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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 간 카드 배송자로서 실무를 수행했다. 카드를 배송하는 것도 본인이 받느냐 대리인이 받느냐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진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배송한 카드가 총 400장이었다. 한 장당 모두 1500원이면 총액이 60만원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대리인이 받는 경우도 있다. 60만원이 모두 생계에 도움이 된다면 좋지만 아니다. 이 돈에는 교통비, 식사비, 간식비 등이 포함돼 있다.

나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배송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배송하는 경우에는 유류비도 포함돼 있다. 식비와 유류비 등등을 포함해 20만 원 정도를 공제해야 순수입이다. 그러면 약 40만 원이 남는다.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가장이라면 이 돈으도 살림을 잘 꾸릴 수 있을까.

조용히 책상에 앉아 한 달간 시간의 흐름을 추적하여 생생한 계산을 해 봤다. 기본급도 없다. 배송에 소용되는 이동 수단도 본인이 준비해야 한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은 카드 명단을 받을 수 있는 패드와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카드 배송에 얽매여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도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건이라도 더 배송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탄 배송 기사는 신호를 위반하고 인도를 마구 달린다. 차로를 종횡무진하며 때로는 지나가는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한 건이라도 더 배달을 해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 간다는 입장에서 되새겨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일함으로써 초래하는 끔찍한 사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라고 한다. 이건 좀 어딘지 모르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에서 기본 시급이 정해져 있다면,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고정된 수당에서 건 당 배송비를 부여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 달 간의 배송 체험기는 나에게 세상 보는 눈을 더 깊게 만들었다.
 한 달 간의 배송 체험기는 나에게 세상 보는 눈을 더 깊게 만들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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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체험 중 제일 무서웠던 것은 코로나19 확진자 집에 전화를 하고 배송 갈 때였다. 상대방이 '나는 자가격리자니 카드를 우편함에 넣고 가라'고 말했다. 물론 떨어져 있어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또 만난 적도 없어 괜찮은데, 왜 그런지 그 집 앞에만 이르면 마음에 묘한 긴장이 앞섰다.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들면서 배송인들의 내면에도 이직이라는 묘한 바람이 불었다. 여러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나도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가 코로나에' 이런 야릇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앞으로 나가는 발길을 멈추고, 사람을 피해가는 것도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친구에게 전화를 두 번 할 것도, 한 번만 한다. 음식점에서도 편안히 앉아 밥을 먹기보다 조용히 혼자 먹는 것이 더 긴장감을 덜어준다. 좁은 공간보다 바람 잘 불고 넓은 공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한 달 간의 배송일은 나에게 세상 보는 눈을 더 깊게 만들었다. 모두가 70년대 80년대보다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 끼 밥을 풍성하게 먹기보다는 검소하게 먹어야 하는 현실을 목격해야만 했다.

화려하고 높은 건물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호사스러운 것 같아도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태그:#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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