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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추억

꿈인가? 누가 날 세차게 흔들어 깨웠다. 눈을 번쩍 떴다. 커다랗고 하얀 눈알 두 개가 하늘에서 내려 보고 있다. 너무 놀라 억 소리도 안 나왔다. 귀신인가 했더니 엄마다. 엄마는 억지로 날 일으켜 앉혔다. 이게 뭔 일일까, 어안이 벙벙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왜 이러는 거냐 물을 수도 없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옆에 누운 두 동생들은 여전히 꿈나라에 있었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는 내 앞으로 뭔가를 툭 던졌다. 내려다보니 손목시계였다. 갈색 가죽 끈에 앙증맞은 황금빛 시계 알이 달린. '저게 왜?'.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아득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건 분명히 내 가방 속 깊숙한 곳에 있어야 했다. 아무도 그걸 몰라야 했다. 그런데 지금 엄마와 나 사이에 떡하니 놓여 있다. 이건 무슨.

나는 순간적으로 사태를 파악했다. 범죄 행각의 꼬리가 밟힌 거였다, 엄마의 예리한 촉에 걸려든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화산이었다. 언제든 용암이 불길을 뿜는다. 엄마 앞에선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바로 무릎을 꿇었다.

"엄마 잘 못 했어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나는 대성통곡하며 죄를 인정했고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가자. 내가 도둑놈을 키웠구나. 너 같은 놈은 감옥소 가서 고생 좀 해야 한다."

하필 집에서 가까운 곳에 경찰서가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거였다. 거기에 사형장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12시만 되면 일대가 귀신천지가 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엄마는 날 거기로 데려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날 처넣겠다는 거였다. 곤봉 찬 순경과 은색 수갑과 교수대와 머리 푼 귀신들이 내 머릿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일단 들어가면 끝장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죽자 사자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정없이 등짝을 내려쳤다. 소리조차 못 낼만큼 아팠다. 아득한 공포심에 눈물도 말라버렸다. 아버지는 직장이 멀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집에 오셨다. 집안 식구들이라야 네 살 박이, 두 살 박이 동생들이 전부였다. 날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심상찮은 소리에 눈을 뜬 동생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아이 셋이 통곡하니 집안은 삽시간에 초상집이 됐다.

"이제 겨우 여덟 살짜리가 도둑질이나 하고 다닌다니, 난 그런 아들 도저히 못 키운다. 감옥소 가자, 얼른."

그렇게 대문께까지 끌려 나왔다. 막 대문을 넘어서려는 그 때였다. 마침내 구세주가 나타나셨다. 문간방 아줌마였다. 아, 그 분이 있었다. 유난히 날 예뻐해 주시던 분이다. 한글도 깨쳐 주시고 가끔 군것질도 챙겨주시던 마음 따뜻한 천사아줌마다. 그 분이 나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뛰쳐나와서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나부터 끌어안으셨다.

아줌마의 개입으로 일단 경찰서 연행은 중단됐다. 더 이상 매질도 없었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재판이 시작됐다. 나는 죄인 모드로 엄마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아줌마는 그 옆 배심원석에 앉으셨다.

"더 긴 말 안 하겠다. 오늘은 문간방 아줌마가 말려서 겨우 참겠다. 하지만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일 생기면 넌 당장 호적에서 파서 감옥소 보낸다. 그리 약속할 테냐?"

일단 경찰서를 가지 않는다니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네" 하고 대답했다. 일종의 기소유예였다. 하지만 한 번 더 같은 짓을 저지르면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진짜 간다는 거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이제 다신 안 그러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했다.

그 시계는 큰집 누나 거였다 누나 방 경대 위에 가죽 끈을 받침대 삼아 시계 알이 바짝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나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갖고 싶었다. 정말 죽도록 갖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그걸 내 가방 깊숙이 숨기고 탈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누나의 제보로 수사는 시작됐다. 엄마의 수사망은 촘촘했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내 생애 첫 범죄는 그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도둑질 하지마라를 두 번 강조하신 이유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빈집이나 자동차의 유리가 깨진 걸 그냥 방치하면 그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는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빈집이나 자동차의 유리가 깨진 걸 그냥 방치하면 그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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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절도 영재였던 셈이다. 아주 일찌감치 암흑의 세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시도가 허무하게 실패한 뒤 바로 은퇴했다. 그 이후론 다시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감옥소는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거기 갈 걸 뻔히 알면서 같은 죄를 짓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엄마의 조기교육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그 악몽 같은 범죄의 추억이 다시 떠오른 건 지난주 교리수업(7월5일)에서였다. 십계명을 읽는데 내 전과와 같은 범죄가 두 번이나 언급된 거다. 제7계명과 제10계명에서다. 첫 번째는 아주 명쾌하다. '도둑질을 하지 마라'다. 마지막도 마찬가지다.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마라'. 남의 소중한 무언가를 훔치거나 빼앗는 건 그만큼 위중한 범죄라는 가르침이었다.

십계명에서 하느님께서 하지 말라는 짓은 세 가지다. 살인과 절도와 간음이었다. 그 중 가장 악질적인 범죄는 물론 '살인'이다. 극악무도하다. 하느님은 그럴 그냥 '하지 마라'고 한 번 으르고 마셨다. 그런데 절도와 간음은 두 번씩이나 안 된다고 경고하셨다.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마라하셨다. 절도가 그리 나쁜 죄였나? 간음은 우리나라에선 범죄도 아닌데. 왜?

남이 고생하고 노력해서 어렵사리 모아 놓은 재산을 훔쳐가거나 남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는 건 정말 나쁜 짓이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나처럼 절도는 누구든지 저지를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도 그렇게 된다. 남의 아내를 범하는 간음도 그렇다. 그 죄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사랑'이라 미화한다. 남편보다는, 아내보다는 지금의 그와 그녀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항변한다.

절도와 간음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고, 죄책감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흔한' 범죄다. 그래서 나처럼 철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잇단 경고에 '왜?' 하고 의심을 품기까지 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쩌면 바로 그 점을 우려하셨는지도 모른다. 너무 쉬우니까, 그래서 남들도 다 하니까, 죄 같지도 않으니까 너도 나도 따라 저지를 수 있어 두 번씩이나 말리신 게 아니냐는 말이다.

루돌프 줄리아니는 과거 미국 뉴욕시장이었다. 그는 1994년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의 취임 일성은 범죄율 감소였고 그 일환으로 '낙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뉴욕시를 지저분하게 했던 스프레이 낙서들을 지웠다. 쓰레기 투기, 무임승자 같은 기초생활질서 위반단속도 강화했다. 그런 경범죄를 엄하게 단속했다. 그 결과 재임 8년 동안 살인사건은 67%나 줄었다고 한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빈집이나 자동차의 유리가 깨진 걸 그냥 방치하면 그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는 이론이다. 낙서하고 돌아다녀도 괜찮다는 인식이 바로 강력범죄로 이어진다는 거다. 하느님께선 일찍이 그걸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 그래서 자칫 하찮이 보이는 절도와 간음은 정말 해선 안 된다고 두 번 씩이나 강조하신 건 아닐까.

나는 어머니 덕으로 일찌감치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요즘도 남의 돈 쉽게 알고 남의 재물 탐내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호시탐탐 남의 주머니만 노린다. 그런 인간들은 진짜 부자들, 저보다 잘난 사람들에겐 다가가지도 못한다. 정말 가진 거 없는 사람들, 안 그래도 힘 든 사람들, 착해 빠진 사람들만 노린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잡아다가 우리엄마 등짝 스매싱을 먹여주고 싶다.

태그:#십계명 , #범죄, #도둑질, #감옥소, #루돌프 줄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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