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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을 도와 온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을 도와 온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시민들을 상대로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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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활동을 해 온 저마저도 처음엔 근로정신대가 뭔지 잘 몰랐어요.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없을까 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매주 금요일 '미·불·금'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근로정신대 소식을 알려온 SNS 홍보활동이 10일 400회를 맞았다.

'미·불·금'(제1전범기업 미쓰비시, 니콘·기린·아사히맥주 불매운동 전개하는 SNS 금요행동) 활동을 주도해 온 경은아(53·서울)씨가 처음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게 된 것은 2012년 8월경이다. 당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를 맡고 있던 김희용 목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이다.   

'미·불·금' 활동 나서다
  
"페이스북에 근로정신대 얘기가 올라왔어요. 마침 광복절이었고 처음 듣는 얘기라서 궁금했어요. 2년 치 게시물을 들여다보고서야 '아, 이런 게 있었구나' 저도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2016년 7월 6일, 미쓰비시중공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를 두고 2년간 힘겨루기해 오던 교섭이 최종 결렬되고 말았다. (관련 기사: "한국 정부 무관심이 일제 전범기업 도왔다" http://bit.ly/NTPH6R)

오랫동안 피해 할머니들의 일본 소송을 뒷받침해 온 일본 지원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은 미쓰비시와의 교섭 기간 잠정 중단해 왔던 '금요행동'을 2012년 8월 10일부터 재개했다.

"도쿄 금요행동이 다시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죠. 미안한 마음도 있고, 뭔가 힘이 될 일이 없을까 생각했죠. 손가락 놀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라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불·금'(제1전범기업 미쓰비시, 니콘. 기린ㆍ아사히맥주 불매운동 전개하는 SNS 금요행동) 400번째 게시물
 ;미·불·금"(제1전범기업 미쓰비시, 니콘. 기린ㆍ아사히맥주 불매운동 전개하는 SNS 금요행동) 400번째 게시물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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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2년 11월에 첫 게시물 올린 후 어느덧 8년이 지나 '400번째' 게시물을 올렸다.

"사실 도쿄에서 금요행동하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로 따라쟁이 하는 것에 불과해요. 올린 글 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매주 소식 전한다고 어떤 전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어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심정이 들었지만, 꾸준히 하고 싶었어요."

사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워도 무엇을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손가락 놀리는 것에 그치는 것일지라도, 누가 보든 안 보든, 어떤 영향력이 있든 없든 생각하지 않고, 그는 단 한 차례도 소식을 허투루 전하지 않았다.
   
"한번은 늦잠을 자고 놓쳤는데, 어떤 분이 '금요일인데 왜 아직 글이 안 올라왔느냐, 어디 아픈 거냐?'고 전화를 했더라고요. 누군가 금요일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죠. 그때부터 금요일이 다가오면 조금 긴장감도 들어요."
  
일본 여행 당시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못하고 온 사연
   
미약한 힘에 불과하지만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불매운동 전도사 역할을 하다 보니, 주변에 지인들도 차차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몇 년 전 여름, 아는 사람들이랑 일본 여행을 갔어요. 제가 무슨 말한 것도 아닌데 '이분은 기린 맥주 안 마신다고 사 오지 말라'고 해서, 더운 날 시원한 생맥주 한잔 못 하고 왔죠. 호호호"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김성주 할머니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대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2018년 11월 29일.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김성주 할머니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대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2018년 11월 29일.
ⓒ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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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옮기는 일처럼 막막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사이 조금씩 진전도 있었다. 8년 동안 금요일 아침이면 올라온 소식에는 근로정신대 문제가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명암을 같이 해 온 셈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피해 할머니와 함께 대법원 법정에서 승소 판결 소식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중요한 현장을 함께 해 왔다는 보람이랄까.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변화되는 일도 봤고, 광주에는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는데, 덕분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고요."

경은아씨는 그동안 광주고등법원 승소 현장, 대법원 승소 현장을 함께 했고, 2015년에는 할머니들을 모시고 나고야 행사에도 동행한 바 있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열린사회 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단체를 이끌어 왔다. (관련 기사: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항소심도 승소 http://omn.kr/e94g)

"사명감이나 소신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데 70세, 80세 다 된 분들이 금요행동을 이끌어 가는 걸 보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해요. 그 분들이 지금까지 해 올 수 있는 힘이 뭘까 생각해 봤어요. 저도 댓글 한번 달아주고, 좋아요 한번 눌러주는, 함께 손잡고 연대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분들께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요."
  
 나고야에서 피해 할머니들을 초청해 가진 승소 보고대회에 참석해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소송 지원회' 공동대표와 함께 하고 있는 경은아씨. 2015년 10월 18일.
 나고야에서 피해 할머니들을 초청해 가진 승소 보고대회에 참석해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소송 지원회" 공동대표와 함께 하고 있는 경은아씨. 2015년 10월 18일.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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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같은 사연을 언론 보도자료로 제공했습니다. 기사는 보도자료 이외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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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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