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은 사연이 얽힌 인물들이 유독 많이 마주서야하는 더비 매치였다. 새들의 지략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양 감독들의 별명이 마침 독수리고 황새다. 그들은 한 때 한국 축구를 맨 앞에서 이끌었던 멋진 골잡이들이었다.

지난 해 우리 축구팬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던 U-20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들이 셋(조영욱, 이지솔, 김세윤)이나 모여 양보 없는 다툼을 펼쳐야 했기에 더 치열한 게임이었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이 이끌고 있는 FC 서울이 15일(수) 오후 7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FA(축구협회)컵 4라운드(16강) 대전하나시티즌과의 어웨이 게임을 연장전까지 1-1로 끝낸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8강에 올랐다.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묘한' 만남

홈 팀 대전하나시티즌을 이끌며 야심차게 K리그 2를 딛고 1부리그를 노리는 '황새' 황선홍 감독이 오랜만에 자기가 지휘하던 FC 서울을 만났다. 그래서 이 게임을 황선홍 더비 매치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때 잘 나가던 FC 서울이 지금은 1부리그 하위권(10위)에 맴돌고 있기 때문에 현재 2부리그 2위에 올라 있는 대전하나시티즌으로서는 이 게임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대전은 게임 시작 후 3분만에 공격형 미드필더 김세윤이 좋은 위치에서 직접 프리킥 기회를 얻어냈고 페널티 구역 반원 바로 밖에서 바이오가 위력적인 오른발 감아차기를 성공시키며 달아났다. 

이 귀중한 프리킥을 얻어낸 대전 미드필더 김세윤은 동료 수비수 이지솔과 함께 상대 팀 FC 서울 공격수로 뛴 조영욱을 상대하는 묘한 대결을 펼쳐야 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 해 정정용(서울이랜드FC) 감독이 이끄는 U-20 FIFA 월드컵 준우승 영광의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대전 김세윤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듯 FC 서울 공격수 조영욱은 그 어느 게임보다 더 활발한 몸놀림을 자랑하면서 날카로운 공격 기회를 만들어냈다. 조영욱이 전반전에 다이빙 헤더로 동점골을 노렸는데 그만 대전 골문 오른쪽 기둥 하단에 맞고 나왔다. 후반전에 더 집중력을 발휘한 조영욱은 결정적인 동점골 기회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74분에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활약을 펼친 것이다.

승부차기 스코어 4-2로 FC 서울 승리

윙백 김진야의 전진 패스를 받아 대전 페널티 구역 안으로 파고들던 조영욱이 하필이면 대전 수비수 이지솔의 몸싸움에 밀려 넘어졌다. 김우성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렸고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이지솔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정당한 어깨 싸움을 걸었다고 주장했지만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는 FA컵 4라운드 규정 앞에 멈춰야 했다.

이 때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페널티 키커는 후반전 교체 선수 박주영이었다. 그런데 공을 향해 달려든 박주영의 디딤발(왼발)이 미끄러지며 자빠지는 바람에 허무하게도 공은 크로스바 위를 높이 넘어 날아가버렸다. 이 게임 결과로 볼 때 박주영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대전발 롤러 코스터에 탑승한 셈이다.

그가 탄 롤러 코스터는 7분 뒤 평정심을 회복하는 코스에 접어들었다. 82분에 박주영의 명예를 회복하는 천금의 동점골이 터진 것이다. 왼쪽 측면에서 고광민이 날카롭게 올린 크로스를 향해 달려든 박주영이 정확한 헤더 슛으로 연결시켜 대전 골문을 갈랐다.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완만한 곡선 구간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한숨 돌린 박주영과 FC 서울 동료들은 2분 뒤 조금 더 아찔한 롤러 코스터로 옮겨 탔다. 수비수 김남춘이 대전 안드레의 역습을 막다가 두 번째 노란 딱지를 받고 퇴장당한 것이다. 박주영 혼자 탔던 롤러 코스터에 다른 선수들 10명이 강제로 탑승한 꼴이 되고 말았다. 

대회 규정상 연장전이 이어졌고 그 후반전에 FC 서울 선수들이 단체로 탄 롤러 코스터가 크게 두 차례나 요동쳤다. 연장전에 교체로 들어온 대전의 최재현이 110분에 상대 골문 앞에서 결승골 기회를 잡고 회심의 슛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골문을 지키는 유상훈 골키퍼가 침착하게 중심을 낮추며 슈퍼 세이브로 롤러 코스터를 함께 탄 동료들을 구했다. 그로부터 7분 뒤에도 대전의 후반전 교체 선수 정희웅이 절묘한 왼발 슛으로 또 한 번 결승골을 노렸지만 이번에도 유상훈의 침착한 쳐내기 동작이 빛났다.

연장전도 종료 휘슬이 울리고 롤러 코스터의 종착지인 승부차기역이 눈앞에 보였다. FC 서울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고요한부터 시작했지만 그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대전 골키퍼 김근배가 기막히게 막아냈다. 종착역을 바로 앞에 두고도 이렇게 아찔한 마지막 구간이 또 나타난 것이다. 

대전의 승부차기 첫 키커 박진섭의 오른발 슛도 FC 서울이 자랑하는 승부차기 수호신 유상훈의 슈퍼 세이브에 막혔다. 이 순간 대전 선수들도 그 롤러 코스터에 억지로 동승한 것처럼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전 네 번째 키커 황재훈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까지 골문 왼쪽 기둥을 때리고 말았으니 롤러 코스터 탑승객이 순식간에 모조리 바뀐 셈이었다.

그리고는 이 게임 운명의 주인공 박주영이 다시 그 자리에 공을 내려놓고 섰다. 그는 롤러 코스터의 묘미를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강심장이었다. 75분에 자기가 미끄러져 자빠진 바로 그 곳에 다시 선 박주영은 입을 꾹 다물고 달려들어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멋지게 성공시켰다. 승부차기 스코어 4-2. 

활짝 웃고 두 팔을 높이 치켜들며 만세를 부르는 박주영의 세리머니는 마치 롤러 코스터 장인들이 맨 앞에 타서 두 팔을 높이 치켜드는 퍼포먼스를 흉내낸 듯했다.

이렇게 묘한 더비 매치는 끝났고 어웨이 팀 FC 서울은 대전역을 떠나 7월 29일 열리는 FA컵 8강까지 내달릴 수 있게 됐다. 재미있는 롤러 코스터 티켓 발권 시간은 오는 21일 오후 1시 추첨을 통해 나온다.

2020 FA컵 4라운드(16강) 결과(왼쪽이 홈 팀)

대전 하나시티즌 1-1(승부차기 2-4)
FC 서울 [득점 : 바이오(5분) / 박주영(82분,도움-고광민)]

★ 상주 상무 2-3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 2-0 경주 한수원축구단
★ 수원 FC 0-1
부산 아이파크
★ 제주 유나이티드 0-1 수원 블루윙즈
★ 대구 FC 1-1(승부차기 2-4) 성남 FC
전북 현대 3-2 전남 드래곤즈
★ 광주 FC 2-4
강원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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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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