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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은 기분이 가라앉는다. 또 한 가지,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 온다. 며칠 전부터 내가 사는 군산에 코로나 확진자가 2명 발생했다는 문자가 거듭 오고 있다. 부천에 거주하는 코로나 확진자가 군산을 다녀가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시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의사항을 문자로 보내 온다. 군산은 청정 지역이라고 나름 안심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확진자가 나오게 되었다는 소식에 염려하고 긴장들을 하게 된다.

코로나19(이하 코로나)로 멈추었던 일상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도서관 출입도, 각종 모임도 오늘부터 잠정적으로 중단된다는 문자가 왔다. 한길문고에서 하는 '엉덩이로 책 읽기' 수업마저 멈추게 됐다. 이제는 끝이 보이나 기다렸던 코로나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지구촌을 긴장시키고 멈출 줄을 모른다. 참 반갑지 않은 일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해진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에 직격탄을 맞았다. 아직도 사위는 중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말은 안 하지만 소리 없이 잘 견뎌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외국인 입국을 막고, 중국에 들어가도 경로가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한다.

위로받기 위해 떠나다
   
청운사 하소 백련지 연꽃 밭
▲ 청운사 하소 백련지 연꽃 청운사 하소 백련지 연꽃 밭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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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비 오네, 우리 김제 청운사 연꽃이나 보고 올까요?"

딸도 마음이 울적하나 보다. 삶이 힘들면 우리 모두는 때때로 위로받고 싶어 한다.

딸과 사위와 함께 청운사 하소 백련지 연꽃을 보려고 빗속을 뚫고 이른 아침 김제를 향해 달렸다. 비기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운치가 있어 나름 좋다. 차 속에서 듣는 빗소리가 한층 운치를 더해 준다. 한동안 도심 속 소란함 속에 살다가 시골길을 찬찬히 바라보는 풍경 또한 정겹다. 벼는 어느결에 땅 맛을 알고 녹색으로 싱그럽게 자라고, 밭 역시 고추며 참깨며 비를 맞아서 그런지 싱그럽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 우리의 생명의 먹거리들이다.
       
자귀나무 에 매달린 빗방울
▲ 자귀나무 꽃 자귀나무 에 매달린 빗방울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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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벗어나니 금방 김제 청운사 하소 백련지가 나오고, 빗소리 만이 우리를 맞이할 뿐 아무도 없다. 절에 들어가기 전 저수지에는 연꽃들이 많이도 피어있다. 초록의 연잎들이 무수하게 비를 맞으며 합창을 하는 듯하다. 연잎은 비를 받아들이지 않고 빗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마치 방수를 해 놓은 듯 매끈한 모습이다. 비를 맞고 있는 연밭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연꽃은 많은 의미를 가진 꽃이다.

코로나 희생자를 추모하다
    
추모제 지내며 세계의 국기를 달았다
▲ 절마당에 만국기 추모제 지내며 세계의 국기를 달았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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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을 들어서니 '지구촌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제'라는 플래카드와 만국기가 걸려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생경한 일이다. 한국의 종교인 사찰에서 지구촌 코로나 희생자의 추모를 하고, 명치끝을 한 대 맞은 듯 충격이 온다. 누구의 제안이었는지는 몰라도 좋은 생각인 듯하다. 코로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가, 인류의 비극이다.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절 입구에서 팸플릿을 가져와 읽어 보았다. 추모제에서 낭독했던 추모의 글에 감동을 받아 옮겨 본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오늘 여기
청하산 아래 청운사에서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귀를 만나
천추의 한을 품고 불귀의 객이 되신 지구촌의 영가들을 위로하고 자
방방곡곡 마음 고운 벗님네들 한자리 모였습니다.
위로의 노래와. 춤과 그림으로 마음 하나로 묶어서
먼저 떠난 지구촌 가족들을 애도합니다.
백 년을 살아도 서럽고 아쉬운 삶 먼저 먼 길을 떠난 이들을 그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차마 떨칠 수 없는 삶의 아쉬움
남기고 떠난 영가들에게
하얀 연꽃잎 너울거리는
이 향기를 보내드리오니
이 향기에 영가들을 품어주소서, 풍어 주소서
영가들이시여
지금 이 자리에 그대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대들의 조국,
그 조국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그대들이 불렀던 국가의 소리가 울리고 있습니다.
이제 역귀들이 범할 수 없는 안식처에서 안식을 취하고서, 평안을 누리소서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이제 남은 자들이 가슴 아리도록 사랑했던 마음
잊을 수 없이 가슴에 묻고, 애통하며 살아야 할 남은 자들을 위로하소서
영원한 그리움과 영원한 기다림으로 살아야 할 이들을 위로하소서
2020년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봄, 여름 그리고 아직도 이어지는 슬픔의 나날들을
거두어 주소서, 벗겨주소서

- 2020년 7월, 나종우



추모의 글을 읽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항상 마음 안에 생각하는 일들이었다. 정말로 예기치도 못한 코로나라는 감염병으로 사라져간 영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어두웠다. 누구나 인생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스러져간 사람들,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도 나누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그분들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이곳 김제 청운사에 와서 의미 있고 큰마음으로 추모제를 보고 마음에 울림을 받았다. 추모글에 감동 했다. 나는 가끔 코로나로 허망하게 생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표현은 다 못해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청운사에 와서 추모의 글을 보고 공감을 하고 내 마음 한 자락도 코로나로 희생된 분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 본다.


 
청운사 대웅전이 멀리 보인다
▲ 청운사 대웅전 청운사 대웅전이 멀리 보인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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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여기저기 한 바퀴 돌아보며 한적함을 느껴본다. 사진도 찍고, 비가 오는 날이라서 마당도 촉촉하고 조용해서 좋다.

절 마당은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고 고요만이 머문다. 이곳이 사람이 머무는 공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적막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서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 마음이 평온을 얻는다. 그 소리 속에는 많은 언어가 숨어 있는 듯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오늘 우리는 청운사 에 와서 연꽃도 보고 코로나 생을 달리한 영혼들에 명복도 빌고, 빗소리를 듣고 원초의 나를 만나고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청운사, #코로나19희생자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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