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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여행으로 경주 분황사를 다녀왔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인 634년도에 만들어졌다. 분황사는 한자로는 향기가 나는 황제의 사찰이라는 뜻이다. 이름 자체에서 선덕여왕을 떠오르게 한다.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모전석탑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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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는 오랜 시일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현재는 보광전과 모전석탑(국보 제30호)만이 존재한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분황사 모전석탑은 원래는 9층탑이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모전석탑은 석재를 벽돌처럼 가공해 그 돌을 쌓아 만든 석탑을 의미한다. 모전석탑에서는 사리 장엄구에서는 유리 돋보기, 바늘, 바늘통, 쇠 가위와 같은 여성용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모전석탑 주변에는 6개의 석사자상 자리 잡고 있다. 모전석탑의 암실 앞에는 금강역사가 우람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분황사 우물
 분황사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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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에는 입구가 팔각형으로 만들어진 우물이 있다. 불교의 8정도를 의미하는 듯하다.
 
 분황사 원효비 받침석
 분황사 원효비 받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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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는 분황사에서 화엄경소와 같은 저술을 남겼다. 분황사에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으나, 지금은 비석의 받침대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추사 김정희가 경주를 방문했다가, 이 비석의 받침대가 원효를 기리는 비석의 받침대였다는 사실을 비석 받침대에 새겼다.
 
 분황사 보광전
 분황사 보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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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의 보광전은 다른 사찰처럼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지어졌다. 보광전에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지고 있다. 약사여래불이 동방을 의미하여, 보광전을 동향으로 지었다. 불교에서는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아픔을 치료하는 부처로 여겨진다.

분황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신라시대 한 여인의 딸이 눈이 멀자, 그 어머니가 이곳 분황사에서 정성을 들여, 기도를 하였더니, 딸의 눈이 치료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당시에 분황사에서는 단순한 주술적인 의미를 넘어, 실제로 의료행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에는 사찰이 의료기관의 역할을 담당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분황사 당간지주
 분황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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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정문 앞에는 당간지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석등이 있다. 사찰에서 행사를 치를 때 당이라는 깃발을 걸었는데, 이 깃발을 담는 것을 당간이라고 했으며, 이 당간을 지지하는 받침대를 당간지주라고 불렀다. 이제는 분황사에서 더 이상 큰 깃발과 원효대사의 비를 볼 수 없지만, 깃발과 비를 받치던 흔적만은 여전히 분황사를 기리고 있다.

태그:#분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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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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