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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내가 찍은 우리 중학교 사진.
 내가 찍은 우리 중학교 사진.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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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에서 퇴임 영상을 찍겠다고 사전 질문지를 가지고 왔다. 8월이 퇴임이라 두 달이나 남았지만 방학이 있어 미리 한다고 했다. 출근하듯 퇴임하고 싶었기에 교감 선생님과 상조회 담당 선생님께 퇴임을 위한 준비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작은 퇴임식이라고도 굳이 이름 붙이지 말고 교직원 회의 때 잠깐 작별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패도 안 받겠다고 하고 꽃다발 하나만 안겨달라고 했다.

그랬기에 학생회 퇴임 영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학교에서 교장과 학생 사이가 그리 각별한 것도 아니고 어린 중학생들이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함께 했던 교장 선생님에 대해 얼마나 애틋하랴 해서 학생회 담당 교사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다시 찾아온 담당 교사는 오히려 나를 설득했다.

지난해 종업식을 학생회에서 자치적으로 진행하게 했다. 처음 시도하는 행사라 교사들은 우려했으나 나는 우리가 기대치를 낮추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기다리자고 했는데 학생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 해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대부분의 학사 일정이 취소되고 학년별 등교가 이루어지기에 종업식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담임 시간으로 채우려 했다. 그런데 학생회에서는 이 어수선함 속에서도 종업식은 자기네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생회 단톡방에서 종업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교장 선생님 퇴임을 꼭 넣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학생회 의견을 전하면서 담당 교사 역시 교장 퇴임이 어쩌면 의례적인 행사일지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자 했고 이런 과정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엄마의 퇴임을 축하해줘

문득 아주 오래전 <사랑의 학교> 페르보니 선생님을 보면서 꼭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50여 년이 지나 퇴임을 앞두고 지난주 다시 페르보니 선생님을 만났다.

"전입생 이 친구가 낯선 곳에 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너희들이 따뜻하게 대해 주거라.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것을 너희가 보여 주길 바란다. 이 친구가 태어난 곳은 훌륭한 위인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란다. 

지금도 힘센 노동자와 용감한 군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 아름다운 고장이야. 이것을 위해 우리나라는 50년 동안이나 싸움을 해 왔고 3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너희들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만약 같은 고장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는 이탈리아 국기를 바라볼 자격도 없어.

귀족 아들인 노비스가 석탄 장수 아들 베티에게 너희 아버지는 거지라고 놀렸을 때 노비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라고 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오늘 본 것을 잘 기억해 두어라. 이것이 올해의 가장 멋진 공부일 테니까.""


지금도 생생한 이 일화들을 보면서 교사로서 지내온 39년 6개월의 시간을 페르보니 선생님의 1년과 대비 시켜 겹치는 부분을 찾아보았다. 의외로 교집합은 아니지만 <사랑의 학교> 아이들 지도에는 항상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됐다. 교장의 역할에 대해 퇴임을 앞두고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 나는 왜 매사 이렇게 늦는 거지?
 
책 읽는 모습.
 책 읽는 모습.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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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어 특별한 조례시간을 운영한 것도 페르보니 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매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당시 이탈리아에 필요한 애국심과 우정, 사랑, 존경 등의 가치를 가르쳤다.

흉내 내고자 나도 열심히 신문을 읽고 주제를 뽑아 조례시간에 풀었다. 면 소재지 학교라 신문을 구독하는 가정이 거의 없어 나의 주제는 항상 신선하게 다가갔다. 그만큼 아이들한테는 괜찮은 교사로 잘난 척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나라 대통령이 사는 곳을 물었다. 몇 명이 칠판에 썼다. '청아대' '청화대' '백아꽌' '세종문화회관' '...'. 명색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2 인문과 여학생들이었다. 아이들도 당황했고 머쓱해 했다. 나도 그랬고 아이들도 공부라는 걸 그렇게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신문 기사는 모두 진실만을 이야기한다고 믿었다. 대학가 대자보의 5.18 사진을 보면서도 대학생들이 교묘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 순진한 20대 교사였다. 결국 페르보니 선생님 흉내만 냈던 것이다. 흉내는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었다.

학생회가 준 질문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아직 퇴임에 대해 깊이 아니 생각조차 안했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퇴임 후 뭐하실 거여요?"였다. 생각조차 안 했기에 선뜻 답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어른도 있고 쩔쩔매는 내가 안쓰러운지 "무슨 계획이 필요해요? 그냥 쉬는 거지" 하고 대신 대답해주는 어른도 있었다.

지난 긴 시간. 학교는 나의 전부였고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를 것이다. 한빛이 없는 2020년 8월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그 8월이 오고 있다.

한빛아, 네가 있었다면 "수고하셨어요. 이제 엄마는 자유인이에요"하고 꽃다발을 주었겠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유까지 이야기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한빛은 엄마가 퇴임 후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나를 참 많이 이해하려고 했고 격려했던 아들이니까.

그런데 한빛아, 엄마에게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아, 이제는 마음껏 울 수 있겠구나' 이거 한 가지였어. 사랑하는 나의 아들 너를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내 마음대로 만나고 싶었어. 만나서 반갑거나 너무 보고 싶어 그리울 때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울고 싶었어. 

이것이 퇴임을 기다린 간절한 이유였고 다른 계획은 아무것도 생각해보지 않았어. 중요하지 않았거든. 지금껏 그러질 못했어. 그래서 몰래 울면서 너한테 많이 미안했어.

한빛아 비록 너 없이 퇴임하지만 엄마는 슬퍼하지 않을게. 엄마 자신을 믿을게. 이제는 너를 매일 만날 수 있고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거니까. 엄마가 약속했듯 너를 부활 시켜 같이 살아갈 거니까.

그러니까 한빛아. 너도 엄마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것을 많이 기뻐해 줘. 그리고 엄마 퇴임을 축하해줘. 고마워.

[다음 기사] 너는 늘 내 가슴에 있으니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네 http://omn.kr/1occt​​​​​​​
[관련 기사] 고 이한빛 PD의 엄마입니다 http://omn.kr/1kn3b

덧붙이는 글 | '새 이름을 갖고 싶어'는 가수 '시와'의 4집 노래 제목입니다.


태그:#퇴임, #새 이름을 갖고 싶어, #사랑의 학교,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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