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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어느덧 9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다. 지난 4월 기사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대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다'를 슬 때만 해도 코로나 19와 문명전환의 가능성에 관한 기사들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관련 기사들이 차고 넘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정의하기 전에, 그 이전 시대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정의하기 전에, 그 이전 시대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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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예고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시대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즉 우리가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준으로 잡아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정의하기 전에, 그 이전 시대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을 얼마 전에 내놓았다. 그 책에 참여한 저자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견하면서 저자들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촉발한 것으로 본다. 즉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해야 밝은 새 시대가 열린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을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모더니티(modernity)의 종말'로 보려고 한다. '모더니티(modernité)'라는 말은 불어로, 보들레르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우리말로는 '근대성' 또는 '현대성'으로 번역되기도 해서 혼동을 주기 때문에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모더니티(근대성 또는 현대성)'의 종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모더니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더니티'의 역사는 대략 300년이 되지 않는다. '모더니티'의 근간은 세 축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첫째는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다는 과학기술의 정립과 발전이다.

둘째는 이 새로운 과학기술에 기반한 휴머니즘(humanism 인문주의 내지는 인간중심주의)의 정립과 발전이며 셋째는 이 휴머니즘과 새로운 과학기술 발전에 바탕을 둔 사회과학의 정립과 발전이다.

'모더니티'의 이 세 개의 축은 이 이전의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그 이전 시대를 '전근대'라 부르고, 우리 시대를 '모더니티'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20만 년 전에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 중 우리가 유일하게 특이점(singularity)을 이룬다고 보았던 이 300년간의 '모더니티' 역사에 흠을 내었던 사건들이 몇 번 있었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 1차, 2차 세계대전, 대공황, 핵전쟁의 위협, 기후 위기 등이 그렇다.

그러나 '모더니티'에 대한 결정적인 도전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났다. 프랑스 철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해체철학'이란 이름으로 '모더니티'의 바탕을 이루는 근대철학이 논리적으로 근거 없음을 밝히며 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리고 1991년에 소련의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는 '모더니티'에서 출발했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회과학적 담론의 한계와 대안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 '모더니티'의 사회과학적 대안의 부재 상황에서 브렉시트(Brexit)가 터져 나왔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과학적 대안의 부재 내에서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힘들다고 아우성을 쳤고 일부 중남미인들은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이주하려고 하였다.

바로 그 시점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 한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의 대유행이 가하는 충격이 너무 커 대유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모두가 행복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모더니티'는 인문학적 축과 사회과학적 축이라는 두 개의 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러한 2000년대 '모더니티' 사회의 위기를 우리 영화 <기생충>이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 <기생충>처럼 2019년 대한민국 아파트 경비원의 삶이나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의 삶이 '전근대'적 삶, 예컨대 조선 시대의 야경꾼이나 프랑스 파리의 궁전의 하녀의 삶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 곤란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나마 우리의 '모더니티'를 지켜주던 것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었다. 천부인권, 자유, 평등, 사회적 안전망 등에서 우리 시대의 경비원과 조선 시대의 야경꾼(밤사이에 화재나 범죄가 없도록 살피고 지키는 사람)이 큰 차이를 갖지는 못했을지라도 우리 시대의 경비원은 휴대폰을 옆에 차고 좁은 경비실에서 TV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명의 이기(利器)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이 조선 시대 야경꾼보다 삶의 질이 더 낫다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모더니티'의 출발점이자 마지노선이었던 과학기술이 위기에 직면했다. '모더니티'의 300년의 역사 동안에도 과학기술은 언제나 위기와 도전을 받아왔지만,  인류는 주로 눈부신 과학기술의 부작용을 걱정했지 과학기술에 의한 자연의 통제 가능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모더니티'의 역사 300년 만에 이러한 믿음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모더니티'의 임계점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의 백신을 만들고 못 만들고가 전염병학을 무력화시킬 일이 아니며, 또 전염병학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여 과학 전체에 문제가 생겼다고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모더니티'가 종말을 고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코로나 19의 대유행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모더니티' 라는 거대 댐의 벽이 이미 금이 갈 대로 갔기 때문이다. 인류의 바이러스 '정복'의 실패는 '모더니티'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부르노 라투르(Bruno Latour)는 1991년에 불어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We Have Never Been Modern)>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사실 보들레르보다 먼저 5세기에 기독교인들은 물질적 욕망에 맥을 못 추는 '촌사람(paganus)' 로마인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모던(modernus)'이라는 말을 먼저 사용했다.

필자는 라틴아메리카 지역학자이다. 멀리서 와서 페루 마추픽추의 정상에 서면 관광객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돌을 레이저로 자르듯 정교하게 자르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던 잉카인들이 왜?.....'라는 의문을 꺼내는 것이다.

천년 후의 미래세대도 같은 부류의 탄식을 하거나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을지 모른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으로 죽었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일까'? 또는 '이 시대 사람들은 왜 온종일 손바닥만한 크기의 물체를 들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그것을 바라봤을까?'

브라질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Eduardo Viveiros de Castro)는 "안티 나르시스"를 논하면서 현대인들이 가진 나르시시즘을 지적한다. 필자는 약 300년간 인류가 이뤄놓은 업적이 훌륭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모더니티'에 대한 자부심이 자화자찬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우리 외의 다른 존재, 예컨대 강아지, 닭, 소는 물론 외계인 또는 신으로부터 우리의 현대문명이 훌륭하다는 축하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다. 아니면 '전근대' 인의 눈에, 예컨대 '전근대' 시대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예수, 공자, 석가의 눈에 우리의 '모더니티'는 어떻게 비칠까 생각해 본다.

당연히 천년 후의 미래세대는 우리 시대를 '모더니티'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천년 후에는 그들이 현대인 일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 시대를 뭐라고 부를까? 우리가 중세를 그렇게 불렀듯 다크 에이지(Dark Age)라고 부를까?

덧붙이는 글 |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21세기 문명전환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웹진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코로나 , #문명전환, #모더니티, #근대, #판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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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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