임이 전면 금지되기 때문에 전시회나 콘서트 같은 문화 행사는 물론이고, 결혼식도 10명 이상 참석이 안 됩니다. 종교시설이나 놀이공원, 영화관 같은 다중이용 시설도 문을 닫아야 하고, 음식점이나 소매점도 영업에 일정 수준 제약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거의 모든 일이 중단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3단계 거리두기를 시행하게 되면 얼마나 오래 하게 될까요? 그리고 과연 그 효과는 있는 걸까요?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이미 3단계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나라의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제가 겪었던 3단계 거리두기(여기서는 '서킷브레이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미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은 정할 수 있어도 끝은 정할 수 없다 
 

서킷브레이크 기간 동안 텅 빈 지하철 안 풍경. 바닥에는 거리두기를 위해 서 있어도 되는 곳에 스티커를 붙여 놨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에서는 코로나가 확산세를 보이던 4월 7일부터 서킷브레이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4월 7일부터 5월 4일까지 4주간 실시하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집단으로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6월까지 추가로 연장되었습니다. 시작하는 날은 정할 수 있어도 끝내는 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킷브레이크가 시행된 후 보건, 에너지, 대중교통, 치안, 은행, 마트서비스 등 공공 부문과 필수 서비스 부분을 제외한 80%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임시 폐쇄가 진행되고, 모두 재택근무를 시행했습니다. 저는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데 필수사업장으로 분류되어 출근을 하는 20%에 속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와 상점이 문을 닫자, 출퇴근 시간에 사람 많던 지하철과 버스는 승객이 없어 텅텅 비었습니다. 거리를 가득 채웠던 차들은 주차장만 지키고 있게 됐습니다.  

출근을 해도 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직원 중 절반가량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부서 간에 소통이 큰 문제가 됐습니다. 부랴부랴 화상회의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협력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들과 함께 하는 일들은 모두 중단되고 부품의 수급마저 차질을 빚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문을 닫은 회사는 문을 닫은 대로 문제고, 문을 연 회사도 문을 닫은 다른 회사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식당은 문을 열었지만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치우고 포장과 배달만으로 영업을 합니다. ⓒ 이봉렬


식당은 문을 닫거나 포장, 배달 판매만 가능하게 했습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집에서 음식을 잘 하지 않습니다. 더워서도 그렇고,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로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는데, 이제 외식 자체가 불가능해졌으니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집 근처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포장해 와서 집에서 식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매장 안에 손님을 받을 수 없게 된 식당들은 대거 음식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칠리크랩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여기는 일주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 콧대 높은 곳이었습니다. 서킷브레이크 이후 여기도 배달을 시작했을 정도이니 문을 닫지 않은 식당은 거의 모두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음식 배달 대행 서비스가 초호황을 누렸습니다. 코로나로 직업을 잃은 이들이 재취업보다는 대거 음식 배달을 선택하게 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손님이 없는 식당에서 그랩푸드 배달원들이 배달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직업을 잃은 많은 이들이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 이봉렬


서킷브레이크 기간 동안 가장 힘든 건 사적인 만남 자체가 금지된 것입니다. 따로 사는 나이 든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잠시 방문하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집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금지였습니다.

이 같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두 명의 주부가 우연히 마트에서 만났는데 그중 한 명이 차가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같이 차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릴 때 단속요원이 나타나서 신분증 검사를 하고 경고를 했습니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 아닌데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한 게 문제가 됐던 겁니다.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놀이터는 물론이고 거리나 공원의 모든 벤치까지 띠를 둘러 사람이 이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식료품이나 의약품을 사기 위해 외출하는 것처럼 합당한 목적이 있는 경우 말고는 외출도 자제하도록 했습니다.

정부가 공원에 '로봇개'를 투입한 이유
 

스트레이츠 타임즈에 공원에서 거리두기 켐페인을 하고 있는 로봇개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즈 화면 갈무리


그래도 공원 등에서 운동을 하기 위해 외출하는 건 허용이 되었기 때문에 평일에도 시내는 텅텅 비고, 공원에는 사람이 모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공원에 로봇개를 투입해서 1미터 이상 거리두기를 하도록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이 집에만 있게 되면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들은 주로 주택가에 서식하는데, 사람들이 회사에 안 가고 낮에도 집에만 있다 보니 모기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뎅기열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싱가포르 보건부의 발표에 따르면 8월 22일 현재 2만6000 건이 넘는 뎅기열 사례가 발생해서 올해가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빨간색이 올 해 뎅기열 환자를 표시한 겁니다. 이대로 가다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싱가포르 보건부 (MOH)


온 가족이 집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이 기간 동안 가정 불화가 늘고, 아파트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층간 소음으로 인해 이웃 간의 다툼도 늘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사람이 갇혀 지내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이렇게 갇혀 지내는 동안 한국에서는 코로나 확산세가 잡혀서 선거도 치르고, 경제성장률도 OECD 국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틀어막아도 코로나가 안 잡히는데, 한국은 할 것 다 하면서도 저렇게 잘 관리하는 걸 보니 'K방역'이 괜한 허세는 아니란 생각이 들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6월 2일, 일단 8주의 서킷브레이크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문을 닫았던 제조업체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최대 10명 한도 안에서 결혼식 및 장례식이 허용되는 수준의 1단계 규제 해제였습니다. 실제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2단계 규제 해제는 그로부터 다시 보름이 더 지난 6월 19일부터였습니다.  

두 달 반 만에 드디어 식당이 문을 열게 되어서 5명 한도 안에서 모여 식사가 가능하고, 스파나 헬스장도 문을 열었습니다. 결혼식 및 장례식에는 손님 최대 20명까지 참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적인 모임도 5명까지 가능해졌습니다.

예, 맞습니다. 한국은 3단계 거리두기가 시작되면 10명 이상 모임이 불가능해지지만, 여기서는 서킷브레이크 기간 동안은 아예 모임 금지, 해제된 이후에도 5명까지만 모일 수 있습니다.

효과는 있지만... 출혈도 큰 서킷브레이크

이렇게 힘든 기간을 버텨낸 결과는 어떠할까요? 일단 2분기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13.2% 감소했습니다. 분기별 기록으로는 사상 최악의 실적입니다. 2분기 실업률은 2.9%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3.3%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싱가포르 확진자 차트. 회색으로 표시된 기간이 서킷브레이크 기간입니다. ⓒ NEA (싱가포르 환경부) 홈페이지 자료 갈무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코로나19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요? 확진자 차트를 보면 서킷브레이크 초기 하루 50명 이상 발생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급격하게 확진자 수가 줄어 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제 이후 다시 하루 20명 수준으로 올라갔다가 8월 들어 하루 5명 이내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분명 효과는 있지만 감당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적은 도시국가에 법 집행이 엄격하고 국민들도 비교적 정부의 지침에 잘 따르는 편이라 큰 무리 없이 통제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서킷브레이크 시작 후 사적인 모임이 가능할 때까지 두 달 반이나 걸렸습니다.
  
3단계 거리두기가 시작된다면 나라 경제의 타격, 자영업자를 비롯해서 개개인의 손실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상황 아래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갇혀 지내야 하는 것, 이게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어떤 사회문제를 만들어 낼지 모릅니다.

모두의 자발적인 협조로 강화된 방역조치가 효과를 봐서, 한국만큼은 3단계 거리두기까지 가지 않길 바랍니다. 서킷브레이크,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길고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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