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 스틸 컷

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 스틸 컷 ⓒ 넷플릭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브라이언 아이쉬 병장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두 아들 아이삭과 조이와 함께 살아간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오가며 이뤄지는 짧은 만남 속에서도 행복한 일상을 누리던 아이쉬 가족은 어느 날 브라이언이 교전 중 다리에 총상을 입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다. 군에서 제대한 후 국가와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는 브라이언이 힘겹게 재활하는 사이, 아이삭과 조이는 달라진 아버지를 겪으면서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2001년 10월 7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을 비롯한 주요 군사거점과 대도시들에 총공습을 가하며 전쟁을 개시했다. 9.11 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것이 개전의 명분이었다. 전쟁 시작 약 한 달 뒤인 11월 13일에 미군은 수도 카불을 점령했고, 12월 14일에는 승리 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안정화시키지 못했고, 전쟁은 2020년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17일에 공개된 넷플릭스와 <뉴욕타임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은 이처럼 끝을 모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브라이언 아이쉬와 그의 가족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국익을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에 3만의 병력을 더 파병하기로 했습니다. (...) 이 결정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군대는 여러분의 가족과 함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 스틸 컷

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 스틸 컷 ⓒ 넷플릭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카메라는 한 군인의 가족이 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감을 오롯이 담아낸다.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브라이언이 두 아들 아이삭과 조이를 만나는 순간, 그가 교전 중 다리에 총상을 입고 수술하는 과정, 난항을 겪는 그의 재활과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가족들 간의 상처, 갈등, 화해와 새로운 시작까지. 이처럼 브라이언의 가족들이 겪은 수년간의 일상을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함께 따라가면서 영화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특히 영화가 묘사하는 아픔은 정도가 다를지언정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이입을 충분히 이끌어 내기도 한다. <아버지 군인 아들>은 기본적으로 군대에서 상처 입고 제대 후 자신의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지닌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함께 아프고 함께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군인의 경험을 마주하는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총상은 입지 않아도 군대에서 상처 입고, 파괴되고, 괴로워하지만 그 안에서 끈끈함과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 또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 다른 이들이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뒤, 영화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이쉬 가족의 희로애락을 영상에 담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들이 겪은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 감동과 좌절을 만들어 낸 진짜 원인, 즉 국가가 벌인 전쟁이라는 구조적인 이유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전쟁과 후유증으로 인해 망가진 아버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자원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고 싶어 하는 아이삭의 서사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되는 결말은 개인적 혹은 가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해피엔딩이다. 브라이언의 가족이 부자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긴 시간 동안 경험한 자신들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삭의 입대를 기점으로 브라이언은 "이제 다 끝났어요. 지나간 일이죠. 전진하는 수밖에요. 슬퍼하기보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하고요"라고 말하면서 부상 이후로 떨치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난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기 시작한다. 

아이삭도 마찬가지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게임 중독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아버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상처마저 자랑스러워한다. 더 나아가 그는 "가끔 제가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발자취를 못 따라가거든요"라면서 아버지처럼 전쟁에 나가기를 희망한다. 그렇기에 작중 아이삭의 입대는 전쟁에서 막중한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개인과 가족에게 마침내 주어진 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 스틸 컷

영화 <아버지 군인 아들> 스틸 컷 ⓒ 넷플릭스


반면에 사회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영화의 마무리는 새드 엔딩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다시 행복해진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 그 행복이 사상누각일 수도 있다는 역설을 지적한다. 브라이언은 "1년 전쯤에 제가 예전에 순찰하던 마을의 광장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악당들이 그 구역을 점거했더군요. 그래서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체 뭐가 목적이었던 거죠?"라고 되묻는다. 아이삭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 이유와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저 애국심으로 참전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러한 아이쉬 부자의 인터뷰는 가족이 국가와 국익을 위한 책임을 나눠지는 사이, 아버지는 최선을 다한 삶을 부정당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허울을 쫓아 본인의 삶을 희생해야만 하는 악순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이라는 다람쥐가 국가의 이익이라는 쳇바퀴를 돌려야만 하는 이유를 아버지와 아들 간의 애정과 공감이라는 감정적 요소로 포장하는 현실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처럼 명분이 희미해진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대를 이어 희생을 요구받는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전쟁과 이익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전쟁 단면을 지적하면서, <아버지 군인 아들>은 달콤 씁쓸하게 마무리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아버지 군인 아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프가니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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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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