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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대형 광고판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찢어진 상태로 발견돼 임시 철거됐다. 광고판에는 캠페인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은 훼손된 신촌역 '성 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 2020.8.2
 2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대형 광고판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찢어진 상태로 발견돼 임시 철거됐다. 광고판에는 캠페인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은 훼손된 신촌역 "성 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 2020.8.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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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서울지하철 신촌역에 게시되었던 국제 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캠페인 광고는, 8월 2일 갈기갈기 찢긴 채 발견됐다. 광고가 담고 있던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은 누군가, 인적이 드문 새벽을 틈타 광고판을 찢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념 인증 사진을 찍으며 뿌듯함을 느끼려 했던 성소수자들과 앨라이(자신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님에도 운동에 연대하는 사람. 이 글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연대하는 시스젠더-헤테로섹슈얼을 지칭한다)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광고 훼손 소식에 크게 낙담했다.

광고는 그러지 않아도 한참을 늦게 걸린 거였다. 원래는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BIT, 이하 아이다호 데이)에 2호선 홍대입구 전철역에 광고를 거는 게 목표였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성소수자 광고'는 '의견광고'라서 통상 심의 기간보다 더 긴 한 달 정도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통보했다. 그 뒤 서울교통공사는 명확한 사유를 설명해주지 않은 채 광고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광고 게시를 거부했고, 심의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거절했다. 공동행동 측이 재심의를 신청하자 공사는 "설령 광고가 게시되더라도 민원 발생 시 철거될 수 있으며 이 경우 환불이 불가하다"는 말로 화답했다. 이에 공동행동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한 달 보름 지각한 7월 31일에야 신촌역에 광고가 게시됐다.

뭐가 얼마나 도발적이었기에 서울교통공사는 한사코 광고 게시를 피하려 든 걸까? 얼마나 위험한 메시지였으면 누군가 새벽을 틈타 게시된 지 이틀 만에 광고를 찢어버린 걸까? 그 도발적이고 위험한 광고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굵은 고딕 계열의 폰트로 새겨진 그 문구는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이 보낸 517장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다호 데이를 기념해 세상에 제 얼굴을 게시한 이들은, 그저 단순히 "여기 우리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다. 일부 혐오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헤테로섹슈얼들을 죄다 게이로 만들어버릴 테다" 같은 사악한 음모도 아니고, "모두 총궐기해서 사회를 전복시키자"는 선동의 메시지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여기에 우리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성소수자는 엄연히 실존한다고, 당신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무지개행동 측이 게시하려고 했던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광고
 무지개행동 측이 게시하려고 했던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광고
ⓒ 무지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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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어디에도 존재한다

세계 각국의 통계와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성소수자의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3~7%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UCLA 법대의 연구에선 3.8%가, 2012년 미국 갤럽의 조사에서는 조사대상의 3.4%가 자신이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고 대답했다. 2015년 일본 덴츠 다양성 연구소가 일본인 7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응답자 중 자신이 LGBT라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3.8%다.

여기에 자신이 에이섹슈얼(무성애자). 인터섹스(생식기나 성호르몬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 퀘스쳐너리(성적 지향, 로맨틱 지향, 성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은 채 탐구하는 중인 사람), 논바이너리(자신을 성별 이분법으로 정의하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답한 이들의 비율 또한 3.8%로, 도합 7.6%가 자신이 성소수자라 답했다. UCLA 법대와 미국 갤럽의 조사가 LGBT만을 조사한 수치인 걸 감안하면, 미국 또한 에이섹슈얼, 인터섹스, 퀘스쳐너리, 논바이너리를 합쳤을 때 일본과 비슷한 수치가 나올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성소수자 정체성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날 때부터 타고난 특성이라는 걸 감안하면, 한국의 성소수자 인구 또한 3%~7%의 비율로 존재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국한한다면 그 비율은 더 크게 증가한다. 지방 도시나 농어촌에서 나고 자란 성소수자들 중 상당수가 서울이나 부산 등의 대도시로 이주한다. 대도시는 고향에 비해 자신과 비슷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나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을 확률이 높다.

대도시는 고향에 비해 자신을 아는 사람과 마주칠 확률이 적어 상대적으로 높은 익명성이 보장된다. 대도시는 고향에 비해 성소수자들의 네트워킹이 활발해 조력이나 지원을 얻기가 용이하다. 홍대, 신촌, 이태원, 종로 등지로 국한하면 지나가는 사람 열에 하나가 성소수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는 과장도, 거짓도, 주장도 아니다.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아닌데, 내 주변엔 성소수자 없는데"라고 갸우뚱하실 분이 계실 줄 안다. 그러나 상당수의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정체성을 밝혀도 상대가 자신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 없이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다. 세상엔 앨라이도 있지만, 신촌역에 걸린 광고를 찢어버린 사람처럼 자신의 혐오를 폭력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공개적으로 제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하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혐오와 차별의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염려해 제 정체성을 감추고 사는 이들의 수도 많다.

여러분이 흥미롭게 읽은 기사를 쓴 신문기자, 여러분이 거리를 걷다가 듣고 무심코 따라 흥얼거린 노래를 부른 가수, 오늘 점심 때 여러분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준 카페 바리스타, 옆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아랫집 사는 인사성 바른 청년, 동네 편의점 직원, 명절 때 어쩌다 한번 보는 친척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 그저, 아직 당신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는데 혐오의 목소리만 홀로 높고
 
이처럼 건조하고 당연한 사실을 굳이 광고판까지 사서 말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자꾸만 성소수자들을 세상에서 지우려 들기 때문이다. 일부 종교단체는 교단의 비리와 모순으로 인해 신자 수가 감소할 때면, 사랑과 자성, 개혁으로 거듭나는 쪽을 택하는 대신 외부에 적을 상정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외부의 적 앞에서 내부의 모순은 쉽게 잊히니까, 혐오하고 증오할 대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신자들을 규합하고 혁신을 유예하려는 속셈이다.

그 대상이 시대에 따라 '이교도'와 '마녀'를 거쳐 '빨갱이'를 지나 '문란한 성소수자'에 도달했을 뿐이다. 이들이 조장한 혐오의 토양에, 소수자에 대한 탄압을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확인하고 그를 통해 제 불행을 잊어보려는 일부 다수자들이 결합하며 혐오의 목소리는 증폭된다. 성소수자들의 삶이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이라고, 정상이 아니라고, 그들은 사회를 붕괴시키는 잠재적 위험이며 윤리를 파괴하는 존재이니, 그들은 치료와 격리, 처벌 등을 통해 '정상'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혐오세력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만 간다.

나를 증오하는 이의 목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게 들리는데, 나만 혼자 외따로 떨어져 고립되었다 생각하면 누구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517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밝혀가며 여기 성소수자가 있노라 외친 건, 그렇게 고립된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연대와 용기의 메시지를 건네기 위함이다. "내 주변엔 성소수자 없는 것 같던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당신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지지와 연대를 요청하기 위함이다.

무심하게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고 혐오의 레토릭을 구사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나 동료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으니, 혐오를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라고 설득하기 위함이다. 광고판까지 사 가면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건조한 사실을 말한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자. 혐오세력의 목소리가 왜 높아만 가는 걸까? 난 감히 혐오세력이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했으며,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고 답한 비율 또한 73.6%에 달한다. 당연한 일이다.

지난 20여 년간 일군의 성소수자들이 해마다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을 행진해 왔는데, 그런다고 해서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붕괴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두 확인하지 않았나. 자신들이 열심히 혐오를 조장해도 국민 전체의 인식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니까, 다급해진 혐오세력은 보다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 뜻을 펼친다. 신촌역사에 걸린 광고판을 찢은 행위는, 더 공격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혐오를 조장해서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 시켜 보려는 발버둥의 일환이다.

당연한 사실은 가릴 이유가 없다
 
공동행동 측은 광고의 훼손을 명백한 증오 범죄라 규정하며 경찰 신고 등을 통해 끝까지 범인을 찾아내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 밝혔다. 일단은 찢어진 광고를 철거하고, 그 자리를 백지로 대체한 뒤 광고대행사와 재개시를 논의할 것인 입장이었다. 이야기가 진짜 흥미로워지는 건 이 지점부터다.

아이다호 데이 기념 광고가 있던 자리에 임시로 설치된 백지 위에, 공동행동 측은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헀다. 포스트잇들을 이어 붙여 '성소수자'라고 큰 글씨를 만드는가 하면, 원래 캠페인 문구였던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를 적어넣기도 했다. 포스트잇의 행렬을 보고 감동을 받은 이들 또한 "나도 서울 살고 있다"처럼 구체적인 존재 주장을 적어 넣기도 했다. 광고는 훼손되었으나, 메시지는 살아남았다. 아무리 칼로 찢어가며 메시지를 지우려 해도, 지금 여기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가릴 방법은 없다. 그때마다 크고 작은 포스트잇들이 등장해 꺾이지 않는 진실을 증언할 테니까.
 
 2020년 8월 2일, 광고가 임시 철거된 자리에 메시지를 포스트잇으로 다시 새겨넣고 기념사진을 찍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2020년 8월 2일, 광고가 임시 철거된 자리에 메시지를 포스트잇으로 다시 새겨넣고 기념사진을 찍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무지개행동 트위터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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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사실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싸움이다. 이건 설령 지고 싶다고 한들 질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천주교인인 내 말을 믿으시는 게 좋다. 내가 몸담은 교단은 400여 년 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막아보려고 발버둥 친 바 있는데, 그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당연한 사실과 그를 부정하려는 신념이 맞부딪히면, 100%의 확률로 신념이 크게 지고 크게 망신당한다. 그러니 이제 그냥 그만 싸우시고, 속 편하게 인정을 하면 어떨까. 지금, 여기, 당신의 곁에, 성소수자가 일상을 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승한 시민기자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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