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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9월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파업 출정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정인열.
  2007년 9월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파업 출정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정인열.
ⓒ 정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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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30일, 대학 졸업 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코스콤'(전 한국증권전산)이라는 공기업 성격이 드러나는 회사와 이렇게 질긴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중략) '경력 쌓을 수 있고 월급만 잘 나오면 괜찮지' 하는 생각에 개의치 않았다. 입사 후 1년이 지나도록 '아이티네이드'라는 회사와 '코스콤'과의 관계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계약은 코스콤과 했는데 월급은 아이티네이드에서 나왔다. - 2007년 <작은책> 9월호에 정인열이 쓴 글
 
비정규법이 시행된 2007년, 코스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지 않기 위한 꼼수를 부렸다. 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코스콤비정규직지부를 설립했고, 당시 정인열은 부지부장으로 활동했다. 그해 11월에는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 건물 옥탑에서 22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다. (관련 기사: "우리 요구는 작은데 왜 분신·단식하게 하나" http://bit.ly/3FeRTj)
  
정인열은 코스콤 싸움을 하기 전까진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몰랐다. 매일 회사에 출퇴근하고, 그 대가로 받는 급여로 생계를 이어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2007년 5월에 7년 동안 일했던 코스콤에서 비정규직노동조합을 만들고 인생이 바뀌었다. 노동조합을 알게 되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맞서 싸웠다. 싸움은 쉽지 않았다. 우울증이 왔다. 계속 싸우다가는 지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는 결국 2008년 12월 말, 475일간의 투쟁을 끝으로 퇴사를 결심했다.

7월 7일 오후 6시, 합정동 인근 카페에서 월간 <작은책> 독자사업부에서 일하는 정인열(43)씨를 만났다.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작은책> 일꾼으로
  
 합정동 인근 카페에서 필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작은책> 일꾼 정인열
 합정동 인근 카페에서 필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작은책> 일꾼 정인열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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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너무 힘들어서 쉬고 있었어요. 어느 날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선생님이 산악회 '역사와 산'에서 지리산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코스콤 싸움할 때 저를 인터뷰했었거든요. 그때부터 저하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코스콤 노동조합 활동할 때 삶이 <작은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코스콤 투쟁 끝나고 서너 달 쉬었더니 보통 회사로는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가치관이 바뀌었고 뜨거운 가슴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경험했던 것을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활동가로 살기에는 수입이 적어서 고민하고 있었을 때 <작은책>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이 왔어요. 코스콤을 나오면서 꼭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작은책>에서 그 일을 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이죠. 벌써 10년이 됐네요(웃음)."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모토로 1995년 5월에 창간한 월간지다. 말이 월간지지 손바닥만 한 크기에 200 페이지가 안되는 분량의 글을 내는 책이다. 나는 2000년도부터 <작은책>을 구독했다. 중간에 책이 안 나올 줄 알았다. 필자 찾기도 힘들고 돈도 안 되는 책을 만드는 게 쉽지 않으니까. (적자가 심해) 2002년에 6월호와 7월호가 발행 중단됐을 때 빼고는 쉬지 않고 책이 나왔다. 책이 계속 나오니까 끊지도 못하고 20년간 구독하고 있다.

<작은책>을 구독하면서 발견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책은 작은데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 외에도 전문가들이 쓴 귀한 정보가 담겼으며, 세 번째는 어려운 내용도 쉽게 쓴다는 것이다. 나는 <작은책> (열혈) 팬이다. 내 글도 여러 번 실렸다.

아무리 '작은 책'이라도 원고 청탁부터 편집, 교정, 발송까지 하려면 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다. 어느 책은 안 그렇겠냐마는 <작은책>은 작은 책이라 일손이 적어서 더 그렇다. 안건모 대표, 유이분 편집장, 그리고 정인열. 딱 세 명이 다달이 책을 낸다. 이렇게 적은 인력으로 매달 책을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는 <작은책>을 창간한 지 25년째 되는 해다. 보통 이럴 때는 대표를 인터뷰하지만 나는 <작은책> 일꾼 정인열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작은책>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 소시민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싣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에요. <작은책>은 한 달에 한 번씩 글쓰기 모임을 해요. 글쓰기 모임도 <작은책>이 만들어진 것만큼 오래됐어요. 글쓰기 모임에서 나온 글 중에 좋은 글을 뽑아서 싣는 경우가 많아요.

<작은책>은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누구나 쓸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잡지예요. 유명한 작가의 수려한 글쓰기가 아닌, 남편하고 싸운 얘기, 친구랑 지내면서 상처받은 얘기, 여성들이 독박 육아 하면서 인정 못 받은 얘기를 실어요. TV나 라디오에도 나오지 않는 솔직한 얘기를 <작은책>에서 볼 수 있는 게 매력이에요. 여기에 꽂힌 독자들도 많아요. <작은책>의 핵심은 '살아가는 이야기'에요."


노동자의 편에 선 잡지, 그가 일하는 이유

정인열은 10년째 <작은책>에서 일한 사람답게 메인 코너에 애정을 듬뿍 담아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작은책>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울고 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는 월간지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그래서 <작은책>에서 일하는 정인열을 단순히 책을 만드는 일꾼이 아니라 '활동가'라고 부르고 싶었다.

"원고 청탁할 때 좀 힘들어요. 왜냐하면 <작은책>이 좋게 말하면 오래된 풀뿌리 잡지지만, 편하게 말하면 '듣보잡' 잡지잖아요. 이런 잡지사가 온종일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게 미안하더라고요. 일하고 쉬어야 하는 시간에 글을 써달라고 하는 거니까요. 하기 싫은 숙제를 내주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죠. 그래도 기분 좋게 수락하는 분들이 있어요. 반면에 원고 청탁을 거절당하면 '조금 더 유명한 잡지고 원고료도 많이 주는 곳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 가지는 원고 쓸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어서 중고차 딜러한테 원고를 받고 싶어서 전화를 걸어요. 연결이 잘 안 돼요. 연결 돼도 글 쓸 사람이 없다고 거절해요. 그럴 때는 더 청탁하기가 힘들어요. <작은책> 일꾼으로서 자부심이 있으면서도 원고 청탁 거절당하면 좀 위축돼요(웃음).

마지막으로 힘들 때는 청탁한 원고가 제때 안 들어올까봐 불안해요. 그러면 필자에게 어려움 없냐면서 전화 한번 하고, 쓰고 있다고 하면 안심을 하는 거죠. 청탁 원고 다 받아서 편집하고 읽으면 정말 감동이에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전교조 선생님을 한 명도 못 만났어요. 그런데 <작은책> '교사 이야기'에 보낸 원고를 보고 울었어요.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안 그랬는데 <작은책>에 글 쓰신 선생님들은 훌륭하셔서요. 그런 선생님들과 공부하는 아이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정인열은 <작은책>의 독자관리, 회계업무, 발송 업무를 맡아 한다. 올해 초까지는 한 달에 한 번 '일터 탐방' 기사를 썼다. <작은책>에 와서 결혼하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 출산휴가를 쓰고 육아휴직도 1년씩 했다. 집은 경기도 성남이고 일터는 서울 합정동이다.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지만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연로하셔서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다. 남편의 출퇴근 시간은 정인열보다 이르고 늦기 때문에 육아는 온전히 정인열의 몫이다.

"지금은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고, 작은 아이가 1학년이에요. 아이들이 여섯 살 되기 전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어린이집 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준비해야 하는데 애들이 어른 생각대로 안 움직이잖아요. (내가) 지각할까 봐 애들 닦달도 많이 하고, 혼내고, 그리고 출근했어요(웃음). 또 마감할 때는 새벽에 집에 가니까 애들이 엄마 언제 오냐고 전화하고. <작은책>은 노동자의 편에 선 잡지라서 배려를 많이 해줘요. 원고 다 들어와서 편집한 거 볼 때는 정말 뿌듯하지요. 이 맛에 <작은책>에서 일하나 싶고(웃음)."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동자의 글을 찾아 다니는 사람

  
정인열은 <작은책> '일터 탐방' 꼭지에 2010년부터 올해 1월까지 78개의 글을 썼다. 일터 탐방은 말 그대로 노동자의 현장을 찾아가서 인터뷰한 글이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부당한 대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상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꼭지는 <작은책>이 듣보잡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 충분한 무게감이 있는 코너다.

그중에서도 유성기업 창조컨설팅 이야기인 '내 동생 광호가 왜 그랬을까', '내 몸값의 두 배를 팔아도 빚이 쌓인다'는 예술인 노동자 이야기, '어릴 적 부르던 교가, 기가 막힌다'는 쌍용양회공업의 시멘트 노동자 이야기, '보호자 침대는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라는 영남대의료원 지부의 해고 조합원 박문진, 송영숙씨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10년 동안 78개의 일터 탐방 이야기를 썼더라고요. 지방으로 취재를 가기도 하고, 갔다 오면 며칠 걸려서 녹취록 풀고, 녹취록 풀어서 기사 쓰려면 힘들죠. 물론 쓰고 나면 뿌듯하지만요(웃음).

<작은책>에서 언제까지 일할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쓴 일터 탐방 기사를 묶어서 책으로 내고 싶어요. 요즘 이런 책을 내 줄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다시 일터 탐방을 쓰게 되면 IT 노동자를 취재하고 싶어요. IT 쪽이 예전보다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외주 용역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거든요."


여전히 글쓰기가 힘들지만, 글 쓰는 것의 의미를 잊지 않고 사는 정인열. <작은책>은 그녀의 일터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동자의 글을 찾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나.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본인은 한사코 활동가가 아니라며 거절했음에도 들이댄 이유다. <작은책> 2020년 8월호 '편집 뒷이야기'에 정인열이 쓴 글을 보라. 활동가의 자질이 차고 넘친다.
    
'투박한 글이라도 좋습니다.' 제가 '일터에서 온 소식' 원고를 청탁하면서 덧붙이는 말이에요. 노동자들 대부분은 글쓰기를 무척 어렵게 생각하거든요. 글 쓸 시간도 부족하지만, 중노동에 시달리기도 하고, 노조 활동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 투쟁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생생한 일터 이야기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서만 나옵니다. 이렇게 또 한 달 마감을 하네요. 독자님들, 투고 환영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정인열을 띄우고 싶어 인터뷰했다. 쓰다 보니 <작은책>을 홍보하는 쪽으로 흘렀다. 혹시 안건모 대표로부터 <작은책> 영업사원으로 스카우트 하겠다는 콜이 오면 어떡하지?
 
 2014년 여의도 노동자대회에 참가해 작은책을 홍보하고 있다.(왼쪽부터 정인열, 유이분 편집장, 김이진 (전)편집부원)
 2014년 여의도 노동자대회에 참가해 작은책을 홍보하고 있다.(왼쪽부터 정인열, 유이분 편집장, 김이진 (전)편집부원)
ⓒ 정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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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홈페이지(actvisitweek.net)에도 실립니다. 서울 청각장애인 문자통역지원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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