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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모든 대학은 교수, 직원, 학생으로 구성되는 대학평의원회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 사립대학은 15년 전인 2005년 12월 노무현 정부 당시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대학평의원회가 도입됐고, 국공립대학은 2017년 11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대학평의원회 의무 설치가 제도화됐다.

'대학평의원회' 도입 배경?

대학평의원회는 대학 발전 계획, 학칙의 제정 및 개정 등 대학 중요 사항을 교수와 직원, 조교, 학생 등이 참여해 심의하는 기관이다.

대학평의원회 도입 전까지 대학에서 주요 사항의 심의는 교수들로 구성된 교무회의나 교수회에서 맡아왔다. 교무회의 구성이 대학 경영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구성도 교수 중심이어서 사학 법인이나 학교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을 막을 수도 없었고, 직원과 학생 등의 의견이 학교 행정에 반영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2005년 12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대학평의원회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사립학교법상 대학평의원회의 설치 근거는 임의조항이었다.
 
"사립학교법 제26조의2 (대학평의원회) ① 대학 교육기관에 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게 하기 위하여 대학평의원회를 둘 수 있다. ② 대학평의원회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정관으로 정한다."
 
2005년 당시 초·중·고등학교에는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학교운영위원회가 의무적으로 구성돼야 했다. 대학의 경우 사립학교법 26조2 조항에 대학평의회가 심의기구로 되어 있지만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필수 기구가 아니라 "둘 수 있다"라고 규정해 선택 규정, 즉 임의기구였다.

따라서 당시 대부분의 사립대학은 대학평의원회를 구성하지 않았고, 실제로 이 위원회를 설치한 대학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20년 전인 2000년 초 상황을 돌아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많은 사립학교가 친․인척 중심의 폐쇄적인 학교 경영을 일삼았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148개 대학 중 61개 대학, 전문대학 104개 중 73개 대학에 부부·자녀·형제·손자 등 직계가족 형태의 친족 이사가 존재했다. 전체 사학의 17.4%가 이사장의 친․인척을 학교장에 임명하는 등 족벌경영의 폐단이 대학사회에서는 커다란 골칫거리였고, 친족 간에 학교 운영권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사립학교 법인 임원 간 분쟁, 이사회 부실 운영, 회계 부정 등으로 2005년 12월 당시 임원 승인이 취소돼 임시 이사가 파견된 곳만 21개 대학에 달했다. 당시 사립학교법에는 비록 임원 취임 승인이 취소되거나, 해임된 사람도 2년이 경과하면 사학의 법인 임원으로 다시 선임이 가능해 대학 비리와 분쟁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당시 연도별 교육부 감사 결과 조치현황을 살펴보면, 2003년 8개 대학의 교육부 감사 결과 징계 등 신분상 조치 1008건, 고발 등 행정상 조치 130건, 재정 조치(회계 부정 등)는 280억 원이 넘었다.

2004년에도 9개 대학을 감사한 결과 징계 등 신분상 조치 588건, 고발 등 행정상 조치 80건, 재정 조치(회계 부정 등) 810억 원이 넘었고, 2005년에는 7개 대학을 감사한 결과 징계 등 신분상 조치 524건, 고발 등 행정상 조치 61건, 재정 조치(회계 부정 등)는 140억 원에 달했다.

감사 인력의 한계로 교육부는 한 해에 10개 미만 대학의 감사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7∼9개 대학 감사 결과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개교 후 교육부 종합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대학이 당시만 해도 350개 대학 중 51%가 넘는 179개 대학이나 되었으니, 감사의 사각지대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은 사학의 부패와 비리, 주먹구구식 학교 운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이었다.
 
대학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을 막고 민주적인 학교 운영 시스템 구축과 예․결산 과정에서 투명성 확보 방안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비리 견제와 예방 장치 마련 등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대학에 교수·학생·직원 등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 의무설치가 필요했다.

대학평의원회의 의무설치로 교수뿐 아니라 직원과 학생까지 포함한 대학 구성원들이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통해 대학이 자치 역량을 강화시켜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교육·노동 단체는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요구해왔다.
 
1990년 사학 재단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사립학교법이 개악된 후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됐다. 하지만 1999년 15대 국회 하반기에 또다시 사립학교법이 개악되자 학부모단체, 교원단체, 교육·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 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아래 '사학개혁국본')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을 시작했다.
 
사학개혁국본은 2000년 5월 30일 16대 국회 개원부터 사립학교의 부정과 부패를 끊어 내고 대학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국회를 주도하던 16대 국회에서는 사립학교법 개혁안이 국회에 제출하는 데 의의를 두곤 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04년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 의석(152석)을 차지하면서부터다. 17대 국회가 개원되고 대학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을 방지하고, 대학 비리를 사전에 견제하고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교육·시민·노동단체들이 오래전부터 요구해 온 대학평의원회 의무설치 등이 들어간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정해 2004년 10월 지병문 의원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 발의 이후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로 법 개정을 둘러싸고 1년여간 여야가 극한 대립이 벌어졌다. 임시국회 개원 때마다 사립학교 개혁 문제로 소모적인 공방이 벌어지고 법안 상정이 이뤄지지 않자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 출신 김원기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국립대와 사립대가 모두 적용되는 고등교육법 개정 대신, 사립대만 적용되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방향을 틀어 법안을 상정해 본회의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주도로 통과되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통과 무효를 선언하고 국회를 보이콧하고 장외 투쟁을 벌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정상화를 이유로 당시 여당에 사립학교법 재협상을 지시해 결국 2007년 7월 사립학교법은 다시 개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평의원회 관련 조항' 중 대학 헌장 제정 및 개정과 대학교육 과정 운영에 관한 사항이 심의 사항에서 자문 사항으로 개악되는 등 사립학교법 개혁 조항은 누더기가 됐다.
 
대학평의원회 기능 심의 및 의결 기구로 강화해야
 
대학평의원회 의무 설치가 처음 법으로 도입된 지 15년이 넘었으나 현재의 대학평의원회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현장에서 대학평의원회는 대학 구성원의 대학 자치 참여는커녕 형식상 거쳐 가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에 있는 대학평의원회는 심의 기구이다. 애초 법 설계 당시 '심의 및 의결기구'로 제안됐으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심의 기구로 대학평의원회 기능이 축소되어 운영의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대 국회에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유명무실해진 대학평의원회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심의 기구인 대학평의원회를 '심의 및 의결 기구'로 바꿔, 대학 현장에서 평의원회가 실제적이고 의미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으나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법안은 폐기됐다.

대학평의원회 구성도 교수와 직원, 학생이 균등 참여할 수 있도록, 즉 대학평의원회가 민주적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립학교는 전체 평의원 중 구성원별 평의원 비율이 교원 38.3%, 동문 및 기타 24.7%, 직원 22.2%였고, 학생 평의원은 14.3%에 불과했다. 국공립대학은 교원 47.7%, 직원 22.3%였고, 학생 평의원 구성비는 17.3%에 불과했다.

사실상 대학 평의원회가 교수와 직원들로 운영되고 있고 학생들은 들러리를 설 뿐 제대로 된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고 있다.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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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2019년 9월에 대학평의원회 기능을 강화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밝힌 법안 제안 이유는 여전해 곱씹을 만하다.
 
"대학의 민주적인 운영은 대학의 학문 발전과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한 기본 토대임. 대학의 민주적 운영은 대학 구성원의 참여 속에서 협의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대학평의회가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제도의 도입 취지를 반영하기에는 법률적 기반이 약함. 실태조사 결과 대학평의회가 대학 민주주의의 기본 단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평의원회의 구성인원 수가 너무 적으며, 특히 학생들의 참여에 대한 보장이 매우 약한 상태이다.

또 대학평의원회의 기능이 제한되어 있어서 유명무실한 운영 가능성이 높으며, 대학평의원회 회의록 공개 의무기간이 너무 짧아 대학 구성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대학평의원회가 실질적인 대학 내의 참여 민주주의 기본 체계로 작동하기 위해서 구성인원 수를 늘리며, 특히 학생들의 참여 비율을 보장하고, 일부 자문 사항을 심의사항으로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영국 의원 고등교육법 개정안 제안이유)

 
얼마 전 연세대와 홍익대 교육부 감사 결과로 사립대 운영이 20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딸에게 자신의 강의를 듣게 해 A+ 학점을 주고, 동료 교수 자녀를 대학원에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를 조작하고, 학교 법인 회계로 내야 할 세금을 학생 등록금인 교비회계에서 빼 쓰는 등 대학의 부패와 비리가 만연해 있음이 증명됐다.

우리나라의 사립학교는 비리와 부패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이사회 운영의 폐쇄성, 사립학교를 사적 재산처럼 여기는 이사장과 친인척에 의한 족벌 운영, 사학 경영자들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횡령 등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비리와 부패로 많은 사립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공립대학도 교육부 방침을 일방적으로 따르기만 하고 대학을 비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학교 경영진에 대한 불신과 교수 중심의 폐쇄적인 대학 운영이 한계에 이르러 직원, 조교, 학생이 참여하는 대학 구성원 자치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대학에서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는 첫걸음은 대학 자치의 강화이다. 지금과 같은 사학 법인과 대학 경영진, 교수 중심의 대학 운영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 직원, 조교, 학생이 균등하게 학교 운영에 참여해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학을 운영할 때 대학의 부정, 부패는 사라질 것이다. 교수와 직원, 조교, 학생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의 심의 의결 기구로 기능 강화와 평의원회 구성의 민주성 강화가 시급한 이유이다.
 
[기획 |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① 기형적인 국공립대와 사립대 비율 http://omn.kr/1nzkj
② 고등교육 공교육비 84% 민간 재원, 정부 재원은 16%에 불과 http://omn.kr/1o2ia
③ 국립대 운영, 국가 아닌 '학부모 주머니'에서 시작된다 http://omn.kr/1o7pn
④ 왜 대학에 추가로 지원하냐고요? 이 법이 말합니다 http://omn.kr/1oa36
⑤ 국립대 역할과 사회적 책임, 법률로 뒷받침해야 한다 http://omn.kr/1ocpj
⑥ 대학이 많아 학생이 없다? 사실이 아닙니다 http://omn.kr/1ofes
⑦ 비민주적 국립대 총장 선거... 1인1표제가 진정한 직선제 http://omn.kr/1ohox

태그:#고등교육공공성, #대학평의원회,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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