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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가 출간한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책은 뉴라이드 경제사학자들이 주도해 만든 <반일 종족주의>를 일제강점기 경제사의 관점에서 비판한 책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가 출간한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책은 뉴라이드 경제사학자들이 주도해 만든 <반일 종족주의>를 일제강점기 경제사의 관점에서 비판한 책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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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은 너무 떠 버렸어요.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을 만들었어요. (논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난 2019년 우리 사회에 <반일 종족주의> '광풍'이 불었습니다. 뉴라이트 경제사학자들이 주도해 만든 이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일본 극우 세력 주장을 대변해 논란에 휩싸였고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유명세 덕에 국내에서만 10만 부 이상, 2019년 말에 나온 일본어판은 40만 부 이상 팔렸고, 지난 5월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이란 후속작까지 나왔습니다.

'이에는 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일까요. 최근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한겨레출판)이란 비판서를 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 주요 필자들과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선후배 관계입니다.

전 교수는 지난 1980~1990년대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당시 '한국경제사 대부'로 불리던 안병직 전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이끄는 '안병직 사단'에서 한국경제사를 전공했고 일제강점기 미곡 정책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지금 전 교수는 '경제사' 분야보다는 부동산 경제학자로 활약하고 있는데 <반일 종족주의>가 옛 전공을 일깨웠습니다. 전 교수는 2019년 8월 <오마이뉴스>에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는 칼럼을 올려 필자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와 지상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전강수 교수를 만나 2시간 남짓 인터뷰했습니다. 이날만큼은 부동산 경제학자 이전에 일제강점기 한국경제사 전공자로 돌아가 함께 공부했던 스승과 선배들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습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어서 더 위험한 책"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다룬 책이라 딱딱하고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이 책은 비교적 술술 읽힙니다. 비판 대상인 <반일 종족주의>처럼 경어체로 쓴 탓도 있습니다.

- <반일 종족주의>가 쉬운 내용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관심을 끈 이유가 뭘까요?
"<반일 종족주의>도 원래 이승만 학당 연속 강의록을 원고로 만들어 아무래도 사람들이 읽기에는 친숙하다고 해야 하나요. 내용은 안 그렇습니다만. 그 책이 왜 그리 인기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쉽게 읽히는 거예요.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으니 쑥 빠지게 되고 '정말 그런가?', '내가 잘못 알았네?'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집필 방식은 괜찮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위험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 가볍게 접근해도 사실에 입각해서 논리적, 실증적으로 접근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이영훈 교수는 학자로서는 정말 대단해요. 개인적으로 뛰어난 선배고요. 그분이 (대학원 때) 조선시대 경제사를, 전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전공했는데, 저는 조선시대에 관한 그분 주장을 다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를 보면서 오히려 의심이 들어 그분이 옛날에 한 주장도 맞는 건가, 하나하나 따져보게 돼요. 처음 그 책을 읽고 위험한 정도가 심각하다 생각했는데, 처음 직감했던 것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커져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됐어요."

- <반일 종족주의>가 출간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작 주류 역사학계에서 공개적인 반박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2가지 요인이 있다고 봐요. 우선 너무 '허수아비 치기'를 하니까. 대표적인 게 토지조사사업 관련 주장(<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은 국사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토지 40% 수탈설'이 실린 게 역사학계의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기자 주)인데, 역사학계에선 그런 주장을 안 하거든요. 우린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허수아비'(토지 40% 수탈설)를 만들어 공격하니 아예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 걸 수 있죠.

또 하나는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이 다 경제학자예요. 경제학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하고 단순히 역사 연구했다고 다룰 수 없어요. 경제학 이론이 섞이고 100년간 장기적인 경제 통계를 정리했다고 하니 (반론하기를) 좀 꺼렸던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 문제처럼 역사학계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운동하고 연구 성과도 있는 분야에서는 반론이 나왔는데, 막상 경제 문제는 제대로 반론이 안 나왔어요."

'청출어람' 이영훈, '뉴라이트' 안병직을 넘어서다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저자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저자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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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필자인 이영훈 교수나 주익종 박사, 김낙년 교수들과 한때 동문수학했고, 스승이었던 안병직 교수도 한때 진보 성향 학자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서로 갈라지게 된 건가요?
"안병직 교수는 당시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장했어요. 지금 보면 '민족해방(NL)' 계열의 원조쯤 돼요. 당시 서울대에서 학문 하겠다는 사람들은 다 그분 밑으로 모였고, 이영훈 교수도 학교 다닐 때는 이른바 운동권이었어요. 제적도 당하고 노동 현장에도 가고. 내가 대학원 들어갔을 때 이 교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거목이었어요. 8년 선배였는데 운동권 경력도 그렇고 그 어려운 조선시대를 전공했고 지곡서당에서 3년 꼬박 공부해 한문 실력도 대단했죠. 그러니까 요즘 변신을 더 이해할 수 없죠."

안병직 교수와 이영훈 교수는 1980년대 한국이 미국, 일본 등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식민지 국가여서 스스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펼쳤다가, 동구권이 몰락한 1990년대 이후 오히려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뉴라이트 대부'로 변신했습니다.

"안병직 교수가 처음 변신했어요. 그럴 수 있죠.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이 말이 안 되잖아요. 한국에서 자본주의 발달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동구권이 몰락하고 자본주의 생명력이 대단한 걸 봤으면 사회민주주의로도 갈 수 있고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극우로 갔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1987년 일본에 다녀온 안 교수가 변신하자 이영훈 교수가 엄청 반발했어요. 안 교수가 식민지시대 조선 노동자가 성장했다는 논문을 쓰자 그게 어떻게 가능하느냐, 마르크스 이념에 맞느냐며 선생과 엄청 싸우다가 결국 안 교수 생각을 받아들였어요."

- 스승이 변신했다고 제자들이 모두 따라갔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영훈 교수도 대단했지만 안병직 교수는 당시 대학원생들에게 영향력이 아버지 이상이었어요. 보통 교수-대학원생 사이가 아니라 거의 도제 관계였고 그분은 장인이었죠. 그분 생각을 거역한다는 건 있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죠."

- 전 교수는 예외였는데, 왜 그때 스승을 따르지 않았나요?
"제가 무슨 의지를 발동해 저항했던 건 아니고, 당시 연구 관심이 바뀌었어요. 1993년에 박사 학위 논문을 마치고 한국경제사에 좀 질렸어요. 식민지시대 미곡정책으로 논문을 썼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새로운 걸 모색하다 헨리 조지 경제학을 만났어요. 계속 그걸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쪽(낙성대연구소)에 출석 안 하게 됐죠. 결국 연구 관심이 바뀌어서 그쪽에 휩쓸리지 않았죠."

- 이 책에서 이영훈 교수가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감히 펼치지 못했던 '극단적 자학사관'을 보여줬고 '혐한 종족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했습니다. 필자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한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복합적이었을 거예요. 막상 안병직 교수는 이영훈 교수처럼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안 갔어요. 안병직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말할 때, 물론 옛날 책이지만 상식적인 범위 안에 있었어요. 이영훈은 완전히 넘어섰어요. 변신을 시작한 건 안병직이지만 이영훈은 확 더 가버렸죠. '청출어람(청어람)'인 셈이죠."

- 이영훈 교수의 정치적 견해가 확고해지면서 학문에까지 영향을 준 게 아닐까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이분이 역사에는 밝지만 오늘날 현실에 대해 잘 몰라요. 역사 연구에서 익힌 수법이나 인식을 가지고 현실 정치나 현실 경제를 얘기하니 뭔가 왜곡된 게 들어가서 이상한 해석이 나와요. 정치 운동(뉴라이트)을 한 게 역사 연구를 오염시키는 작용을 했다고 생각해요."

<반일 종족주의> 팩트체크가 쉬웠던 까닭

- 이 책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제기한 주장에 대한 일종의 팩트체크 성격이 강합니다. 필자들이 인용한 많은 자료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반박 자료들을 찾느라 집필 작업이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제가 <반일 종족주의>를 몇 번 읽었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자료를 찾아보니 엉터리가 많았어요. 제가 '부조적 수법'이라고 지적했는데, (여러 자료와 사례 가운데)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취해서 강조한다든지, 과장하고 왜곡해서 결론은 거짓말을 끌어내요. 이건(팩트체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생겼어요. 이 사람들이 봤다는 자료를 모두 보다보니 팩트체크하는 게 쉬웠어요. 거짓말에 과장, 왜곡한 내용이 많고 그 사람들이 본 자료도 엉터리로 인용하고. 훨씬 더 교묘했다면 다루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 주로 유튜브에서 주장했던 내용들을 모은 건데, 이렇게 비판서까지 낼 정도였나요?
"학자들이 방송만 하고 만 게 아니라, 자기들이 오랜 기간 학문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해서 학자적 대응을 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안 하면 그 사람들 말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효과가 클 거라 생각해요. 중고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반일 종족주의> 내용을 가지고 질문해서 선생들이 난감해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요즘 청년이나 10대들이 유튜브를 많이 보니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유튜브로)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확산되니 더 심각한 문제죠."

- 진보 성향 유튜브도 활발한 편인데, '이승만 학당'에 대응할 만한 역량은 없는 듯 합니다.
"그 점에선 이영훈 교수를 존경해요. 이 사람은 이 운동에 자기 인생을 걸었어요. 반대편에는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옛날 운동권들이 자기 인생을 바쳐 하는 게 사라진 것 같아요. 안병직 교수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뉴라이트재단 만들었을 때 70대였는데 다시 가슴이 뛴다고 했어요. 이영훈 교수도 비뚤어진 열정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전 교수는 지난 2019년 8월 일제강점기 쌀 수탈 문제를 놓고 김낙년 교수와 지상 논쟁을 벌였고 그 내용 일부가 후속작인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전강수 교수 <반일 종족주의> 비판 칼럼]
'친일파' 비판이 억울? 자업자득이다 http://omn.kr/1kevk
당신들이 유포하는 건 '혐한 종족주의'다 http://omn.kr/1kgoo

- 2019년 8월 <오마이뉴스>에 <반일 종족주의> 비판 칼럼을 썼는데, 그것도 열정이 필요하지 않았나요.
"저는 대단한 확신과 열정이 충만해서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된 일이 많아요. 부동산 정책도 그냥 그렇게 된 거고, 갑자기 돌아와서 이 책을 쓴 것도 그냥 그렇게 된 거고. 그게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충실히 하자. 일종의 시대적 소명을 느꼈어요."

전 교수가 선배들과 맞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 국사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015년 10월에도 안병직 교수와 이영훈 교수 등 뉴라이트 학자들을 비판한 칼럼을 <오마이뉴스>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관련 기사 : '국정화 사태' 진원 이영훈 선배, 어쩌다 이렇게 http://omn.kr/fh8y)

- 비판 글을 올리고 나서 이영훈 교수 쪽에서 반응은 없었나요?
"연락도 없고 반응이 일절 없어요. 저쪽에서도 난감해 하는 것 같아요. 맞대응하자니 키워주는 것 같고 놔두는 게 더 낫겠다 판단했을 수도 있죠. 비슷한 비판서가 제법 나왔고 호사카 유지 교수(<신친일파> 저자) 때는 바로 유튜브 방송으로 반박했는데 제 책에 대해선 일절 반박이 없어요."

"이영훈 교수는 침소봉대 '부조적 수법'의 달인"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저자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저자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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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는 이 책에서 <반일 종족주의> 주장 가운데 6가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는데요. ▲ '한국인은 반일 종족주의에 빠져있다' ▲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과 쌀 수탈은 없었다' ▲ '한일협정으로 한국인의 대일청구권은 모두 소멸했다' ▲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도 아니고, 성노예도 아니다' 등입니다.

- 이들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가 뭔지 궁금합니다.
"먼저 '반일 종족주의'라는 건 한국 사람이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는 얘기고, 한국 대학이 거짓말의 온상이라는 얘기인데 말이 안되잖아요. 일제강점기에 대한 거짓말이 어떻게 한국 학문 전체와 대학 전체, 사회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나요. 샤머니즘에 빠진 국민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한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나요. 한국은 이미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이에요. 그런 사회를 두고 거짓말 문화가 팽배해 있다,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건 말이 안돼요. 그런 요소가 일부 존재하는 것과 모든 국민과 사회가 사로잡혀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말인데 침소봉대하는 논리를 펴고 있어요. 거기서 이 교수가 동원하는 범죄 통계들도 언론 팩트체크 결과 거짓으로 판명 났어요."

- 토지와 쌀 수탈 문제는 이미 2019년 김낙년 교수와 논쟁도 벌였고, 박사 논문 주제로 연구했던 분야라 가장 자신 있었을 것 같은데요. 상대들도 한국경제사 권위자들인데 논리와 실증 모두 불합격 판정을 받을 만큼 허술했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이런 논리적 모순이 발생했다고 보십니까?
"전체적으로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있어요. 문제가 되는 것들을 아주 협의의 개념으로 좁혀요. 수탈 개념도, 강제 연행 개념도, '위안부' 생활도 그렇고, 아주 좁은 범위로 개념을 규정해 놓고, 이 좁은 범위에 해당하는 사례가 별로 없으니 수탈도, 강제연행도, '위안부' 성착취도 없었다고 결론 내려요.

이 방법은 일본 극우들이 사용해오던 방법이에요. '위안부 강제연행'도 헌병이나 경찰이 직접 납치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런 게 안 보이니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식이죠. 자기들이 생각하는 개념에 해당하는 게 없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찾는 게 연구자의 도리인데 딱 부정하는 쪽으로 간 건 잘못됐고,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 필자들이 <반일 종족주의>를 통해 노리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 주장처럼 궁극적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워, 수출규제 갈등처럼 서로 적대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게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들은 그런 이론이 있는 것 같아요. '한미동맹, 그 안에 일본까지 포함해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로 나가 대외개방적인 정책을 펼쳐서 한국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위안부나 강제징용 같은 과거사 문제를 꺼내 일본과 척을 지는 건 한국 발전의 기본 토대를 허무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나라가 망한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 마음에 맞는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찬양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빼요. 조금이라도 민족 자존심을 추구하면 순 나쁜 놈들이고, 거기다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전화 통화 한 번 했다고 혁명사관이니 북한혁명기지론이니 온갖 죄목을 다 갖다 붙여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건 언급도 안 하고요. 전반적으로 '부조적 수법'이에요. 자기 맘에 드는 건 부각시키고 맘에 안 드는 건 말을 안 하는 거죠."

- 그래서 이영훈 교수를 책에서 '부조적 수법의 달인'이라고 했군요. 이 정도면 학문 영역이 아니라 정치 평론 영역 아닌가요?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은 정치 평론인데 학자인 양 포장하는 거죠. 학자로서 자기 히스토리와 명성을 거기(정치평론)에 활용하는 거예요."

- 지금 이영훈 교수 주장이 과거에 쓴 책 내용과 달라진 부분도 있다면서요.
"이 교수가 2007년에 쓴 책 <대한민국 이야기> 정도에 머물렀으면 좋았을 거예요. (지난 2004년) MBC 토론에 나와서 위안부 문제를 잘못 얘기해서 '위안부' 할머니를 찾아가 절도 하고 사과했어요. 그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자기가 '위안부 성노예설을 부정하는 국내 최초의 연구자'라고 당당히 얘기하니 완전히 담을 넘어간 거죠."

 
2004년 나눔의 집 방문했던 이영훈 교수 지난 2004년 9월 6일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발언과 관련 직접 사과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을 방문했지만 할머니들로부터 '진솔한 사과가 없다'는 항의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 2004년 나눔의 집 방문했던 이영훈 교수 지난 2004년 9월 6일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발언과 관련 직접 사과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을 방문했지만 할머니들로부터 "진솔한 사과가 없다"는 항의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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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에 거북해하는 건 일본 극우 관점"

- 필자들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반일 종족주의의 아성'으로 규정하고, 유독 이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요.
"결국 이 사람들이 거북해 하는 게 '평화의 소녀상'이에요. 일본 극우들과 아베정권이 가장 거북해 하는 것도 소녀상인데,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이) 공격 초점을 맞추는 건 그쪽과 유사하고 그쪽 친화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실제 일본 정부는 최근 강원도 한 식물원 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는 남성 조형물이 아베 총리를 연상시킨다며, 우리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들을(위안부 강제연행과 강제징용 사실을 부정하고 일본 우익에 동조하는 세력들을) '신친일파'라고 했는데 동의하세요?
"제 책에도 동의한다고 썼어요. 당신들이 '친일파'라는 비판을 들어도 변명할 수 없다, 자업자득이라고 말이죠. 호사카 유지 교수가 얘기한 개념으로 보면 그들이 거기에 해당돼요. 소녀상이 아성이고 그걸 없애야 한다는 건 일본 우파 정권의 명백한 입장이죠."

-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이같은 친일 논리들이 '애국'으로 포장돼 수면 위로 올라왔고 정의연 사태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도발이 계속될 텐데, 학계나 언론 등에서 어떤 대비가 필요할까요?
"제일 먼저 학문 영역에서 논쟁이 있어야 해요. 논쟁하다 보면 서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논쟁 과정 자체가 사회에 알려지는 게 필요해요. 자기들이 말해도 상대도 안 해준다, 토론회에 초청도 안 한다고 하는데, 그들 자신도 논쟁할 생각이 없어 보여요. 토론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합의점에 도달하자는 생각은 없는 거 같아요."

전 교수는 앞으로도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과의 논쟁을 피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선후배로 지낸 오랜 인연 탓일까요. "서로 얼굴 맞대면 감정 때문에 제대로 논쟁이 될까 싶다"는군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언론을 통한 '지상 논쟁'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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