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행정수도 완성.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던진 화두다. 청와대, 국회, 정부부처를 서울시에서 세종시로 옮기자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야기한 대로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완성하게 되면, 국토 균형발전에도 이롭고 부동산 투기 방지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또 세종시와 과천시·서울시에 정부청사가 분산된 일로 인한 행정의 비효율성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가거나, 서울역사 등에서 회의실을 빌리고자 비용을 지불하는 모습은 행정의 능률화는 물론이요, 국가재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담당 공무원들이 지치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놓고 볼 때, 행정수도 이전의 완성은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당위성에 더해, 행정수도 이전의 방법론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천도'라는 단어로 표현될 만한 행정수도 이전은 시급하고 절실한 일인 동시에 방법론적 고민을 많이 요한다.

어렵고 까다로운 '수도 이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도 거주민들의 경제적·정치적 역량이 다른 지역민들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편이다. 수도는 기득권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수도 이전을 추진할 때는 수도 거주민이나 기득권층의 반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수도가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그곳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이 점점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옛날 군주나 집권층은 천도 문제를 자주 고려했다. 군주나 집권층이 이때마다 항상 직면한 것은 기득권층의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이었다.

사회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던 기원전 1300년을 전후한 시기에도 그랬다. 은나라(상나라)의 중흥 군주인 반경(盤庚)의 이야기다.

제19대 군주인 그는 은나라 건국 300년 뒤에 등극했다. 그는 기원전 1300년을 전후한 시점에 지금의 산둥성 취푸시인 엄(奄)에서 허난성 안양시인 은(殷, 은허)으로 도읍을 옮기고자 했다.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대가(大家)나 세족(世族)으로 불리는 기득권층뿐 아니라 소민(小民)으로 일컬어지는 서민층까지 반발을 하고 나섰다.
 
 오늘날의 취푸시와 안양시 간의 이동 시간.
 오늘날의 취푸시와 안양시 간의 이동 시간.
ⓒ 구글 지도

관련사진보기

   
<서경> '반경'편은 "대가와 세족들은 기존 땅을 편하게 생각하고 천도를 어렵게 여겨서 근거 없는 말로 선동했으며, 소민들은 서로 분산돼 흩어져 살면서도 이해관계에 미혹돼 거주지를 옮기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이때 반경이 선택한 방법은 설득될 때까지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 같은 힘겨운 설득 작업 끝에 반경은 결국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천도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은허와 함께 기억되는 은나라의 번영은 반경의 이런 노력 이후 전개됐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 천도다 보니, 꼼수를 쓰는 군주도 나타났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합의 도출이 어려울 것처럼 판단되자, 너무나 엉뚱한 수를 생각해낸 것. 

고구려 장수태왕(태왕이 정식 명칭)이 서진정책(중국 진출 정책)을 포기하고 남진정책(백제·신라·가야 공략정책)으로 선회하도록 만든 나라가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221~589년)의 북중국 강국이자 유목민 출신인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다. 이 나라의 영웅적 군주로 기억되는 효문제가 그 꼼수의 주인공이다.

꼼수 천도

북위 건국 85년 뒤인 471년에 즉위한 효문제는 중국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문화개혁에 착수했다. 유목민을 북중국에 정착시키는 한편, 한족 피지배층과 융화시키는 작업을 단행했다. 이를 위해 그가 추진한 과제 중 하나가 도읍지 이전이었다.

지금의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250km인 북위 수도 평성(平城)은 유목민의 냄새가 풍기는 곳이었다. 효문제는 이곳을 떠나 뤄양(낙양)으로 가고자 했다. 뤄양은 농경문화의 중심지이자 중국 한족의 전통적인 도읍이었다. 평성은 평안도 신의주와 위도가 비슷하고, 뤄양은 전라도 진도와 위도가 비슷하다. 효문제는 장거리 천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선비족 지배층은 효문제가 천도하려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들은 황제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천도가 실현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효문제가 생각해낸 꼼수가 있다. 이것은 고 이공범 성균관대 교수가 쓴 <위진남북조사>에 아래와 같이 소개돼 있다.

"효문제 시기에 평성은 보수화한 선비족 상층부의 세력 기반이었기 때문에, 낙양 천도는 이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됐다. 황제는 태화 17년(493), 남제 친정을 명목으로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해, 낙양에 이르러 다시 남진하려고 했으나 군신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남정(南征) 중지의 교환 조건의 모양새를 갖춰서 낙양 천도를 선언했다."

유목민 지배층이 뤄양 천도를 반대하자 남중국 왕조인 남제를 공격하겠다며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한 뒤, 추가적인 군사행동을 벌이지 않는 조건으로 뤄양 천도에 대한 동의를 받아냈던 것이다. 외국 침공을 명분으로 도읍 예정지에 대군을 주둔시킨 뒤 그곳에 눌러앉는 방법을 구사한 것이다. '천도 할래, 전쟁 할래?'라며 기득권층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셈이다.

이런 식의 꼼수까지 등장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 천도였다. 그 때문에 옛날 군주들은 수도를 옮기기 전에 하늘의 뜻을 묻는 모양새를 취했다. 수도 이전의 명분을 하늘에서 찾고, 이를 기반으로 설득 작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주나라 행정체계를 기록한 <주례> '춘관종백'(春官宗伯) 편에서는, 천도를 하거나 군대를 동원할 때 거북점을 쳤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유사한 풍경은 한국사에서도 나타난다. 태조 이성계 역시 한양 천도 과정에서 하늘의 뜻을 묻는 모습을 연출했다. 음력으로 태조 3년 8월 12일 자(양력 1394년 9월 7일자) <태조실록>에 따르면, 재상들이 천도를 반대하자 이성계는 개경 소격전에서 하늘의 뜻을 묻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성계는 결국 한양 천도를 관철시켰다.

기득권 반발에 가로막힌 역사
 
 고려시대 소격전을 계승한 조선시대 소격서의 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삼청파출소 앞에서 찍은 사진.
 고려시대 소격전을 계승한 조선시대 소격서의 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삼청파출소 앞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물론 모든 천도가 다 까다롭고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성계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조선 초기의 한양 천도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는 천도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은 태조 때인 1394년에 한양으로 갔다가 정종 때인 1399년에 개경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뒤, 태종 때인 1405년에 한양으로 다시 천도했다.

이 시기에 천도가 비교적 수월했던 것은 왕조의 시스템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득권 구조 역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기존 수도인 개경에서는 옛 고려 지배층의 기득권과 조선왕조 건국 주역들의 권익이 충돌하고 있었고, 새로운 수도인 한양에서는 조선 건국 주역들의 기득권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타 시기에 비해 천도가 자주 일어날 수 있었다.

국가 초기와 더불어 천도가 비교적 자유로운 또 다른 시점은 전쟁이 벌어지거나 대재앙이 벌어졌을 때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천도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포함한 각종 장애물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박정희 정권의 '대전 임시행정수도'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것, 노무현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이 불완전하게 끝난 것 등은 천도에 수반되는 그 같은 어려움들을 잘 반영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천도를 사실상 제2의 건국으로 이해했다. <관자> '팔관'(八觀) 편은 "본래의 수도를 떠나 도읍을 옮기면 망한다"라고 말한다. '본래의 수도'가 원문에는 본국(本國)으로 표기돼 있다. 고대에는 국(國)이 도읍을 의미할 때가 많았다. 이 문장 속의 '국'은 도읍이다.

관자가 '천도를 하면 망한다'고 말한 것은, 천도를 하면 실제로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천도를 하면 국가의 성격이 바뀌는 질적 변화가 수반된다는 뜻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천도에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당연히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전경
 세종시 전경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국가 초기나 전쟁 시기가 아닌 평상시에는 사회적 합의가 천도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다. 북위 효문제처럼 엉뚱하고도 과감한 군주가 아니라면, 은나라 반경처럼 사회적 합의를 착실하게 추구하는 군주가 천도라는 고난도 과제를 성사시킬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이 절실하다고 해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채 추진하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나머지 2년 임기는 수도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추진 중인 각종 개혁들이 뒷전으로 밀리거나 동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사태를 막는 길은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