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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걱정이 팔자인 분이다. 음식을 준비하면서부터 맛을 걱정한다. 맛있으면 부족해 보이는 양을, 맛없으면 많아 보이는 양을 걱정한다. 그런 어머니가 누룽지를 만들었다. 일일이 프라이팬에 눌러서 얼마 나오지 않는 누룽지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무척이나 뜨거웠지만 고소했던 누룽지
▲ 어머니의 누룽지 무척이나 뜨거웠지만 고소했던 누룽지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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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맛있어요 믿어주세요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 댁에 갔다. 쉴 새 없이 나오는 음식에 정신을 놓을 즈음, 어머니는 아내와 내 앞에 조심스레 누룽지를 내놓았다. 펄펄 끓는 물에 담긴 누룽지. 뻣뻣했던 몸을 풀기라도 하듯 서서히 늘어지며 뽀얀 국물을 우려내고 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구수한 향이 코 끝에 막 닿으려는 순간, 어머니가 불안한 듯 물었다. "누룽지 안 좋아하나? 괜한 걸 만들었는가베..." 아... 어머니. 지금 먹으면 평생 맛을 잃을 수도 있어요. 아직도 펄펄. 주신 지 5초도 안 지났는데.. 마마, 컴 다운, 캄 다운. (엄마. 이리 와 앉아서, 진정해요)

어머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급히 한 숟갈 떠서 굉장히 방정맞은 '호호'를 시전 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한 입. 와우. 맛있다.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고이며 빈틈도 없이 채웠던 부른 배에 여유를 만들어 준다. "엄청 맛있네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극찬은 어머니의 의심스럽다는 표정에 갈 곳을 잃었다. 아무래도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그냥, 미각을 잃었어야 했나...

별 수 없이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걸었다. 맛있다고 거듭거듭 강조하며 맛의 디테일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식감은 이 이상 꼬들하기 힘들고 혀에 닿았을 때의 느낌은 솜사탕의 그것과 닮았으며 목 넘김은 유명 맥주 저리 가라라며 연신 홍홍 거리며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지 못하겠다는 듯 머슴 드링킹(입가로 살짝 흘러나온 숭늉은 화룡정점!). 그제야 경계를 풀며 이 쌀이 어떤 쌀이고, 어떻게 만들었고, 여느 누룽지완 어떻게 퀄리티가 다른지 수다스럽게 얘기하셨다. 저 기쁜 표정. 귀엽다. 화끈거리는 입안의 온도만큼 분위기도 올라갔다.

곧이어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며 부끄럽게 웃었다. '널 위해 준비했어'라는 제스처.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누룽지가 한가득. 어마어마하다. 이걸 언제 다 먹냐며 놀랐다. 아차차. 나의 실수. 냉장고의 냉기에 더해진 나의 멘트 덕에 분위기가 급랭했다. 그 순간, 또다시 의기소침해진 어머니가 클로즈 업 된다. "그렇제? 너무 많제? 아직 쌀이 많은데... 쓸데없이 해가지고..." 또 걱정이시다. 이래선 안된다. 다시 뽐뿌를 넣어야 한다. "아니요... 아니요. 많이 가져가고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애들은 두고 누룽지 태우고 갈 거예욧!"

그 많았던 누룽지는 어디로 갔나

그래도 애들은 태우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못 이기는 척 반 정도를 챙겨 왔다. 냉장고에 들어갈 곳도 마땅찮은데, 이걸 어쩌나. 회사에 조금 가져가고 집에서 끊여먹고 밥 대신 먹고. 머리를 굴려도 당분간 처리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걱정하던 누룽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룽지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이게 참. 누룽지라는 게 어디에 갖다 넣어도 잘 어울렸다. 컵라면 물을 부으며 같이 불려 두었던 누룽지를 국물에 말아 먹으니, 이건 대단 그 이상이었다. 이렇게 구수한 라면 국물은 먹어 본 적이 없다. 미역국, 곰탕. 어디에 넣어도 구수함을 더하고 맛을 더하면 더했지 해치지 않았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인가. 많아서 걱정이던 누룽지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됐더랬다.

일주일 만에 누룽지를 해치운 우리에게 어머님은 버린 것 아니냐며 일부러 억지로 먹은 것은 아니냐며 감출 수 없는 웃음을 동반해서 물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소 과장된 표현과 제스처로 그간의 누룽지와의 협업을 얘기했다. 어떻게 그 많은 누룽지를 해치웠는지에 대한 과정과 노하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의 입 꼬리와 몸이 들썩였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을 하셨다. "집에 쌀이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미소)

어머님은 또다시 밥을 하고 프라이팬에 눌러 담으며 이따금 뜨끔거리는 손목을 주무르실 거다. 불은 적당한지 밥은 적당히 눌어붙었는지 보느라 자리를 뜨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앉아 다른 걱정을 하시겠지. 긴 시간을 기다려 누룽지를 긁어내며 눈으로는 남은 밥을 가늠하고 몇 봉지나 나올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반복해야 할 번거로운 과정을 다시 한번 떠올리실 터다. 그리고 모든 밥을 정성으로 굳히고 가장 구수하지 않을 법한 누룽지를 골라 때를 놓친 점심을 해결하실 거다.

우리가 좋아한 것이 정말 어머니를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심증으론 일을 만들어 드린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어머니는 우리의 누룽지와의 영웅담을 떠올리며 분명 미소를 띠고 계실 거란 거다. 처음엔 많아서 걱정이었던 쌀이 줄어드는 걸 걱정하면서 말이다.

몇 날 며칠 누룽지를 만들었던 어머님의 노고와 쌓여 가는 누룽지를 보며 뿌듯함보다 근심을 가졌을 어머님을 안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일을 하고 난 사람의 바로 그 표정이었다. 해낸 자의 여유로움.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더 크게 느낄 어머니를 알기에 그 모습은 내게 더 큰 의미가 있다.

누룽지를 닮은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당신의 결정과 행동에 확신이나 자신이 없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겪었던 모진 일들이 어머니에게서 그런 것들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어머니는 참 많이도 변하셨다. 펄펄 끊는 누룽지를 내놓곤 얼른 먹지 않는다며 조급하게 구는 분이지만, 사실 어머니는 기다림의 달인이다. 안타깝게도 힘들고 고통스럽게 후회를 쌓고 걱정을 몸에 배면서 긴 기간 기다리는 법을 평생에 걸쳐 익혔다.

어머니는 결혼을 하고 몇 달 되지 않아 같이 살고 싶지 않게 된 아버지와 중매로 만났다. 육남매 중 셋째로 가계의 부담을 덜고자 여느 사람들처럼 이른 결혼을 했다. 장남에겐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 자신을 원망하며 두 아이만 바라보고 살았다. 곧 괜찮아지겠지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던 그녀는, 어느 날은 빈손으로 시댁에서 쫓겨났고 어느 날은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참을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단지 두 아이를 위해 참았다.

그리고 어느 날 시작된 이유 없는 남편의 폭력까지 참던 그녀는 돌부처가 됐다. 모름지기 돌부처는 말이 없다. 그녀도 다르지 않았다. 단지 "한이 대학만 가면 떠나야지" 이 말만 혼자 반복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버스 끊긴 시간까지 야자를 하던 수험생 아들을. 그 기다리던 아들을 데리러 나가는 시간만을. 그 긴 혼자만의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기다리며 숨 막히는 집안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그해, 그녀는 아버지와 갈라섰다. 애정도 없고 능력도 없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굴러들어 왔던 복도 잃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어머니가 된 후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적이 없다. 능력도 자녀의 교육에도 관심이 없었던 이혼한 남편을 대신해 학비를 걱정했고 급하게 대형 면허를 따자마자 경력을 속이고 한 버스회사에서 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뜻대로 나아가지 않던 삶과는 다르게 버스는 어머니의 뜻대로 굴러갔다. 하지만 쉬운 것은 없었다. 손목이 나갔고 무릎이 약해졌다.

우연찮게 발견한 병으로 큰 수술까지 받고 나니 어머니에겐 통증과 조급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어머니는 어떤 생각도 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보고 싶은 자식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할 여유도 없이 아들의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보내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늦은 시간 단칸방에 앉아 잠깐 동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 자식들을 위해 다시 움직여야 하는 피곤한 몸을 뉘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누룽지는 어쩌면 수십 년에 걸쳐 기다렸던 어머니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누룽지를 내놓기까지 어머니는 이미 수십 년을 기다리신 거다. 함께하며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이기를. 먼 곳에서 혼자 생활하며 보고 싶은 자식들을 걱정만 했던 당신이, 이제야 앞가림하는 자식들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지금을. 그렇게 기다렸으니 이제 좀 재촉해도 되지 싶다. 가끔 마주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꿈만 같을까.
 
그 뜨거웠던 누룽지엔 어머니의 오랜 사랑이 들어 있었다.
▲ 사랑이 담긴 누룽지 그 뜨거웠던 누룽지엔 어머니의 오랜 사랑이 들어 있었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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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보슬 여렸던 밥이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딱딱하게 그을리듯, 한들거렸던 젊은 여성이 프라이팬 못지않게 뜨거웠던 삶 속에서 굳고 그을렸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참고 기다리며 정성이라는 결정으로 나를 채웠다.

이제야 그 안쓰럽고 간절했던 마음을 조금씩 알아 간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그럼에도 내 삶의 한 조각도 어머니께 헌신하진 못했기에. 어렸고 무지했으며 호강이라도 시켜드려야 마땅한 지금도, 여전히 내 코는 석 자보다 크다. 죄송스럽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머니를 향해 웃고 얘기하며 구수한 누룽지를 맛나게 먹는 것이 다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이거면 충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참. 계산적이지 못하다.

하나 바라건대, 어머니 눈에 비칠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머니의 지난날 보다 더 강하고 오래 남아, 지금도 가끔씩 괴로워지는 마음을 덜 아프게 했으면 한다.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정성과 깊은 맛이 담긴 누룽지처럼, 대단할 것 없는 우리의 웃음과 말속에 어머니의 지난날을 치유하는 강력한 마법이 서려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태그:#그림에세이, #어머니, #사랑,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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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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