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메시와 함께 유럽축구계를 호령했던 FC바르셀로나(스페인)의 최전성기도 어느덧 내리막을 향해 가고 있다.

15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포르투갈 리스본 에스타디오 다 루즈에서 열린 2019-2020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바르셀로나는 독일의 강호 바이에른 뮌헨에게 2-8로 참패했다. 이미 국왕컵(코파델레이)과 라리가 타이틀을 놓친 바르셀로나는 마지막 희망이던 챔피언스리그마저 치욕적인 완패로 마무리하며 2007-08시즌 이후 12년 만에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바르셀로나와 뮌헨의 대결은 일찌감치 올해 챔피언스리그의 '미리보는 결승전'으로 불릴 정도의 빅매치였다.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리버풀 등 강력한 우승후보들이 줄줄이 조기탈락하며 라이프치히, 파리 생제르맹, 맨체스터 시티-리옹 등 그동안 챔스에서는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팀들이 대거 약진하는 이변이 속출한 상태였다. 두 팀 중 승리하는 팀에서 올해 챔스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득점왕' 메시와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의 에이스 맞대결도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경기 내용은 그야말로 뮌헨의 압승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트레블을 노리는 뮌헨이 시즌 후반기 부진에 빠진 바르셀로나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일방적인 승부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초반부터 거세게 밀어붙인 뮌헨은 강력한 압박과 예리한 역습을 앞세워 전후반 각각 4골을 터트리며 만신창이가 된 바르셀로나를 폭격했다.

뮌헨은 경기시작 4분 만에 페리시치-레반도프스키-뮐러로 이어지는 깔끔한 패스 연결과 뮐러의 마무리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다. 1-1로 맞선 전반 21분에는 페리시치-27분 그나브리-31분에는 뮐러의 두 번째 골이 터지며 단숨에 4-1로 리드를 벌렸다. 바르셀로나는 후반 수아레스가 한 골을 만회하며 추격의 고삐를 당기는 듯했으나 후반 18분 키미히의 추가골로 다시 점수차를 벌렸다.

이미 무너져가던 바르셀로나에 쐐기를 박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쿠티뉴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방출 대상에 올라 뮌헨으로 임대를 와있던 쿠티뉴는 이날 후반 교체투입되어 15분 만에 2골 1도움을 몰아치는 맹활약으로 자신을 버린 친정팀에 화끈하게 복수했다. 쿠티뉴는 후반 37분 정확한 크로스로 레반도프스키의 헤더골을 도왔고, 40분과 42분에는 현란한 개인플레이로 직접 연속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 팬들을 멘붕으로 몰아넣었다.

바르셀로나는 사실상 뮌헨의 5번째 골이 터진 후반 18분경부터 막판 약 30분은 사실상 승부를 포기한 듯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했다. 무득점에 그친 에이스 메시도 의욕을 잃고 걸어다니는 모습만 눈에 띄었을 뿐이다.

바르셀로나가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8골을 실점한 것과 뮌헨이 한 경기에서 8골을 넣은 것은 모두 역대 최초다. 바르셀로나가 이날 경기에서 시도한 슈팅 숫자(7개)을 모두 합쳐도 뮌헨이 기록한 8골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볼 점유율에서는 51대49로 바르셀로나가 오히려 근소하게 앞선 경기였다. 티키타카로 대표되던 바르셀로나의 점유율과 패싱축구를 봉쇄하는 방법을 뮌헨은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이른바 MSN(메시-수아레스-네이마르) 트리오를 앞세워 2014-15 시즌 트레블(3관왕)을 차지하며 최전성기를 기록한 이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최근 5년간 4강 1회-8강 4회에 그치며 결승조차 올라보지 못했다.

2015-16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8강 1차전에서 2-1 승리를 거뒀지만 2차전에서 0-2로 역전패하며 다 잡은 4강행을 놓친 것을 시작으로 2016-2017시즌 8강전에는 유벤투스와 1차전에서 0-3의 완패를 당한 뒤 2차전에서도 무득점 무승부에 그치며 탈락했다.

2017-2018시즌에는 AS로마와의 8강 원정 2차전에서 0-3의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는 '로마의 기적'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2018-2019시즌에는 모처럼 4강에 진출했으나 리버풀과 1차전에서 3-0 대승에도 2차전 원정에서 무려 4실점을 하며 이번엔 '안필드의 기적'에 제물이 됐다. 올해는 역전패는 아니지만 뮌헨과의 단판승부에서 역대급 참패를 당하는 '리스본 참사'를 당하며 3년 연속 챔스 명승부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메시는 라리가 우승을 놓치고 난 후 "이제 우리는 약팀이 됐다"고 한탄한 바 있다. 메시는 올시즌도 라리가 득점(25골)-도움(21개)왕을 홀로 휩쓸며 20-20 클럽에 가입하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지만 정작 소속팀 바르셀로나의 전력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는 평가다. 메시를 비롯하여 루이스 수아레스-헤라르드 피케-세르히오 부스케츠 등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30대를 훌쩍 넘겼다. 쿠티뉴와 앙투안 그리즈만 등 최근 바르셀로나가 전력보강을 위하여 큰 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들은 잇달아 팀 적응에 실패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몇 년 전부터 바르셀로나는 메시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 지 오래됐다.

메시조차도 훌륭한 기록상의 숫자에 비하여 정작 큰 경기에서의 활약이나 '크랙'으로서의 역할은 예전만 못하고 오히려 기복이 심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뮌헨은 최전방에서 적극적인 압박으로 바르셀로나의 빌드업을 저지하면서 메시에게 결정적인 패스가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했다. 라키티치를 대신하여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로 후방 빌드업을 이끌어야했던 부스케츠가 탈압박에 실패하여 연이은 패스미스로 뮌헨에 역습 기회를 제공했고,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전방에 고립된 메시는 무기력했다.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감독에 이어 1월에 부임한 키케 세티엔 감독 역시 팀의 부진을 타파할 만한 전술적 대안이나 선수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메시를 중심으로 장기집권에 성공하며 리빌딩과 세대교체에 소홀했던 바르셀로나의 매너리즘이 결국 올시즌의 재앙을 초래한 셈이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유럽을 지배하던 5~6년전의 무적함대가 아니다. 스포츠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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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메시 레반도프스키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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