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신> 스틸컷

영화 <만신>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까운 미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운세 프로그램 '만신'은 높은 적중률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의 운세가 오늘의 운명이 되는 의존증은 늘어만 가고, 만신에 중독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신이 되어버린 인공지능 만신은 어떻게 사람들의 종교가 되었을까.

영화는 정반대 성격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신선한 매력을 준다. 만신을 쓰지 않는 토선호(이연희)와 극적으로 새 삶을 찾은 맹신도 정가람(이동휘)이 만신의 실체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빠른 템포와 화려한 미장센이 돋보인다. 탈색한 머리와 짙은 아이라인, 라이더 재킷을 걸친 반항적인 모습으로 변신한 이연희와 안경을 벗고 콧수염으로 외모 변화를 준 이동휘의 케미가 눈길을 끝다. 

아픔을 공유한 두 사람의 미스터리한 모험

선호는 동생이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 만신 최초 개발자를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만신을 등에 업고 사람들의 두려움을 선동하는 가람을 만난다. 가람은 자살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만신 때문에 의존을 넘어 맹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북극성을 따라가라는 오늘의 운세를 믿고 선호가 귀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신은 만 가지 신이라는 뜻의 운세 서비스다. 빅데이터를 통해 딥러닝 후 거듭된 업그레이드로 오차 범위를 줄여나갔다. 높은 적중률 때문에 예상이 곧 예언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종교가 되어버린 만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오늘의 운세가 나쁘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오늘의 운세가 좋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진다. 과학이 발전한 세상에 결정된 운을 믿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다.

미신을 믿는다는 설정은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 중인 이야기처럼 피부에 와닿는다. 만신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스마트폰을 떠오르게 한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뉴노멀을 만들었고,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보내기란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는 현실이 떠오른다. 모든 생활이 스마트폰과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일상이 익숙하다. 영화 속 만신과 다를 바 없다.
 
 영화 <만신> 스틸컷

영화 <만신>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만신 앱을 깔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정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이다. 오늘의 운세 확인이 되지 않으면 입장불가. 혹시라도 나쁜 운세를 받은 사람이 타인의 삶까지 망가트릴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이는 마스크나 전자출입 체크인 없이는 어디든 들어갈 수 없는 현재 코로나19 시대와 오버랩되며 공감을 끌어올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운명론을 맹신하지만 동생의 죽음을 밝히려는 토선호는 만신을 불신한다. 운명을 취하고 거부하는 것 그 모두가 인간의 선택인데 어떻게 기계가 그 운명을 미리 결정짓는다는 것인가. 하지만 중세 시대 전염병과 기근이 닥치자 종교를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한낱 기계인 만신에 빠지는 이유도 조금은 이해간다. 인간은 무엇엔가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혹여 잘못되더라도 운명 탓으로 돌리며 잊어버리는 게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로운 법이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소수의 오차 범위에 도달하는 데이터는 분명 진리에 가까운 숫자이다. 하지만 인생은 데이터 값으로 계산할 수 있는 수학 공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인공지능' 만신도 모든 것을 아는 신보다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불완전한 인간을 동경하는 듯하다. 영생을 지루해 하며 인간 세상과 얽히고 싶어 했던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처럼. 

삶이 아름다운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끝이 있기에 삶이 가치 있는 것이며 살아갈 원동력이 생기는 거다.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만신은 그런 인간을 알고 싶어 했을 것이다. 과연 미래를 알면 현재 삶이 행복해질까?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만신의 메시지를 주목할 만하다.

영화, 방송, OTT 합작 콘텐츠
 
 영화 <만신> 스틸컷

영화 <만신>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만신>은 노덕 감독과 이연희, 이동휘가 만나 만든 색다른 SF 버디무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릭터의 상황이 역전되며 미스터리함을 더한다. 또한 근미래 운명론을 이야기하는 레트로 SF장르물로, 현실성과 복고적인 분위기를 매칭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만신> 등 8명의 감독들이 모여 만든 시네마틱 드라마 8편 'SF8'은 제작비에 부딪혀 한국에서 잘 시도되지 않는 SF 장르를 향한 여덟 감독의 해석이 돋보인다. 또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 참신하게 담아내 주목된다. 

제24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만신>은 7월 10일부터 OTT 서비스 웨이브 스트리밍, 오는 8월 17일 MBC를 통해 방영된다. 아쉽게 영화제에서 놓친 관객들은 OTT 서비스나 TV 방영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안방에서 퀄리티 높은 TV용 SF 영화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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