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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2020.8.28
  (도쿄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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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악화설이 돌던 아베 신조 총리가 대장염을 이유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내년 9월 임기가 만료되는 그는 차기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하게 됐다.

갑신정변 이듬해인 1885년 12월 22일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총리대신이 된 이래로 가장 오래 집권한 총리는 아베 신조다. 아베가 이 기록을 수립한 것은 9개월 전인 작년 11월 20일이다. 이 날 기준으로 통산 재임 일수가 2887일이 되어 러일전쟁·을사늑약·한국강점 때 총리였던 가쓰라 다로의 2886일을 넘어섰다.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통치를 인정하며, 미국은 일본의 한국 침략에 협력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29일)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가쓰라 다로는 1901~1906년, 1908~1911년, 1912~1913년에 총리직을 수행했다. 역대 최장수 3위는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동생이자 아베의 외종조부(외작은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2798일간 재임한 사토는 박정희 정권과 합작해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한 주역이다.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야망

1954년 9월 태어난 아베 신조는 내각관방차관(정부 부대변인) 시절인 2002년 9월(48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따라 평양에 가서 북일평양선언 발표에 참여했다. 하지만 극우세력 및 일본인 납치문제(북한 표현은 '월북') 단체와 연대해 반(反)북한 여론을 고조시켜 북일 수교를 무산시키고, 이를 발판으로 극우의 대표주자로 떠오르며 2006년 9월(52세) 총리가 됐다. 하지만 대장염을 이유로 1년 만인 2007년 9월 퇴진했다. 그랬던 그가 13년 만인 올해에도 동일한 이유로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아베가 자유민주당(자민당) 간사장이 된 것은 북일평양선언 이듬해인 2003년 9월(49세)이다. 그가 군사대국화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던 도쿄올림픽 개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125차 총회에서 결정된 것은 2013년 9월(59세)이다. 이번에 사퇴를 표명한 날은 9월이 임박한 8월 28일이다. 9월에 태어난 그의 정치인생에서 9월이 이처럼 자주 등장하고 있다.

2007년과 똑같이 대장염을 이유로 퇴진하게 됐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일본 열도가 위기에 처하게 됐지만, 아베의 협력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아베 역시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또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에 그 여세를 몰아 헌법 제9조를 개정하고 일본을 '전쟁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고자 했지만, 성공적 개최는커녕 개최조차 하지 못하고 올림픽을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이에 따라 평화헌법 개정도 당분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아베 신조는 외조부이자 정신적·정치적 스승인 기시 노부스케처럼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살았다. 기시 노부스케는 1954년에 쓴 '진정한 독립 일본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현행 헌법이 점령 하의 점령군 최고사령관으로부터 강요된 것이며 원문이 영어로 쓰인 번역 헌법이라는 것은 오늘날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민족적 자신감과 독립의 기백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헌법을 가져야만 한다"며 전쟁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9조의 개정을 주장했다.

아베 신조는 외조부의 지역구뿐 아니라 정치적 야망까지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런 그가 코로나19와 올림픽 연기로 인해 정치 일정의 차질을 빚은 데다가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66세 나이에 총리직을 그만두는 것은, 표면상으로 내세운 건강 문제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외조부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임기 내에 이루기 힘들게 된 엄중한 현실과 그로 인한 좌절감도 사퇴 표명을 유도한 또 다른 이유였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기시 노부스케. 65세 때인 1961년 모습.
 기시 노부스케. 65세 때인 1961년 모습.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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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나 마찬가지다. 또 자위대는 전적으로 수비에 치중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는 '적 기지 공격론'을 띄우며 자위대를 선제공격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자위대는 '보통국가'의 군대와 사실상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헌법 제9조가 개정돼야 공식 결정된다. 그런 '공식 결정'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아베 신조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물론 아베가 또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역대급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다가, 경제 한일전(1인당 GDP 기준)에서마저 뒤진 상태로 물러난 그가 다시 복귀하려면 2012년 복귀 때보다 훨씬 더 힘겨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아베 신조는 외조부의 발자취를 거의 그대로 따라왔다. 하지만 중대한 정치적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되돌리는 모습은 외조부와 대조를 이룬다.

격렬한 저항 속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 날치기 통과

1957년부터 3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기시 노부스케 역시 자위대의 강화를 지향했다. 그는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넓혀준다는 미국의 약속을 받고 미일안보조약을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추진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미국은 세계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유럽 국가들은 경제공동체 모색을 통해, 아시아·아프리카 제3세계 국가들은 비동맹운동을 통해 미국의 패권에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도전했다. 비동맹운동은 소련의 패권에도 위협이 됐다.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의 상황은 미·소 양쪽에 똑같이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고자 소련은 1961년 8월부터 베를린 장벽을 축조했다. 미국은 이런 흐름이 동아시아에 파급되지 않도록 하고자 단속에 나섰다. 미일동맹을 업그레이드하고 한일협정을 중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 주도하에 한·미·일 3국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시도는 한국 민중뿐 아니라 일본 민중의 반발도 초래했다. 군국주의적 팽창이 원자폭탄 참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미일동맹의 업그레이드가 일본인들을 전쟁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 체결을 막기 위해 이른바 안보투쟁이라는 저항운동을 벌였다. 한국에서 4·19 혁명이 일어날 때 일본에서는 그런 투쟁이 벌어졌다.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교수의 <현대 일본의 역사>는 "시위의 규모와 강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며 "가장 큰 시위에는 줄잡아 10만 명이 참가했으며, 어쩌면 20만 명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기시 노부스케는 조약에 대한 동의를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 날이 1960년 5월 19일이다. 한국에서는 이승만의 4월 26일자 하야 성명으로 사태가 누그러진 데 반해, 일본에서는 5월 중순까지도 사태가 확산되고 있었다.
 
 안보투쟁. 1960년 6월 15일 상황.
 안보투쟁. 1960년 6월 15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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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 통과로 인해 국민적 저항이 한층 더 거세지는 속에서, 기시 노부스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신변 안전을 이유로 6월 19일로 예정된 일본 방문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미국을 믿고 일을 추진했건만, 조약이 국회를 통과하자 미국이 기시 노부스케에 대한 태도를 바꿨던 것이다.

이 때문에 기시 노부스케의 신용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결국 사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현직 미국 대통령 최초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키지 못한 그는 7월 19일자로 총리직을 떠났다.

비록 미국에 뒤통수를 맞고 불명예 퇴진을 하기는 했지만, 기시 노부스케는 미일동맹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넓혔다. 자위대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주일미군과 공동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기시 노부스케는 자위대를 한 단계 강화시키는 정치적 과제의 문턱을 간신히 넘은 상태에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문턱을 넘지 못한 외손자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기시 노부스케가 문턱을 넘고 사퇴한 것과 아베 신조가 문턱을 못 넘고 사퇴한 것은 두 조손(祖孫)이 모두 힘겨운 과제에 도전했음을 뜻한다. 이렇게 대를 이어가며 군대 강화를 추구할 정도로 일본 극우는 신(新)대동아공영권의 꿈에 집착하고 있다.

아베 신조가 사퇴함에 따라 그 꿈은 당분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임 총리들이 계속해서 그 꿈을 향해 달려갈 것이므로 일본의 위험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물러가는' 사람보다 '들어올' 사람들을 더 신경 써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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