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에는 2006년 1월 하와이에서의 반칙패를 끝으로 7년 6개월 동안 17연승을 달리던 무적의 챔피언이 있었다. UFC 미들급 타이틀을 무려 2457일 동안 사수했던 '스파이더' 앤더슨 실바였다. 미들급 10차 방어까지 성공하며 체급을 완전히 평정한 실바는 라이트 헤비급 슈퍼 파이트에서도 바의포레스트 그리핀과 스테판 보너 같은 만만치 않은 강자들을 여유 있게 꺾은 바 있다(심지어 그리핀은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출신이다).

하지만 '격투의 신'이라 불리던 실바도 2013년 7월 11차 방어전에서 무패의 도전자였던 '올아메리칸' 크리스 와이드먼에게 패하며 연승 신화를 마감했다. 당시 실바는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며 노가드로 와이드먼을 도발했지만 와이드먼은 침착하게 실바의 턱에 강력한 펀치를 적중시키며 6년이 넘는 실 긴 독재 시대를 끝냈다. 실바의 독주가 워낙 길었기에 격투 팬들도 대체로 새 챔피언 와이드먼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와이드먼의 시대가 열린 지 7년이 훌쩍 지난 지금, 와이드먼은 챔피언은커녕 미들급 랭킹 15위 안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없다. 계속된 부진와 작년 라이트 헤비급 외도로 미들급 랭킹에서 제외된 것. 라이트 헤비급 데뷔전에서 1라운드 KO패를 당하며 한계를 느낀 와이드먼은 미들급으로 돌아와 오는 9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의 UFC APLEX에서 열리는 UFN 174 대회 메인이벤트에서 오마리 아크메도프를 상대로 재기전을 치른다.
 
 미들급 공식랭킹에서 제외된 와이드먼(오른쪽)은 이번 경기에서도 블루코너에 서게 된다.

미들급 공식랭킹에서 제외된 와이드먼(오른쪽)은 이번 경기에서도 블루코너에 서게 된다. ⓒ UFC

 
실바의 독주를 끝낸 올아메리칸, '복병' 락홀드에게 덜미

와이드먼은 대학시절 북미 대학 레슬링 올스타에게 주어지는 올 아메리칸에 2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레슬링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올 아메리칸'이 그대로 와이드먼의 닉네임이 됐을 정도. 와이드먼은 2009년 그라운드 기술로만 승부하는 그래플링 대회인 아부다비 컴뱃 레슬링(ADCC)에서 북미지역 금메달을 차지하며 아마추어 레슬러로 최고 수준의 기량을 과시했다.

2009년 2월 프로파이터로 데뷔한 와이드먼은 3경기 만에 링 오브 컴뱃이라는 단체에서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했다(당시 타이틀전에서 와이드먼에게 1라운드 KO로 패한 선수가 바로 현 UFC 미들급 9위 유라이어 홀이었다). 이미 아마추어 레슬러 시절부터 그 재능을 안정 받던 와이드먼은 4경기 만에 UFC로부터 오퍼를 받으며 2011년 3월 알레시오 사카라를 상대로 옥타곤 데뷔전을 치렀다.

수준 높은 UFC에서도 와이드먼은 거칠 것이 없었다. 옥타곤 데뷔 후 1년 만에 사카라,제시 봉펠트, 톰 라울러, 데미안 마이아를 차례로 꺾으며 파죽의 4연승을 달린 와이드먼은 2012년 7월 마크 무뇨즈를 2라운드 KO로 제압하며 타이틀 도전권을 따냈다. 미국 국적의 백인 레슬러라는 이유로 와이드먼에게 지나치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는 격투팬들의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10차 방어까지 성공한 실바에겐 와이드먼을 능가할 마땅한 도전자도 없었다.

그리고 와이드먼은 2013년 7월 실바를 KO로 꺾고 새 챔피언에 등극했고 연말에 열린 재대결에서도 실바의 부상에 의한 TKO승을 거두면서 실바와의 대립을 정리했다. 와이드먼은 료토 마치다를 판정, 비토 벨포트를 KO로 꺾으며 3차 방어전까지 성공하고 미들급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올랐다. 와이드먼은 무뇨즈전부터 3차 방어전까지 5경기에서 4번이나 보너스를 받으며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진정한 올 아메리칸으로 격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와이드먼이 실바 못지 않게 독주를 할 거라는 일부 격투팬들의 예상은 2015년 연말 루크 락홀드를 만나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3라운드까지 레슬링을 앞세워 근소한 우위를 보이던 와이드먼은 4라운드 어설픈 뒤돌려 차기를 시도하다가 락홀드에게 반격을 허용하며 4라운드 KO로 무너졌다. 와이드먼은 타이틀전 패배 후 목 디스크 수술을 받으며 락홀드와의 설욕전이 무산됐고 이후 믿기 힘든 부진이 시작됐다.

라이트 헤비급 변신 실패 후 미들급 복귀, 후유증 없을까

수술 후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 와이드먼은 2016년 11월 복귀전에서 요엘 로메로에게 3라운드 KO로 무너졌고 2017년 4월에는 현재 벨라토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게가드 무사시에게 2라운드 KO로 패했다. 무패의 챔피언에서 순식간에 3연패의 수렁에 빠진 와이드먼은 2017년 7월 웰터급에서 올라온 켈빈 가스텔럼을 3라운드 서브미션으로 꺾고 연패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까지 와이드먼이 옥타곤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가 되고 말았다.

가스텔럼을 제압하고 한숨을 돌린 와이드먼은 락홀드와의 재대결을 준비했지만 락홀드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상대가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로 바뀌었다. 하지만 와이드먼은 미들급 최강의 그라운드 기술을 가진 소우자에게 그라운드가 아닌 타격에서 밀리며 3라운드 KO로 패하고 말았다. 소우자에게 패하며 미들급 감량에 어려움을 느낀 와이드먼은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상향을 결심했다.

UFC는 미들급 챔피언 출신 와이드먼에게 11승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던 라이트 헤비급 랭킹 4위 도미닉 레예스를 첫 상대로 붙여줬다. 그리고 와이드먼은 경기시작 103초 만에 레예스의 펀치세례를 맞고 무기력하게 패했다. 미들급을 지배하던 시절 우람하던 와이드먼의 체격은 거구들이 즐비한 라이트 헤비급에서는 크게 경쟁력이 없었다. 결국 와이드먼은 한 경기 만에 라이트 헤비급 도전을 포기하고 미들급으로 돌아왔다.

미들급으로 돌아온 와이드먼의 복귀전 상대는 라이트 헤비급부터 웰터급까지 체급을 옮겨 다닌 경험이 있는 러시아 국적의 아크메도프로 결정됐다. 아크메도프는 피니시율 60%(7KO, 5서브미션)에 랭킹 11위로 엄청난 강자는 아니지만 최근 6경기에서 5승1무를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아크메도프와 달리 최근 6경기에서 1승 5패, 그것도 5패가 모두 KO패였던 와이드먼으로서는 결코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와이드먼은 전성기 때 105kg에 달하던 평소 체중을 20kg 이상 감량하고 경기에서는 동체급 최고의 힘과 피지컬로 승부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과도한 감량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평체를 10kg 이상 줄였고 이는 곧 근력과 맷집 저하로 이어졌다. 만약 와이드먼이 아크메도프라는 고지를 넘지 못하고 또 한 번 무너진다면 UFC에서 계속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와이드먼이 이번 아크메도프전 승리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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