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도> 관련 사진.

영화 <반도> 관련 사진. ⓒ 영화사 레드피터

 
재난 이후 폐허가 된 곳에서도 희망은 피어날까. 어쩌면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으로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은 후 <반도>를 내세우면서 가장 치열하게 붙잡았던 질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좀비물이라는 특정 장르를 대중화시킬 때는 그동안 통용되고 공식처럼 여겨졌던 좀비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야겠지만 이를 어떤 이야기와 분위기로 변주할지는 오로지 창작자의 몫이다. 9일 언론에 선공개 된 <반도>는 분명 외향적으로도 <부산행>보다 진일보 한 면이 있었는데 그보다는 대중성과 마니아적 장르를 적절한 메시지에 녹이려 한 감독의 고민이 특징이었다.

<부산행> 사건 이후 4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국가 기능이 마비된 한국은 더이상 국가명이 아닌 지리적 명칭인 반도라고 불리고, 가까스로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홍콩으로 달아난 정석(강동원)이 거부할 수 없는 임무를 안고 다시금 한국을 찾으면서 또 다른 사람들과 사건을 경험한다. 

좀비라는 함정을 피하다
 
 영화 <반도> 관련 사진.

영화 <반도> 관련 사진. ⓒ 영화사 레드피터

  
 영화 <반도> 관련 사진.

영화 <반도> 관련 사진. ⓒ 영화사 레드피터

 
2016년 개봉한 이후 실제로도 4년 만에 속편이 나온 셈인데 코로나 19 유행 사태에서 <반도>를 바라보는 마음이 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벌이는 사투는 곧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라 사람 간 관계의 문제기도 하다. 마스크 미착용으로 다툼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철저하게 격리를 실천해 귀감이 되기도 한다. 생명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건 어쩌면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든, 이기심 충만한 선택이든 결국 인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좀비물은 바로 이런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공포에 기대곤 했다. 성악설, 성선설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우린 재난 재해 상황에서 갖가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꾸준히 봐왔다. <반도> 역시 그렇다. 폐허가 된 한국에서 민정(이정현)을 비롯한 준(이레), 유진(이예원), 김 노인(권해효) 등은 새롭게 가족을 이뤄 서로 보듬었지만, 시민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던 631 부대원들은 약탈과 강도를 일삼는 자들이 됐다. 

<반도>는 정석의 시선으로 시작해 준과 유진, 그리고 민정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홍콩으로 겨우 피신한 정석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다소의 허무함을 품은 채 영화의 초중반을 관통한다.

그를 변화시키는 건 준과 유진, 민정이다. 절망적 상황에서 아이 특유의 천진함을 잃지 않는 준과 유진은 오히려 영화에서 정석보다 더 큰 활약을 보인다. 아이와 여성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가둬두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신체적 능력, 힘은 좀 떨어지더라도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들이다. 이들을 주축으로 펼쳐지는 카체이싱 장면은 <반도>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백미라고 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시력을 잃고 빛과 소리에 민감한 좀비의 특성을 십분 살려 영화는 특유의 공포감, 긴장감을 중간중간 유발한다. 보통 재난 영화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쓰이는 빛과 조명이 <반도>에선 죽음의 신호로 상징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세피아톤, 무채색 계열의 화면 색감은 <월드워Z>나 <매드맥스>에서 발견했던 묵시록적 분위기를 충분히 자아낸다. <부산행> 때 참여했던 스태프들 상당수가 <반도>에도 합류했기 때문인지 이런 미술과 세트, 분장 등은 충분히 몇 걸음 더 나아간 결과물을 보이고 있다.

결국 <반도>의 가장 큰 경쟁자는 <부산행>일 수밖에 없다. 강동원 역시 지난 언론 시사회에서 속편에 출연하는 배우의 부담감을 드러낸 바 있다. <부산행>의 성과 이후 한국형 좀비 장르물, 일명 'K 좀비물'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언론과 평단에서 심심찮게 인용했지만 정작 연상호 감독은 여기에 갇히길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들의 사과
 
 영화 <반도> 관련 사진.

영화 <반도> 관련 사진. ⓒ 영화사 레드피터

 
그 증거 중 하나가 <반도>에 담긴 메시지다. 몇몇 평론가나 매체에서 신파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개연성이 충분한 신파는 영화적 미덕이 될 수 있다. <부산행>이 오히려 장르적 쾌감에 어색한 신파가 곁들여져 다소 불협화음이 났다면 <반도>는 좀 더 세련되게 녹여낸 모양새다.

무조건 가족, 소중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웠던 <부산행>에 비해 <반도>는 희망을 잃은 정석이 오히려 준과 유진을 통해 희망을 얻고, 반 미치광이가 된 채 살아가던 김 노인은 결정적인 순간 아이들에게 깊은 사과를 전한다. 

결국 <반도>는 어른 혹은 강한 남성으로 대표되던 보호의 주체성을 뒤집어 놓는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정석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고, 김 노인은 어른을 대표해 지옥같은 세상을 이뤄낸 잘못을 시인한다. 

좀비 바이러스를 이길 힘은 결국 희망 바이러스다. 영화 말미 준의 강렬한 대사 한 마디가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건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언론 시사회 당시에도 연 감독은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연상호 감독 작품 대부분의 주인공이 참 못났고 지질했다. 상업영화든 독립 애니메이션이었든 때론 연약하고 나약한 주인공이 외부 환경에 휘둘리다 모종의 선택을 하는 식이었다. 보통사람의 세계를 장르와 함께 변주하는 연상호의 다음 행보를 또다시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줄평: 보다 확장된 한국형 좀비물, 충분히 준비됐다
평점: ★★★★(4/5)

 
영화 <반도> 관련 정보

연출: 연상호
출연: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제작: (주)영화사 레드피터
제공 및 배급: NEW
러닝타임: 115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7월 15일
 
반도 강동원 좀비 이정현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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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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