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8 08:00최종 업데이트 20.07.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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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메모들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흔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많이 품는 의문 중 하나가 왜 그간 당하고만 혹은 참고만 있었냐는 것이다. 몇 년 전 김지은씨가 상사였던 안희정 전 도지사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나섰을 때 역시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저러냐고, 왜 진작 싫다는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냐고, 결국 모든 것이 김지은씨 본인의 책임이며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내 주변의 한 남성은 김지은씨가 하는 말을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며, 이제 와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연애 감정의 변심'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아니었다면 당장에 일을 그만뒀을 것이 틀림없다면서.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직장을 어떻게 그리 쉽게 그만두나요?" 그러자 그는 그런 내가 더 놀랍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도 그만둬야죠! 그냥 다 때려치고 나와야죠! 성폭력 위기에 처했는데 그까짓 직장이 대수인가요? 나라면 그랬을 거예요! 자기는 자기가 스스로 지켜야죠!"

"다 때려치고 나와야죠! 그까짓 직장이 대수인가요?"

그러니까 그의 주장은 성폭력의 위기가 닥치면 피해자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있는 힘껏 저항을 하기 마련이며 그렇게 해야 마땅한데, 김지은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직장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쉽게 때려칠 수 있는 것이던가. 더군다나 김지은씨는 당시 차기 대통령의 유력 후보인 유명 정치인의 수행비서였다.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주요한 커리어를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 회사원이야 상사와 트러블이 생기거나 업무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여차하면 이직을 할 여지가 있지만, 학계나 정계와 같이 상대적으로 '닫힌' 세계의 사람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일반 회사원조차도 이직 한 번 하려면 매우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인맥과 경력에 의해 향후의 모든 행방이 좌우되는 정계에서 일하는 이들이라면 오죽할까.

특히 김지은씨와 같은 수행비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있어 발령 이전에 해당 업무를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정계를 완전히 떠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간 애쓰고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경력을 하루 아침에 포기한다는 결심이 섰을 때에만, 여태껏 관계를 맺어왔던 이들 대부분과 단절을 각오한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깟 직장이라니. 누군가의 생계를 놓고 당연히 그만둬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가벼운 태도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남성이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살펴보니 그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김지은씨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근거로 그토록 오래, 성폭력이 4회나 반복되도록 참고 있었다는 점을 꼽고 있었다. 당시 이들의 주장을 통해 일종의 깨우침을 얻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여성을 한 명의 노동자나 직업인으로서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여성에게도 생계가 달린 문제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왼쪽 두 번째)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왼쪽부터), 김 변호사,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공동취재사진


혹시 '먹고사니즘'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한국어 '먹고 살다'와 이념, 철학 등을 의미하는 영어의 접미사 '-ism'의 합성어인 이 신조어는, 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 태도를 뜻하며 지금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그 지위를 굳혔다. 생계 유지에 몰두하여 그 외의 것들에는 관심을 둘 수 없을 만큼 삶의 여유가 없거나 생계의 위협 때문에 직장 상사 및 고객의 갑질이나 부당한 명령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담아낸, 그야말로 밥벌이의 고단함과 애환이 총체적으로 담긴 단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조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한국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행하는 일들에 우리 사회가 유난히도 관대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뉴스나 기사들을 살피다보면 재판부에서 수많은 범죄자들을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책임져야 할 식솔들이 있다는 이유로 선처해주었다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는 한다.

얼마 전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역시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국내에 머물러도 좋다는 판결을 받았는데, 그가 그러한 '선처'를 받은 주된 근거 중 하나가 수감 중 결혼을 하여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한국은 먹고 사는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면,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있다고 하면, 어린아이들의 강간을 사주하는 심각한 수준의 범죄를 저질러도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줄 정도로 먹고사니즘에 관대한 사회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와 같이 먹고사니즘에 상당히 관대한 한국 사회가 여성의 먹고사니즘에 대해서는 매우 가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은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계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마치 먹고 사는 일과 무관한 존재인 것처럼 대우한다. 우리 사회는 직장 내 갑질로 고통받는 많은 노동자들을 동정하면서도 그 대상자가 김지은씨의 사례처럼 여성일 경우, 그가 입은 피해가 성폭력일 경우, 그것을 직장 내 위력에 의한 부당한 처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사생활로 인식하고는 한다.

그러므로 남성이 거래처의 직원이나 상사의 온갖 갑질과 부당한 요구를 감내하고 참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한 고귀한 희생이자 인내가 되는 것이지만, 그 주체가 여성이 될 경우 그것은 '저도 좋았으면서 여태껏 뭐하다 이제 와서'라는 식의 비난을 들을 만한 개인의 '변심'이자 사적인 '원한'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거미줄

이번에 고인이 된 박원순 전 시장과 관련하여 그의 비서였던 피해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여론이 속출했다. 왜 진작 싫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동안 뭐하다가 이제 와서 저러느냐고, 혹시 배후에 누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연애' 감정을 가지고 잘 만나다가 뭔가 틀어지니 수 쓰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비난이 빗발쳤다.

이들이 피해자를 의심하고 매도하는 근거 역시 김지은씨 때와 정확하게 같았다. 정말로 싫었다면 진작 직장을 그만두거나 싫다는 이야기를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직장 내 위력관계에 대해서 왜 저항을 하지 못했냐고 자연스레 책망하는 모습이나, 여차하면 직장을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이렇게 쉽게 나오는 까닭은 역시나 우리 사회가 여성의 커리어나 직업을 남성의 그것만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먹고사니즘에 대한 잣대가 성별을 기준으로 백팔십도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로서는 그야말로 옴싹달싹 못하는 거미줄에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직장 내 온갖 갑질을 인내하며 버티면 갑질의 대상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그 갑질에 동의한 것처럼 취급되고,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루기 불편한 사람이 되어 버리며, 결국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면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고, 여자는 못 쓰겠다는 소리를 듣게 되며, 회사에 다니는 대신 가사와 육아 노동을 하게 되면 '집에서 노는', '남편에게 기생하는' 취급을 받곤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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