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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오히라 메모. 당시 한.일 담당자들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전체 피해자 규모, 피해자 1인당 배상액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조차 하지 않은채 큰틀에서 총액만 밀실회담 협의한 것을 보여주는 메모.
 김종필-오히라 메모. 당시 한.일 담당자들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전체 피해자 규모, 피해자 1인당 배상액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조차 하지 않은채 큰틀에서 총액만 밀실회담 협의한 것을 보여주는 메모.
ⓒ KBS "역사저널 그날"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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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얻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소송을 지원해온 단체의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단체명이다.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1999년 3월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뒤 장장 19년 8개월만인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던 날, 그 역사적 현장에 나도 같이 있었다.

지난 28일 방영된 KBS '역사저널 그날-박정희 의장, 한일협정을 밀어붙이다' 편에선 2018년 일제 강제동원 소송 대법원판결을 계기로 한일 간 갈등 중심에 선 한일협정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273회). 특히, 1951년 시작돼 10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한일회담이 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전격 합의에 이르게 된 배경과 청구권 협정 내용, 무상 3억 달러 실체 등에 대해 여러 자료를 통해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다. 못 보신 분들은 홈페이지 '다시보기(링크)'로 꼭 보시길 추천한다.

다만, 최근 한일 간 갈등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방송 내용 중 일부 오류로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다. 방송에 출연한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3억 달러에는 일제시대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보상금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군사정권이 필요한 목적의 기간시설에 사용하게 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수력발전소, 소양강 댐 이런 데 건설에 (비용이) 들어갔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박정희 정권의 지지기반 혹은 생존기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패널로 참여한 정 교수는 방송이 시작한 지 36분경에 "3억 달러에는 일제시대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보상금이 들어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고 본다.

'무상 3억 달러=피해자 보상금'이라는 오해, 어떻게 생겼나  
 
 굴욕외교라는 거센 비판속에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회담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굴욕외교라는 거센 비판속에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회담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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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 얘기처럼, 그간 많은 국민들은 한일협정 결과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무상 3억 달러가 일제 피해자들 보상금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던 게 사실이다. 일본 정부도 강제동원 책임 문제를 거론할 때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식으로 얘기했고, 한국 정부도 2018년 대법원판결 이전까진 그런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소송과 관련한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이전까지, 한국 정부 역시 무상 3억 달러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몫이 포함된 것처럼 애매한 입장을 취했었다.

일부 국민들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무상 3억 달러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보상금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 오랫동안 한일청구권협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일반인들로서는 정보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명확한 설명을 피하거나, 실체적 진실과 달리 유리한 대로, 입맛대로 얘기하다 보니 국민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한일협정 실체는 2005년 협정 체결 40년 만에서야 한일회담 문서가 일부 공개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통해, 비로소 한국 사법부는 논란을 빚어 오던 한일청구권 협정의 효력과 실체를 명확히 밝히기에 이르렀다.

일본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 갚아야 할 것이 더 많다" 역청구권 주장
   
정 교수 얘기처럼 무상 3억 달러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보상금'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우선 한일회담 진행과정에서 일본이 실제로 피해자들에게 보상이든 배상이든 사과를 취할 자세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방송에서도 다뤘던 것처럼 한일회담 당시 일본은 일제 식민지 범죄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애초 '문제'로도 보지 않았다. 즉, 불법행위나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일본 대표는 공식 1차회담에서 "일본이 한국에 갚아야 할 것보다 한국에 일본이 남겨 놓은 재산이 많으니,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 갚아야 할 것이 더 많다"라는 취지로 역(逆)청구권을 주장하는 판이었으니, 일본 입장에서 보면 '배상'이나 '보상'은 얼토당토않은 얘기였던 셈이다.

이런 자세와 인식을 하고 있던 일본이, 어느 날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 피해자 보상금으로 3억 달러를 내놓았을 까닭이 있을까. 무상 3억 달러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적시된 문헌 그대로 '경제협력자금'이었고, 내용적으로는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에 대한 '독립축하금'이었다.

한국 대법원 "한일청구권협정은 피해자 배상 문제와 무관"  

한국 사법부도 일제 강제동원 관련 소송 판결에서 이 점을 명확히 했다. 우선 한일청구권협정 성격에 대해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피해자 배상 문제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회담이 실제 진행돼 왔던 과정을 면밀히 짚어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함에 따라 한일 양국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한일청구권협정은 애초 피해자 배상 논의를 위한 협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에 대해서도 피해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해자 문제가 끝났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삼권이 분립된 법치국가에서 국가 간 '조약'에 대한 최종 해석 권한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유일하게 사법부에만 있다. 그리고 사법부 최고 법원인 한국 대법원은 피해자들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대법원 승소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모습. 2018년 11월 29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대법원 승소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모습. 2018년 11월 29일.
ⓒ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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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2월경 순천남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졸업을 앞두고 일본 도야마현에 위치한 후지코시 회사로 동원된 김정주할머니가 일제피해자 문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며 외교부 앞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2010년 1월 26일)
 1945년 2월경 순천남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졸업을 앞두고 일본 도야마현에 위치한 후지코시 회사로 동원된 김정주할머니가 일제피해자 문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며 외교부 앞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2010년 1월 26일)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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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은 대법원판결에 대해 "한국이 국제법을 어겼다"는 취지의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점에서 28일 방송은 대법원판결 이후 첨예화되는 한일 간 대립 상황에서 매우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선 정 교수의 얘기처럼 만약 무상 3억 불에 강제동원 피해자들 보상금이 포함돼 있다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 판결도, 일본 정부 주장처럼 잘못된 것이므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 보상금으로 무상 3억 달러를 받았다면, 이들이 보상을 요구해야 할 주체는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되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 무상 3억 달러를 이미 받아 놓고도 피해자들은 엉뚱하게 다시 일본 기업에 돈을 달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니 참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주장대로라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알고서도 한국 정부를 놔둔 채 일본 기업에 떼나 쓴다는 건가? 정당한 주장이 아니라 돈 한 푼 얻자고 구걸하는 것인가?

이런 발언은, 말한 사람 의도와는 달리 아베 정부의 주장에 일조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을 두고 그렇지 않아도 "한국이 해결책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난데 없이 수출규제라는 이름으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무상 3억 달러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이 포함돼 있다'는 말은 이런 아베 정부 주장에 손발을 맞춰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인식이 반복되고 확산되면 이 사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자국민에 공연한 오해를 심어줄 뿐 아니라, 일본 국민들에게도 한일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문제 해결을 더 꼬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KBS '역사저널 그날'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정보도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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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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