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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고, 이후 오늘의작가상(민음사)과 젊은작가상(문학동네)을 받은 김초엽의 첫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불황에도 불구하고 2019년 6월 출간이후 1년 만에 17쇄를 찍고 판매량 10만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
▲ 표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
ⓒ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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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는 우주탐사, 인간배아 디자인, 외계생명체와의 조우, 뇌 마인드 도서관 등 다양한 주제의 중단편 7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SF를 소재로 뛰어난 상상력을 펼침과 동시에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 소외, 고통과 같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에도 깊이 천착하고 있다.
 
1993년생,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놀랍게도 작품들은 매우 수준이 높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라며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롭겠지만 또 많이 행복할 거야
 
그녀는 얼굴에 흉측한 얼룩을 가지고 태어나도, 질병이 있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를 찾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세계를 나에게, 그녀 자신의 분신에게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가운데, 본문 49쪽
 
장애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갈등과 고통, 불행이 상상 속의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어떨까?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상향과 같은 곳이 있다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그 곳의 삶에 만족하며 살까?
 
소설 속에서 릴리 다우드나가 창조한 마을은 그런 곳이었다. 그 곳에서는 장애도 없고, 고통도 없고, 차별도 없다. 우리는 흔히 불완전함보다는 완전함을, 장애보다는 비장애를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 김초엽은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통해 그런 이분법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유토피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는 듯하다.
 
소설 속의 화자인 데이지는 질문한다.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 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 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라고.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장애가 없는 완전함으로만 이루어진 유토피아는 아닐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인아영은 책의 해설에서 진정한 유토피아란 오히려 장애와 더불어 차별을, 사랑과 더불어 배제를, 완벽함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붙잡고 고민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이라는 것이다.
 
엄마를 이해해요
 
사람들은 추모를 위해 도서관을 찾아온다. 추모의 공간은 점점 죽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장소로 변해왔다. 도시 외곽의 거대한 면적을 차지했던 추모 공원에서, 캐비닛에 유골함을 수납한 봉안당으로,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도서관을 드나드는 이들 중에 헌화하기 위해 꽃을 가져오는 사람은 없다. 대신 도서관에서는 마인드에게 건넬 수 있는 데이터를 판다. 꽃이나 음식,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물건들을 모방하는 데이터 조각들이다. - '관내분실' 가운데, 본문 223쪽
 
'관내분실'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매우 색다르다. 종이책이 사라진 후 도서관은 이미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죽기 전의 영혼 즉, 마인드를 데이터로 기록하여 보관하는 장소로 도서관이 변화되었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군가 죽고 난 후 그가 그리울 때 묘지나 봉안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간다. 마인드 접속기를 통해 망자의 영혼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죽은 엄마의 마인드를 찾아 도서관에 간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가 분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른바 관내분실이다.
 
엄마의 우울증으로 엄마와 사는 동안 사이가 극히 나빴던 지민은 관내분실 된 엄마의 마인드를 찾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임신 8주차에 접어든 지민이 모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무감정에 대해 생각하며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결혼과 임신, 육아의 과정을 겪으며 여성이 어떻게 세상에서 단절되어 가는지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영혼과 조우한 지민은 엄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이제... 엄마를 이해해요"라고.
 
김초엽의 소설들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상상력에 마음이 끌리고 등장인물 각자의 서사적 이야기가 차분하게 마음에 얹힌다. 그래서 차별과 억압, 소외를 이야기하면서도 어둡거나 답답하지 않고 먼 미래가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미래에도 인류는 지금처럼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 소외, 고통 등이 여전할지, 웜홀을 통해 우주의 건너편을 여행하는 그 미래에도 경제적 효율성이 100년의 그리움을 잠식해버리는 쓸쓸한 무정함이 여전할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눈을 들어 밤하늘을 보니 문득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년이 걸린다는 슬렌포니아를 향해가는 작은 셔틀 안에서 안나가 미소지으며 손을 흔드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펴냄, 2019년 6월 24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호크니 리커버 에디션)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은이), 허블(2019)


태그:#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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