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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닙니다 (1) 골목식당이 위기를 겪는 진짜 원인 http://omn.kr/1o3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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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할 도전이 사라진다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중략)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장강명 <표백> 중)


올해 26세로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최유경(가명)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녹록지 않음을 경험하고 정부의 단기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 졸업 직후 공기업 입사를 준비했지만 마땅히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고, 독학으로 준비하기에는 어려운 관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사기업 취직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그 역시 난관에 봉착했다. '경력 같은 신입'이라는 말이 한때 풍자로 떠돌기도 했었던 만큼, 어지간한 스펙으로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중소기업이라도 너무 규모가 작지 않으면 괜찮다"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고 했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들,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 자기소개서를 채우는 일이 어렵다고 느낀다.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껴요. 입사 지원할 곳에 맞는 경험을 쌓고 이와 관련된 내 장점을 말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기회를 얻기가 힘든 것 같아요. 정규직을 구하지 못하면 계약직 일자리라도 찾게 되잖아요. 막상 그 경험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계약직을 하게 되고, 기업에서 원하는 일관된 경력이 쌓이지 않는 것 같아요." 

대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를 지렛대 삼아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 모집으로 전환하면서 경력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장을 도입하길 원한다. 보다 효율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쓰고자 하는 기업들의 이 같은 전략은 실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가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일 경험이 일천한 젊은이들은 일단 취업하려고 애를 쓰지만 중소기업조차 경력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팽배하고 그렇지 않으면 경력으로 인정받기 힘든 계약직이거나 '인턴' 혹은 '수습'을 빌미로 터무니없는 연봉과 복지를 제시한다.

"젊은 청년들이 기약 없는 레이스에 매달리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 현실 탓이다. 2015년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42%에 불과했다. 게다가 2015년 취업에 성공한 이들 가운데 약 3분의 2가 비정규직이다." (KBS <명견만리> 제작팀, <명견만리> 중에서) 

2020년 현재의 청년 고용률은 40%로 5년 전보다 더 떨어졌다. 비정규직 비율 역시 여전하다. 게다가 경력 위주로 변화한 채용 시장에서 청년들은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하지만 그런 경험조차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나마 수도권에 있는 청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체험이나마 할 수 있지만,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아예 그런 기회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최씨 역시 "울산에서는 일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며 그런 이유로 기회가 많은 타지로 떠나고 싶다고 했다.

배울 수도 일할 수도 없는 청년들, 시험에 몰리다
KBS '9시 뉴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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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수도권 집중 현상이나 청년들의 폭발적인 고시 경쟁이 쉬이 납득이 된다. 울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26세 김찬우(가명)씨는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채의 문도 좁아지고 입사하더라도 회사 분위기 때문에 관두는 경우도 있다"라며 자신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확답을 얻을 수 없는 비정형적인 채용 시장에 맞추기보다는 정답이 확실한 공무원 시험은 젊은 청년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것은 청년들이 결코 수동적이거나 나태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경력'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인터뷰에 응한 두 취업준비생 역시 현재 가장 필요한 대책으로 "정보의 부족"을 꼽았다. 최씨는 "인터넷 카페나 채용 포털에서 간간히 정보를 얻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되고, 실제로 지원해보면 내가 준비하던 것과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무엇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현재의 청년 취업 정책은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 역시 "취업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원하는 곳에 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상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창구와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안내소에 있는 지도는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정보가 많다. 얼마간은 그런 지도를 그리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간판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정확한 지도 제작과 보급을 반대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장강명, <합격, 당선, 계급> 중에서)

현대자동차가 채용 과정에 역사 에세이를 도입했다가 그조차도 사교육을 불러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폐지한 것처럼, 실제로 채용 시장의 정보는 '통제'되고 사교육이 횡행한다. 노골적인 청탁은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어떤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족집게식으로 비싼 돈을 받고 가이드해주는 일은 현시대에서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안내소에 비치된 지도"는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게 많다. 공공데이터에 접근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그리고 유익한 정보를 교류할 만한 같은 청년들도 서로가 경쟁자인 만큼 '끼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다.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도 정보가 기회가 통제된 환경에서 평범한 청년들이 취할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자 한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지도부터 챙겨줄 일이다.

일자리가 없다
 
고뇌하는 남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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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도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한정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양질의 일자리로 평가받는 일자리의 채용 규모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을 합해 대략 3만 6천 명이 채용될 예정이다. 

또한 공공기관은 약 1만 1천 명이 채용될 예정이며, 2018년 기준 20대 대기업의 채용 규모는 약 3만 명, 같은 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571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견기업 등은 3천 명가량의 신규 직원을 뽑았다.

자료의 범주를 벗어난 오차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는 넉넉잡아도 10만 명에게만 돌아간다. 그나마도 정부가 공공인재 채용을 대폭 늘려 나온 숫자다. 경기가 계속해서 좋지 않으면 그 숫자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청년 실업자는 4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니트족이나 임시직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이들이 취업 경쟁에 내몰려있다고 봐야 한다.

시간은 멈춰있지 않다. 매년 수십만 명의 고졸자, 대졸자가 쏟아지고, 이들도 취업 레이스에 합류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매년 수백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10만 개의 일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급한 대로 취업'한 이들까지 합하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이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을지는 감도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좋은 일자리는 정녕 없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지만, 2020년 기준 대기업의 매출은 국내총생산의 84%에 육박한다. 10%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에 재물의 85%가 있는 셈이다. 반면 90%의 사람들은 남은 15%를 나눠 먹는다. 이런 형편에서는 무작정 중소기업을 닦달해 청년들에게 대기업 수준의 복지와 임금을 지급하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청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왼쪽부터 이채원(29), 김찬우(26), 최유경(26) 씨
 왼쪽부터 이채원(29), 김찬우(26), 최유경(26) 씨
ⓒ 황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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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한국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던 짐 로저스가 한국 청년들의 공무원 열풍을 보고 "대단히 충격적인 현상이며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이라고 탄식한 것은 그냥 흘려듣기엔 뼈아픈 지적이다.

당장의 취업 환경을 보고 있기는 하나, 궁극적으로는 젊은이들이 모여 무엇을 하든지 생업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은 개척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대해서 그것이 정녕 옳은지 근본부터 되물어볼 차례다.

6년간 대형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관둔 29세 이채원(가명)씨는 일하느라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고 배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수술실 특수 파트를 전담하던 그녀는 비록 수입은 간호사로 근무하던 예전만 못하지만 새로 시작한 플로리스트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자신이 새로 개척한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저는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더 이상 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고 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돌아보다 보니 번아웃이 왔어요. 나중에 남편의 격려를 받아 일을 관두고 새로운 걸 배웠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왜 계속 병원 일에 얽매여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결국 내가 쓰는 비용은 정해져 있고,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기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일로 해보고 싶은 거죠. (수입이 없더라도 계속할 생각인지?) 저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삶에 만족하고 있고 적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진 않아요."


안정적인 직장과 분명한 사회적 위치를 가졌지만 관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씨 같은 사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취업과 생계유지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이 언급되는 사회 속에서 이런 청년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직업을 구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돈과 안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건이 불확실한데도 이럴진대, 뒷받침이 충분하다면 청년들은 굳이 어려운 채용 시장을 두드리지 않아도 자신만의 길을 갈고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장강명, <합격, 당선, 계급> 중에서)

사실 청년들이 무작정 높은 연봉 혹은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게 아니다. 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더라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단 잘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고 대답했던 취업준비생 최씨와 김씨 역시 생활의 안정이 해결될 수 있다면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다던 김씨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학 지식으로 타인을 구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는 최씨는 생물 전문 다큐멘터리 PD가 되어보고 싶다고도 한다. 줄곧 어두운 안색으로 취업 이야기를 하던 그들의 눈도 꿈 이야기에서는 번뜩였다. 다만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두려움, 실패해 생활의 안정을 잃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마 내딛지 못하겠다고 끝내 말을 흐렸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직업상담사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의미로 꿈을 현실로 이루는 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청년 코치'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청년들이 이미 원하듯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선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동원해야 하는지 알려줄 상시적인 창구다. 

좋은 이야기로 점철된 강연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식당일을 배우려는 이에게 설거지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과도 같다. 이는 청년들의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과 잘 맞지 않는 꿈을 꾸는 청년들에겐 현실을 지각시키고 새로운 재능을 발굴케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고 나서 이제 청년들이 자신의 도전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그들이 기회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연구성과나 활동업적에 따라 안정적인 소득이 발생하기 전까지 국가가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준채용' 방식의 청년 지원책은 무리하게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같은 소요 재원으로 더 많은 혜택을 나누면서 장기적으로는 국가에 역동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며,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나은 해답이 있을 수 있기에 이 역시도 활발한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청년, #청년실업, #청년문제, #청년취업, #청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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