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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현대사를 연구하는 필자가 아는 국제정치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세계다. 여기서 약소국은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한다. 조연은 없고 주연만 있는 드라마와 유사하다. 강대국이란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 나라이고, 그러한 수단을 갖지 못한 나라가 약소국이다. 한국은 냉전 시대에 국제정치의 이러한 현실을 피부로 느낀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해방 뒤 남북한은 전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개전과 종전 모두 소련과 미국이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크게 신경 쓰거나 걱정하진 않는 것 같다.

'국제정치란 강대국 간 게임'이란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보면, 다소 황당한 의문이 생겨난다. '미국은 정말로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는 것일까?'가 그것이다. 그러나 북핵 역사는 이런 의문이 황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시작된 북핵 개발 역사는 우여곡절 끝에 북한 핵무기 보유로 귀결됐다. 무려 다섯 번에 걸친 미국 행정부는 하나 같이 북핵에 대해 구두로만 우려를 표명해왔다. 리비아와 이란에는 종주먹을 들이대던 미국이 북핵 경우에는 압박을 가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놔뒀다. 왜였을까? 북한엔 다행히도 저주받은 검은 선물, 석유가 없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 이유를 중국에서 찾는다. 냉전 이후 동북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미국의 '주적', 즉 최대 경쟁자는 중국이다. 바꿔 말해, 중국은 미국의 국제정치적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북핵 문제에서도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요소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북핵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의미가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북핵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데 이용할 유용한 수단이다. 사드가 이를 입증하는 훌륭한 증거라고 본다. 북핵에 대한 방어라는 명분으로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가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중국이 '북한을 겨냥해' 한국에 배치한 사드에 불같이 화를 낸 이유도 모두가 안다. 중국을 압박하는 모든 수단을 찾고 있는 미국이, 북핵 문제라는 불확실성을 굳이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북핵 존재는 미국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가설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시점이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백악관은 예정보다 일찍 종료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현 시점에서 아무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백악관은 예정보다 일찍 종료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현 시점에서 아무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EPA/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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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장대로 미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을 원치 않는다면, 한국은 이제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영혼 없는 북미 대화에 더는 환상을 갖지 말자. 미국의 의중은 알 만큼 안다.

위대한 미국이라는 허상에 눈먼 유권자,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통해 이익을 도모하는 '매파'와 군수산업이 지배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한국의 이익을 따로 골라내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이제는 중국을 단순한 북한 파트너로 치부하지 말고 그들 의중을 알려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미국 이익이 곧 한국 이익이었던 시절은 30년 전에 끝났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한 손에 드는 것은 한마디로 몰역사이다.

냉전은 끝났다. 북한의 패색이 짙은 한국전쟁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중공군'의 나라는 이제 한국 최대교역국이 돼가고 있다. 역사는 쉼 없이 흘러간다. 중국과의 관계는 갈수록 깊어지는데 한미일 군사동맹을 어정쩡하게 유지하는 이중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용선씨는 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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