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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동상 이름뿐만 아니라, 옆에 설명 부분도 모두 한자로 기록을 남겼다.
▲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글 이순신 장군 동상 이름뿐만 아니라, 옆에 설명 부분도 모두 한자로 기록을 남겼다.
ⓒ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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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忠武公李舜臣將軍像'이라고 한자로만 적혀있는 것을 한글로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김슬옹씨가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상 이름을 한글로 적어 달라고 국민신문고에 제안했다. 장군 이름이 우리나라의 공용 문자로 적혀있지 않아, 마치 명나라 장군이 파병을 와 우리나라에서 공을 세운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군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에 걸맞게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인 '한글'로 적자는 주장이다.

2005년도에 제정한 국어기본법에 의거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이라고 적고, 동상 밑이나 옆에 5개 나라 언어 설명 표지판을 세우자는 대안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한자를 모르는 어린이도 읽을 수 있고, 장군의 품격도 높일 수 있다. 가장 자랑스러운 위인의 이름을 우리나라 글자로 적어 외국인에게 '한글'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

한자 표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도 학교 건물에 한자로 크게 학교 이름을 써 놓은 것을 본다. 정문 앞 문패도 마찬가지다. 한자로 써 있다. 그뿐인가 학교를 들어서는 순간 큰 돌탑에 교훈도 한자고, 교훈이 아니더라도 돌탑에는 읽을 수도 없는 한자 표기가 보인다. 이것만 보면 중국 학교처럼 느껴진다.

학교 외벽에 한자 표기가 있는 경기 수원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교사(여, 국어)는 "관성적인 과거의 언어습관을 시대의 변화 고려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며, 표기에 대한 고민을 덜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

역시 같은 상황에 대해 경기 수원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교사(여, 국어)는 "처음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궁서체로 쓰인 학교 이름 때문에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꼭 국어교사여서가 아니라 글씨 자체의 느낌도 중국의 관공서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때 우리는 문자가 없어서 수천 년 동안 중국의 글자를 빌려 썼다. 그러다가 세종대왕이 인류 역사에 빛나는 한글을 창제, 반포하면서, 모두가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문으로 생활을 한 탓에 쉽게 고치지 못하고 있다.

한자에 대한 집착은 뿌리가 깊고 무섭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차 한국을 찾았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글을 써서 선물했다. 이 글 빌 클린턴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통역하는 과정에서 "고속도로엔 톨게이트 없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실제로 2017년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핵 관련 회담 과정에서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발언을 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 주장에 대해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상황은 시 주석의 패권주의적 시선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역사 이해 부족이 빚은 사건이다. 두 강대국 지도자가 한반도를 보는 눈도 걱정이 된다. 하지만 당혹감과 놀라움에 앞서 우리의 현실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문자가 없던 시절에 빌려 쓰던 한자를 아직도 쓰면서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의 역사가 존맨은 한글을 "인류 문자의 꿈"이라고 했다. 한국 대사를 지낸 미국인 스티븐스는 "한국인들은 한글의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전 세계인들과 나눠야 한다"라고 말했다. 구글의 슈미츠 회장은 "디지털 시대에 한글이 더욱 빛나고 있다. 컴퓨터와 잘 어울리는 문자다"라고 했다.

이처럼 많은 곳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주목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까지 지정된 인류 문자다. 정작 우리는 살피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거 문화재는 한자문화권이었을 때 한자 현판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 시대의 한자 표기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과 같다.

광화문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다. 대한민국 서울의 첫 문이고 얼굴이다. 이 일대는 연중 유동인구가 많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반드시 돌아보는 곳이다. 중국은 2002년부터 동북공정을 앞세워 고구려와 발해도 중국사 일부로 집어넣었다.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 관광객이 많은데, 한자 사용은 그들에게 잘못된 한반도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세계는 지금 코로나19로 힘겨워하고 있다. 하늘길은 막혔고, 세계 경제는 최악의 사태에 빠져 있다. 이 험난한 와중에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과를 냈고, 세계에서 모범 국가로 섰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대중문화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한류로 자리 잡았다. 지구촌 전역에서 우리 드라마와 노래를 통해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겠다고 야단이다.

과도한 한자 표기는 모처럼 일어나는 한글 세계화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우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목숨을 걸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역사가 있다. 잘못된 습관에 대한 성찰 없이 무심코 한자 표기를 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 이는 엄격히 이야기하면 국법(국어기본법)을 어기고 있다.

우리글은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의 일부다. 국경일에 달랑 태극기 하나 걸었다고 우리가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한글로 온전하게 문자 생활을 할 수 있는데, 불순물 같은 한자를 쓰는 것은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꼴이다. 이 불순물을 제거하지 않는 것은 우리 문화에, 우리 모국어에 애정이 없다는 뜻이다. 한글로 바르게 표기하는 것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드러내는 일이다. 조상으로부터 받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누리고, 자랑스럽게 물려주는 일은 이 시대 우리 의무고, 책무다. 한글 표기로 주체성을 회복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을 닦아야 한다.

태그:#한자, #이순신, #한글,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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