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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기획 '지나간 20년, 앞으로 20년(20-20)'을 선보입니다. 2020년 현재, 2000년을 돌아보며 2040년을 그리려 합니다. 사회 각 분야별로 지난 20년 동안 성과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또 무엇인지,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마흔 살이 됐을 때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기대하겠습니다.[편집자말]
"죽어간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소중한 자식이었을 이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힘겹게 삶을 이어왔을 이들이 이윤 전쟁에 맨몸뚱이 총알받이로 나가 죽어간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떨어져 죽고, STX조선 비정규직 노동자는 메인 스위치가 차단되지 않은 채 크레인에서 전기작업을 하다 감전되어 죽고, 무전기 등 안전을 지켜줄 통신장비 없이  철로에서 침목 교체 작업을 하던 외주하청 노동자들은 열차에 치여서 죽는다."
 
16년 전 글이다. 이 글을 쓴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를 지난 7일 만났다. 우리는 한 문장, 한 문장 짚어봤다. 

-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떨어져 죽고...
"여전하죠."

- 조선소에서 감전되어 죽고...
"똑같습니다."

- 침목 교체 작업을 하다가...
"네, 2017년에도 죽었죠, 똑같이."

- 노동자가 추락사했는데 '정상 영업'을 못해 고객들에게 미안하다고 플래카드를 걸었던 부천 LG백화점 이야기도 글에 있는데요.
"얼마 전 쿠팡도 그랬죠. 관리 부실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150명이나 받았어요.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고객들한테만 사과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김 공동대표는 "(글을 썼던 그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아니, '맨몸뚱이 총알받이'로 죽는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났다고 했다. "아무 것도 바뀐 것 없이 위험만 일정하게 누군가에게로 옮아가고 집중되는 형태"라는 그의 말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2000년 그 사진들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는 “2000년 어떤 일을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KBS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 사진을 소개하며 “그들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함께 했다”고 말했다.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는 “2000년 어떤 일을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KBS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 사진을 소개하며 “그들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함께 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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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공동대표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아래 '철폐연대') 사무실에서 마주앉아 처음 던진 질문은 '2000년 어떤 일을 했느냐'였다. 그는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소개했다. "KBS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주봉희 위원장 사진"이라고 했다. 2000년 6월 1일이었다. 주 위원장을 포함해 227명에게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들었다. 모두, 1998년 7월 1일 발효된 파견법에 따라 정규직 전환을 코앞에 둔 노동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김 공동대표는 싸웠다고 했다.

그 때 나이를 물어봤다. 김 공동대표는 "완전 파릇파릇한 30대였다"면서 또 한 장의 사진을 소개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투쟁 때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던 얼굴들을 액자로 만들었다"고 했다. 역시 2000년이었다. 그 해 12월 말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그 숫자는 무려 7천여명에 이르렀다. 사상 초유의 517일 파업 투쟁이 벌어졌다. 그 긴 시간의 끝에 있던 얼굴들, 헤아려보니 모두 264명이었다. 김 공동대표 얼굴도 있었다. 그들이 함께 외친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였다.
 
지난 2000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투쟁 때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의 얼굴 사진 속에 김혜진 공동대표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2000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투쟁 때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의 얼굴 사진 속에 김혜진 공동대표도 함께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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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철폐연대'가 만들어졌다. 김 공동대표는 출범 준비 단계부터 함께 했다. 앞서 KBS·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고, "원래부터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의 이름을 '노동자'와 함께 검색해봤었다. 레미콘 노동자,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하청, 간병인, 이랜드,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서울대병원 청소 노동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등... 20년 내내 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 공동대표는 '철폐연대' 활동을 이렇게 돌아봤다.

"그동안 사회적 관심이 별로 없는 영역이 어딘가 보려고 노력했어요. 비정규직 대다수는 작은 사업장에 있잖아요. 반월시화공단에서 30만 명 정도 일을 해요. 그런데 사업장 평균 노동자 숫자가 11명에서 12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만큼 작은 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곳이죠. 월담(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 찾기 모임)이란 단체를 함께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자나 문화예술 노동자 조직화 문제를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작은 사업장 조직화가 굉장히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 철폐연대 활동 자체가 싸움이 잘 안 나는 곳에 싸움을 일으키는? 
"네, 네, 맞아요. 싸움 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웃음)."

"2006년, 이게 기본값이 되어 버렸어요"
 
"기간제 고용이 법제화됨으로써 사용자는 마음놓고 기간제(계약직)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10년 후에는 정규직이 거의 사라질 것임... (중략) 2년 이내의 계약직은 우리 사회에서 상징적이고 정상적인 고용 형태가 될 것임." (2006년 2월 28일, 민주노총 보도자료, 비정규법안의 문제점과 총파업의 정당성 중에)

김 공동대표는 "2006년 비정규직법 투쟁이 저희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싸움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비정규직법이 개악되잖아요. 그 전까지는 '아니, 어떻게 이런 고용형태가 있을 수 있지? 나쁜 거 아냐?'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게 딱 제도화되면서 기본값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은 청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갈 수 있다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아예 전제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2003년, 2004년만 해도, 비정규직이란 단어 자체가 굉장히 낯선 거였거든요. 누가 비정규직 취업을 기본값으로 생각했겠어요?"

'기본값'은 무섭다. 자동으로 적용되고 또 그럼으로써 마땅히 그런 것으로 여긴다. 없는 싸움을 만들고, 또 그런 싸움을 계속 새로 시작해도 기본값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김 공동대표는 "비정규직 단위 조직은 크지만 전체 노조 조직률은 2% 밖에 안 될 정도로 더딘 상황이다, 더 많은 조직화가 필요하다"면서 "비정규직 권리를 악화시키는 사회적 조건들, '죽음의 외주화' 등에 대해 공동투쟁체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연대 의지를 표명한 것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 그렇게 보면 생명안전시민넷과 '철폐연대'가 통하는 지점 또한 분명하죠.
"그럼요. 비정규직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가 생명 안전이거든요. 1년에 2400여명이 산재나 직업병으로 죽는다고 하죠, 공식 통계만으로요. 아예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사망자, 실제로 많습니다. 그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고요."

- 지난 20년 동안 4만8천여 명이 죽어갔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죠, 최소한..."

- 이천물류창고 참사 당시 '왜'라고 질문해서 구조적 원인이 드러나게 해야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진다고 하셨는데요. 
"제일 큰 구조적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죠. 위험한 업무를 외주에 맡긴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럼 정규직이 죽거나 다치던 걸 비정규직이 죽거나 다치게 되는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죠.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 같은 경우에도, 똑같은 업무를 도시철도공사 정규직이 했거든요? 정규직은 안 죽어도 비정규직은 죽어요. 정규직은 2인 1조 작업이죠. 비정규직은 그게 안 돼요. 정규직은 선로 작업할 때 열차를 멈출 권한이 있어요. 비정규직은 못 멈춰요, 권한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위험해진다는 거죠. 위험이 외주화되는 순간,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게 될 수 있는 겁니다."

2020년... 맨몸뚱이로 죽어간다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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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그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터뷰 전날(6일) 고 김용균씨 어머니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용균이 사고 소식을 듣고 울부짖으며 보낸 지 1년 7개월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누구도 재판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김 공동대표는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산업재해를 과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실을 과실로 보느냐, 범죄로 보느냐는 굉장히 달라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쟁점이 많이 됐던 문제는 재판부도 부담이 돼요. 잠잠해질 때까지 대부분 시간을 질질 끌죠. 그리고 모두의 관심이 잊혀질 때쯤, 일부는 무혐의, 일부는 벌금, 일부는 집행유예, 이런 식으로 처리돼 왔어요. 핵심은 결국 이걸 범죄로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거죠. 김용균씨 사건마저도 이런데 다른 경우는 오죽하겠어요."

- 원청이 진짜 처벌받는 사례를 남겨야 한다고 강조하셨었는데요.
"사람이 죽었는데, 이윤활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산물? 그런 정도로 취급해요. 기술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사고 아니잖아요. 안전장치만 제대로 해도 살 수 있던 사람이, 그걸 안 해서 죽으면 범죄인 거잖아요. 산업안전보건법도 기본적으로 최고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기 어려워요. 법 개정으로 원청 책임이 어느 정도 확대되긴 했지만, (원청 책임자에 대한) 처벌 하한선이 여전히 없잖아요. 기업 자체가 엄청난 벌금을 물거나 그런 것도 아니죠. 노동자 40명이 사망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 벌금 2000만 원 나온 것도 그래서구요. 기업 이윤도 침해 안 돼, 최고 책임자도 처벌 안 받아, 말단 관리자만 (감옥에) 들어갔다가 집행유예로 나와, 그러니까 누가 이걸 지키겠냐는 거예요. 안 지키는 게 훨씬 이윤이 많이 남는데."

- 노동자의 죽음이 알려지면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사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하면 어떻게 사장을 해?', 이런 반응들도 나오는 게 현실인데요.
"독일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한국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가 제일 많다는 얘기를 독일 분들은 이해 못 하더라고요. '왜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요?' 이런 반응이었어요. 거기는 사람이 떨어질 만한 곳이 별로 없어요. 다 잘 막혀 있고, 안전 장치 다 돼 있으니까, 추락사가 잘 상상이 안 되는 거죠. 건설 현장은 원래 위험하다? 그런 거 없다는 거예요. 원래 위험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인식이 필요해요. 안전조치, 보건조치, 하면 돼요. 하면 안 죽는다는 거예요. 하면 되는 걸 안 해서 죽은 거다, 이걸 명확히 해야 한다는 거죠."

- 2040년이 지금과 다르려면 당장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지금 당장은 처벌을 제대로 해야죠.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에요. 저희도 동의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는 이유 중 하나는, 제대로 처벌 안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건 분명하다는 거죠. 노동자가 죽으면 회사도 망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질 만큼 강한 처벌이 필요한 때라고 봐요. 최고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법제화가 그래서 중요해요. '임의로 그 책임을 하위 관리자에게 위임할 수 없다'고 정확하게 규정해야 그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겠죠.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계속 강조하는 겁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바꿔보자는 거예요. 올해 하반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 입법 청원 운동을 할 겁니다. 이건 꼭 써주세요."
 
"'비정규직'은 우리의 현재 모습이자,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 살아서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가 '경쟁력'이나 '유연화-비정규직화'라는 무소불위의 이데올로기 앞아서 무력화되도록 내버려둘 때, 바로 내가 그렇게 억울하고 불공평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생명에 대한 무례를 더 이상 용납하면 안 된다." (김혜진, 2004년 7월 18일자 한겨레)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가 올해 4월에 발행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0호를 들어보이며 비정규직 운동에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공동대표는 산업재해와 재난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에 제대로 된 책임을 묻을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에 함께 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가 올해 4월에 발행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0호를 들어보이며 비정규직 운동에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공동대표는 산업재해와 재난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에 제대로 된 책임을 묻을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에 함께 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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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비정규직, #산재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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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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