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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도 반한 '화적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 '화적연' 커다란 바위가 솟아 오른 모습이 연못에 볏가리가 쌓여 있는 듯 하다하여 화적연이라 불렀다.
▲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 "화적연" 커다란 바위가 솟아 오른 모습이 연못에 볏가리가 쌓여 있는 듯 하다하여 화적연이라 불렀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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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이 휘돌아 나가는 지점에 고개를 치켜든 거북 형상의 거대한 화강암이 물 위로 불쑥 솟아 있다. 주위에는 마치 새끼 거북들처럼 작은 바위들이 올망졸망 떠 있다. 그 옆으로 깎아지른 거대한 현무암 주상절리가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화적연, 용암이 만든 천하절경

화적연은 지난 7월 7일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 유역에 분포하는 지질 명소 26개 중의 한 곳이다. 

'볏짚단이 쌓여 있는 연못'이란 뜻의 화적연은 순우리말로는 '볏가리소'이다. 강이 약간 돌출한 육지 부분을 넓게 돌아나가면서 생긴 연못과 그 중심에 솟은 거대한 바위는 영락없이 벼 짚단을 쌓아 놓은 듯하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화적연' 거대한 바위를 보고 서계 박세당은 커다란 거북같다고 하였다.
▲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화적연" 거대한 바위를 보고 서계 박세당은 커다란 거북같다고 하였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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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조선시대 문신 서계 박세당은 <서계집> 제3권에서 바위의 생김새가 기괴하여 위는 용머리처럼 두 개의 뿔이 있고, 아래 부분은 거북의 모습같다 하여 '귀룡연'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화적연은 용암분출과 그로 인해 생성된 다양한 지질학적 특성을 관찰할 수 있는 최고의 지질공원이다. 물 위로 솟은 거대한 화강암은 용이나 거북이가 머리를 쳐들고 길게 누워 있는 형상과 비슷해 신기할 따름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침식과 풍화를 거치면서 생긴 다양한 무늬와 틈이 만들어내는 바위들의 변주는 보면 볼수록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불쑥 솟은 현무암 절리를 감상하는 맛도 남다르다. 강물에 의해 바위가 깎여나가고 작은 동굴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해변까지 침식해 가는 모습은 자연의 신비 그 자체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화적연' 화적연의 현무암 주상절리
▲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 "화적연" 화적연의 현무암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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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망초가 흩날리고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화적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많은 묵객과 시인들이 시를 남기고 그림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도 남는다. 

조선시대 신성한 국행기우제 터
  
화적연에서 기우제 한탄강 지질공원 화적연은 조선시대 국행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했다.
▲ 화적연에서 기우제 한탄강 지질공원 화적연은 조선시대 국행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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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옛부터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에는 기우제를 드려왔다. 민간에서 지내는 기우제뿐만 아니라 국가가 주도가 된 국행기우제가 함께 시행됐는데, 화적연은 조선시대 국행기우제를 드리던 신성한 장소였다. 특히 조선 후기 숙종실록에는 화적연에서 국행기우제를 드렸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어 이 장소의 신비함과 신령스러움을 한층 더한다. 

<숙종실록> '23년 5월 16일'에는 '당시 오래도록 가물어 여러 신하들을 나누어 보내서 송경의 박연, 영평의 화적연, 양근의 도미진, 과천의 관악산에서 빌게 하였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숙종실록> '30년 6월 26'일에는 '마지막 차인 12차에 오방토룡제를 지내고, 양진·덕진·오관산·감악·송악·관악·박연·화적연·도미진·진암에서 분시하던 것을 모두 본도에서 설행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화젹연 화적연의 은빛 모래
▲ 화젹연 화적연의 은빛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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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선 중기 인조, 효종대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이경석(1595~1671)의 문집 '백헌선생집'에는 1628년 지낸 국행기우제에서 올린 기우제문이 기록되어 있다. 
 
신령스러운 못 엉기어 빠지니
뭇 물줄기 돌아 흘러 모이네
구름과 함께 비를 내려 주시니
용험은 있고 업신여김 없도다
오늘 이 큰 가뭄
백성의 목숨이 거의 위태롭도다
덕 잃음은 나에게 있으니
백성이 무슨 죄 있겠는가
정성은 자질구레하고 격식조자 갖추지 않았으니
근심과 두려움 날로 더 하네
많고도 큰 비 담은 단 못이여
이 굶주림에 은혜를 베푸소서

 
 
민간에 전해져 오는 전설을 통해서도 화적연이 얼마나 신령스러운 장소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 농부가 화적연에 앉아서 3년 동안 긴 가뭄을 한탄하면서 '이렇게 많은 물을 두고도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하는가. 용이 3년 동안 잠만 자는가보다. 하늘도 무심하다라며 하소연을 하자, 화적연의 물이 왈칵 뒤집히고 용의 머리가 쑥 나왔다. 농부가 놀란 사이 용이 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시인과 묵객들 화적연을 노래하다
  
겸재 정선 '화적연 ' 조선시대 많은 묵객들이 금강산 유랑길에 화적연에 들러 시와 그림을 남겼다.
▲ 겸재 정선 "화적연 " 조선시대 많은 묵객들이 금강산 유랑길에 화적연에 들러 시와 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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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동시에 신비한 자연의 조화를 간직한 화적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글과 그림을 남겼다. 조선시대 영의정 미수 허목의 '화적연기', 서계박세당 '서계문집'등의 글과 겸재 정선, 이윤영, 정수영 등이 남긴 '실경산수화'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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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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