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사장이 제게 14년 선배거든요. 제가 선배랑 같은 배를 타고 싶습니다 얘기는 할 수 있어요(...) 당연히 (일을) 같이 얘기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였어요. 손석희가 '너랑 해보겠다'고 하는데, 누가 '싫습니다. 저는 뭐 오해 받을 일 안 하겠습니다'고 말하는 이런 기자가 대한민국에 있어요?

당연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손석희인데? 저도 당연히 영광이었죠. 이런 인물인지 몰랐으니까." (2019년 1월 31일, 김웅 기자 채널A 인터뷰 중에서)


본인 표현대로라면,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에게 공갈을 치려고 했던 프리랜서 김웅 기자.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제기한 손석희 JTBC 사장 관련 의혹에 대해 횡설수설 제대로 된 설명조차 내놓지 못했던 김 기자와 달리, 당시 손 사장은 미셀 오바마의 유명한 워딩을 인용하며 법적 대응을 포함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한 프리랜서 기자의 저급함
 
 손석희 JTBC 대표이사에게 과거 차량 접촉사고 등을 기사화하겠다며 채용과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가 8일 오전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에게 과거 차량 접촉사고 등을 기사화하겠다며 채용과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가 8일 오전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저급했던 것은 김웅 기자만이 아니었다. 김 기자는 이른바 '여성 동승자' 등 설령 사실일지라도 사생활 영역에 해당하는 무책임한 폭로전을 이어갔고, 종편 등 적지 않은 매체들은 물론 보수 유튜버들이 김 기자의 충실한 스피커 역할을 자임했다.

선정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의혹보도와 진실 공방이 이어졌고, 녹취록을 공개한 김 기자가 손 사장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어찌됐든 손 사장은 경찰 수사와 이어진 송사의 당사자가 돼버렸다. 깔끔하고 신뢰감을 줬던 '언론인 손석희'의 이미지는 그렇게 서서히 추락하고 있었다. 특히 '태블릿 PC' 보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했던 극우 유튜버들에게, 김웅 기자의 의혹 제기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10월 JTBC의 모그룹인 중앙그룹이 4.15 총선 이후 앵커 하차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손 사장은 같은해 12월 23일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개편 2주 전 앵커 교체가 알려진다. 나의 하차는 1년 전부터 논의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후 손 사장은 시기를 앞당겨 올해 1월 <뉴스룸> '신년토론' 진행을 마지막으로 앵커 직에서 하차했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당분간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손 사장이 의외의 장면에서 다시 호출됐다. '박사방 사건'의 주범인 '박사' 조주빈씨의 입을 통해서였다.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말씀 드립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3월 25일,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나서던 조씨가 내뱉은 이 두 마디에 나온 손석희란 이름 석 자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경찰은 조주빈이 '손 사장과 손 사장 가족을 해치기 위해 김 기자가 자신에게 돈을 지급했다'고 허위로 손 사장을 협박을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손 사장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조씨의 협박에 금품을 갈취당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손 사장 측에 따르면, 자신을 흥신소 사장이라고 밝힌 조씨는 법적 분쟁 중인 김 기자의 이름을 대며 텔레그램으로 접근했다. 조씨는 김 기자가 손 사장과 손 사장의 가족을 위해할지 모른다는 내용으로 협박을 했고, 손 사장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금품을 건넸다.
 
"위해를 가하려 마음먹은 사람이 K씨(김웅)가 아니라도 실제로 있다면 설사 조주빈을 신고해도 또 다른 행동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에 매우 조심스러웠고 신고를 미루던 참이었다. 혹여라도 누군가가 가족을 해치려 하고 있다면 조주빈 하나만 신고해서는 안 될 일이라 근거를 가져오라고 했던 것(이다)." (손 사장 측 입장문 중)

누군가 선정적인 의혹제기로 법적 분쟁 중인 김 기자의 이름을 대며 접근했다. 가족을 볼모로 김 기자가 협박을 해왔다며 이를 중간에서 무마해주겠다는 조씨에게, 손 사장은 금품을 갈취 당했다. 'N번방 사건'과 자신에게 쏠린 세간의 관심을 어떻게든 돌려고보자 손 사장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범죄를 털어놓은 조씨.

구체적인 정황을 따져보기도 전에, 경찰 수사 초기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가 잇따랐다. 얼마간 조씨의 의도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김 기자와의 법적 분쟁 와중에 접근한 조씨의 협박에 즉각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손 사장의 대응을 문제 삼는 지적까지 나왔다.

일방적인 피해자인 손 사장이 다시금 불미스런 입길에 오른 상황이었다. 당시 손 사장은 김 기자와의 법적 분쟁 와중에 업무상 배임, 협박, 명예훼손, 무고 등의 혐의는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폭행 혐의만 300만 원의 약식명령이 청구됐다.

반면 김 기자의 공갈미수 혐의는 1심 판결을 기다리는 도중이었다. 그리하여 최초 의혹 제기로부터 1년 반이 흐른 8일, 김 기자가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앞서 검찰은 1년 6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김 기자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게 '앵커 손석희'를 잃었다
 
 폭행·협박 등 의혹을 받는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2019년 2월 17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폭행·협박 등 의혹을 받는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2019년 2월 17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잡초로 연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이름을 더럽히는 일은 하지 말자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개인 손석희를 취재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여론의 향배를 좌지우지한 공인의 도덕성을 취재했다."

<연합뉴스> 등 이날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김 기자의 최후 진술 중 일부다.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도, 검찰도 지적한 대로, 김 기자는 자신의 혐의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었던 셈이다.

재판부도 양형 이유에 대해 "피고인은 풍문으로 알게 된 주차장 사건과 본인의 폭행 사건을 갖고 피해자를 수개월 간 협박해 JTBC 채용과 관련된 재산상 이익 또는 2억 4천만원을 교부받고자 했다"며 "범행의 정황과 수법에 비춰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김 기자가 2018년 8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손 사장을 지속적으로 협박했다고 밝혔다. '2017년 차 사고를 기사화하겠다'거나 '폭행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3억 4천 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요구했고, 이어 JTBC 기자직 채용을 요구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구형에 앞서 "피고인은 공갈미수 혐의를 부인하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비록 범행은 미수에 그쳤지만, 행위가 장기간에 걸친 점 등을 고려해 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성 동승자' 의혹 역시 근거 없는 의혹제기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손 사장이 차량 접촉사고를 냈을 당시 견인차를 운전한 기사가 동료와 나눈 농담을 김 기자가 부풀린 것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한낱 풍문을 근거로 손석희라는 유명인사에게 접근, 폭로성 기사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하고 채용을 얻어내고자 했던 김 기자를 언론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는 항상 최악을 가정합니다. 산술적으로 (구속될) 가능성 50%. 법률적으로도. 굳이 세분해서 얘기하자면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겠지만, 6월에 도출될 재판 결과에 따라서 여러분들을 당분간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

구속되기 한 달여 전인 지난달 3일, 김웅 기자가 유튜브 채널 '김웅기자 live'의 <김웅 기자는 가둬도 취재는 계속됩니다>란 영상에서 한 주장이다. 김 기자는 작년 4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손 사장에 대한 비방을 이어갔고, 후원계좌까지 열었다.
어떠한 지면도 얻지 못한 김 기자가 유튜브를 통해 스피커를 획득한 꼴이었다.

심지어 지난 3월 조주빈씨가 구속된 직후 게시한 <조주빈이 손석희 혼외자 암시했지만 불신>이란 영상에서 김 기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협박과 의혹제기, 그로 인해 일파만파 커진 언론보도로 인해 조씨가 손 사장에게 접근하는 일종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김 기자는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았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취재에 있어서 성역을 설정하지 않습니다. 성역을 설정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성역을 설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어디에 있어도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 있어서 취재는 계속하겠습니다. 취재와 보도가 제 이유입니다. 그러니, 제 존재의 불빛이 꺼지지 전까지는 계속 취재하고 계속 보도하겠습니다.

이미 취재 다 했고, 이미 사실 관계 온전하게 다 정립돼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당 인물들을 적시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제가 22년 동안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이런 더러운 내용을 취재한 적은 없었습니다." (<김웅 기자는 가둬도 취재는 계속됩니다> 영상 중에서)


반성은커녕 '더러운 내용' 운운하며 손 사장을 향한 비방을 이어간 김 기자의 범죄가 미친 영향은 비단 손 사장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 기자의 근거없는 의혹 제기와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한 언론들, 극우보수 유튜버들 모두 김 기자의 표현대로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손석희'를 좌초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작게는 JTBC의 손실이 맞다. 손 사장의 앵커직 하차 이후 <뉴스룸>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현저히 떨어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태블릿 PC 보도까지, 손 사장이 이끌어온 <뉴스룸>이 한국의 미디어 지형도에, 방송사 메인뉴스에 끼친 영향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언론인 손석희'를 상대로 한 김 기자의 범죄는 역설적으로 한국 언론의 선정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도 걸러내지 않았고, 그저 손 사장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클릭 장사'에 몰두한 언론도 적지 않았다. 허나 김 기자의 1심 판결 이후, 이런 과거 보도를 반성하는 언론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그렇게 한국사회는, 평일 밤 카메라 앞에서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다"던 '손석희 앵커', '언론인 손석희'를 잃었다.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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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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