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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 [편집자말]

나는 미니멀리스트 선언 3년차다. 계획대로였다면 지난 3월 대구를 떠나 본가로 돌아가야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었다. 이사 준비를 위해 꺼내놓은 짐이 거슬리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집어넣을 자신은 없다. 

이 짐을 다 부산으로 보내는 것은 미니멀리스트 명성에 먹칠하는 짓이다. 자, 팔 건 팔고, 줄 건 주고, 버릴 건 버리자! 4월 초 먼저 팔 것, 줄 것, 버릴 것, 기부할 것을 분류했다. 대전제는 내 손에서 원래 목적으로 쓰이지 않는 물건들을 보내준다는 거다. 예를 들어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듣지 않는 음반같은.

팔 것은 새 상품이나 한두 번 사용한 것이 가장 좋지만, 다리미처럼 물건 자체에 사용감이 별로 없다든지 그릇처럼 씻어서 깨끗하게 쓸 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하다. 줄 것은 우선 메신저 목록을 살펴보고 내 인맥을 파악한다. 다행히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나는 비교적 편리하게 타깃을 정했다. 나와 사이즈가 같은 친구에게 신발과 옷 사진을 찍어 보낸 뒤 동의하면 나눠주었다.

버릴 것을 정할 때는 양심이 중요하다. 팔거나 줄 수 없는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것을 공짜로 줘도 쓸 의향이 있는가? '미쳤냐?'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면 과감하게 휴지통으로.

기부할 것은 '줄 것'의 자매품. 여기서도 양심이 중요하다. 간혹 버려야 할 물건들을 기부하는 파렴치한들이 있다. 내가 기부한 물건을 누군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분류해야 한다. 기증함은 쓰레기통이 아니다.
 
먼저 팔 것, 줄 것, 버릴 것, 기부할 것을 분류했다.
 먼저 팔 것, 줄 것, 버릴 것, 기부할 것을 분류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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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중고거래 앱을 다운받았다. 동네 이웃들과 물건을 사고파는 유명한 플랫폼이다. 앱을 설치했으니, 이제 물건을 등록할 차례다. 처음으로 내놓은 물건은 남방이었다. 사이즈가 안 맞아 한 번도 입지 않고 넣어둔 옷이었다. 이 마켓의 특성상 비싼 옷은 잘 안 팔릴 것 같아 과감하게 단돈 만 원에 올렸다.

좋은 옷인 만큼 바로 팔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중고거래 세계에서는 기다림이 필수였다. 무려 네 사람과의 채팅을 거쳐 5월 초, 거래에 성공했다. 마침 택배 거래였다. 편의점 택배는 같은 도시 안에서는 3천 원 이하로 해결되기 때문에 구매자에게 2천 원만 더 받고 택배를 보냈다. 옷 하나 파는 데 3주나 걸릴 줄이야!

4월 초부터 등록해둔 매트리스는 마음의 짐이었다. 누가 봐도 새것처럼 깨끗한데, 버리자니 아깝고, 심지어 버리려면 돈도 내야 한다. 다른 주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는 녀석이다. 10만 원 좀 넘게 주고 산 매트리스를 만 오천 원에 등록했다. 직접 가져가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았다.

이사 날은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이만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는 도중 알람이 울렸다. 구매자는 '남편을 보낸다'고 했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매트리스를 집 현관에 옮겨두니 복도에서 남자 두 명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너를 돌아 매트리스를 마주한 그들은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한 명이 물었다.

"형님, 매트리스였어요?"
"그러게. 나도 지금 알았어."

두 남자는 껄껄 웃으며 매트리스를 들고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웃음소리가 집 안까지 들려왔다. 찾아보니 이런 사례가 많은 모양이다. 매트리스처럼 무겁고 큰 물건을 옮기는 일인데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다니, 생각할수록 웃긴 일이었다.

승승장구했던 중고 마켓 거래, 빌런이 나타났다 

본가로 돌아온 나는 '버려버려'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마켓 빌런(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을 만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빌런은 여름용 슬랙스에 접근했다. 바지 사이즈는 물론, 내 키가 얼마인지까지 적어두고, 사이즈가 적혀 있는 상표까지 사진으로 올려두었지만 빌런은 이름값을 했다. 나보다 키가 15cm나 작은데 이 옷을 입을 수 있겠냐는 말을 걸어왔다.

'안 사겠군'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굳이 입으시려면 기장을 수선하셔야 할 거라고 대답했다. 예상과 달리 빌런은 선뜻 옷을 사겠다고, 며칠 뒤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일정을 잡았다. 약속 하루 전, 빌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 오늘로 약속을 앞당길 수 있냐고. 어렵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벤치에 앉아서 빌런을 기다리는데 오라는 사람은 오지도 않고 모기만 꼬였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을 늦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대뜸 '잔돈 없냐'고 물었다. 바지는 6천 원인데 본인한테는 만 원짜리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화를 내려는 찰나, 빌런은 만 원짜리 지폐를 바꾸러 근처 가게에 갔다. 다녀와서 옷을 건네 받은 빌런의 입에서 나오는 말. "나한테 크겠는데?" 나는 마음이 단단히 상했다. 바지는 팔지 않을 테니 그냥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빌런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마켓에 올린 모든 물건을 삭제하고 '기부할 것' 상자에 들어 있던 다른 물건과 함께 아름다운 가게에 갖다 주었다. 속이 후련했다. 분명 뭐든 비우자고 시작한 일인데, 정작 내 속은 비우지 못했나 보다.

새것을 사는 대신 저렴한 금액으로 물건을 나눠 쓰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일 텐데,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가끔 지뢰를 밟는 기분일 때가 생긴다. 빌런 이후로는 저런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용자에게는 아예 채팅에 대꾸도 하지 않는다.

안 좋은 경험만 한 것은 아니다. 몇 년 동안 사고 싶었던 물건을 구매한 경험도 있다. 대학생 때 유행한 가방인데, 당시에는 관심도 없다가 몇 년 전부터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메신저 백이다. 수시로 중고장터를 뒤졌지만 '거래 완료'라는 문구에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던 어느 날,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3초 전에 올라온 그 가방은 정확히 내가 원하는 색이었고 어느 정도 사용감은 있었지만 깨끗한 편이었다. 판매자는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만, 마침 내가 사는 동네에 올 일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3천 원 할인까지! 중고 거래에 지뢰가 있으면 보물도 있는 법인가보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갈테야
 
버려버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버려버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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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어릴 때부터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고 싶었고, 그 꿈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이 시국'에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지만 하나씩 팔고, 나누고, 버리면서 발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무엇인가를 '가진다'는 행위에 달려오는 책임감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웬만하면 책도 빌려 읽고, 소장할 정도로 재밌는 책이 아니면 중고서점에 판매한다. 캐리어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에 있는 물건의 숫자를 줄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다. 구태여 '새것'을 사서 하나를 더하고 싶지 않다. '낡은 것'이라도 필요에 따라 쓰면 그만이다. 사소하지만 이를 통해 자원 낭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

조만간 두 번째 이사를 한다. 지난번은 기한이 정해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한 독립이라 버릴 것이 많아 설렌다. 대구에서 살던 집도 초반에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물건이 쌓였다.

이번에는 각오를 다져 필요한 물건만 최소한 배치하겠다! 목표는 다음과 같다.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어? 집을 잘못 찾아왔네?' 하며 현관문에 적힌 호수를 확인하게 만드는 것. 빈집이라고 의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할 테지.

태그:#중고거래,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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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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