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무서운 이야기를 수집하는 심령연구가 오다지마는 신예 배우 하루카가 한밤중에 발소리를 듣는 괴이한 경험에 흥미를 느낀다. 하루카의 남자친구 데쓰야는 청혼하기 전에 같이 살 곳을 알아보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집을 방문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전학을 온 여고생 키요미는 같은 반 아이들의 꾀임에 넘어가 '고양이집'이라 불리는 폐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키요미는 흰옷을 입은 여인을 본다.

1995년. 아들 도시키를 키우는 키요미는 시궁창 같은 삶을 전전하고 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흰옷을 입은 여자는 그녀에게 들러붙어 있다. 사회복지사 아리야스는 학대를 당하는 도시키를 구하고자 나선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후 비어있던 저주의 집에 출산을 앞둔 부부가 모두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사를 온다. 그들에게 새로운 비극이 시작되자 오다지마, 하루카, 아리야스는 저주의 집으로 향한다.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주온>(2000)은 <링>(1998)과 함께 1990년대 말부터 2000대년 초반 사이에 전 세계를 강타한 일본 호러붐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두 영화는 모두 강한 원한을 품은 '원혼'이 자신과 접촉한 자들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었지만, 화법은 사뭇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원혼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링>은 귀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과거의 호러 전통에 충실했다. 반면에 <주온>은 원혼이 공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출몰하여 사람을 죽이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주온>의 공포는 저주의 집에 들어간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과 접촉했던 가까운 사람들까지 마구잡이로 죽이는 '파격성'에 기인한다.

<주온>은 <주온-극장판>(2002), <주온-극장판 2>(2003), <주온-원혼의 부활>(2009), <주온: 끝의 시작>(2014), <주온: 더 파이널>(2015),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그루지>(2004), <그루지 2>(2006), <그루지 3>(2009), <그루지 2020>(2020) 등 시리즈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동어반복을 거듭하며 신선함을 잃어버렸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카야코와 토시오는 어느새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주온: 저주의 집>은 넷플릭스가 새롭게 제작한 <주온>의 오리지널 시리즈다. 각본은 일본의 대표적인 공포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링> 시리즈, <여우령>(1996)의 시나리오를 쓰고 <공포>(2010), <헌티드 파크>(2019)를 연출한 바 있는 타카하시 히로시와 <링> 시리즈와 <주온> 시리즈를 비롯해 <검은 물 밑에서>(2002), <노로이>(2005), <절규>(2006) 등 일본의 굵직한 공포 영화에서 기획, 제작으로 활동한 이치세 타카시게가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했다. 연출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로 2018년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일본영화 베스트 10에 올랐던 미야케 쇼 감독이 맡았다.

<주온: 저주의 집>은 <주온> 시리즈의 후속작이지만, 앞선 작품들과 차이점이 많다. 먼저, 카야코와 토시오에 의존하는 깜짝쇼를 탈피했다. 대신에 저주의 집에 발을 들였던 사람들이 정신적인 불행에 시달리며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긴 호흡으로 그린다. '1부: 원혼이 깃든 집', '2부: 어둠 속을 걸어갈 때', '3부: 유리창에 비친 여인', '4부: 저주의 고리', '5부: 지워진 기억', '6부: 다락방에 있는 그것은'까지 회당 28분 남짓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 가능했던 연출이다.

비디오판 <주온>과 극장판 <주온>은 시간순서 또는 기승전결을 벗어나 인물별로 이야기 순서를 마구 뒤섞는 특이한 구조였다. 전체를 보고 난 후에 다시 맞추어야 비로소 하나의 서사가 완성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주온: 저주의 집>은 다르다. 기본적으론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구조이나 몇몇 장면에선 저주의 집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 놓는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주온: 저주의 집>은 비디오판 <주온>의 10년 전을 다룬 프리퀄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종속되어 있진 않다. <주온: 저주의 집>은 "'주온'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사건들은 모두 어느 주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었다."란 설명으로 시작한다. 앞선 시리즈의 이야기들은 변형된 조각으로 극에 투영되어 있다. 심지어 <주온> 시리즈의 가장 중심인 카야코와 토시오의 죽음이 다른 인물, 다른 이야기로 극에 나타날 정도다.

구체적인 시간 배경은 <주온: 저주의 집>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특징이다. <주온: 저주의 집>은 1988년(1부, 2부)으로 시작해 1994년(3부)과 1995년(3부, 4부, 5부), 그리고 1997년(6부)을 시간적인 배경으로 삼았다. 저주의 집과 얽힌 사건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TV 화면을 빌려 그 시기에 일본을 뒤흔들었던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1988)',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 납치 살인사건(1988)', '마쓰모토 사린 사고(1994)'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1995)', '사사키바라 사건(1997)' 등 엽기적인 살인 사건들을 보여준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나열하는 건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첫째, <주온: 저주의 집>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둘째, 저주의 집을 실제 일본 사회와 긴밀히 연결했다. 바꾸어 말하면 '저주의 집'을 하나의 공간을 넘어 '일본 사회'로 보았다.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일본의 1988년은 쇼와 시대(1926~1989)의 마지막으로 일본의 거품 경제가 끝나고 헤이세이 시대(1989~2019)에 불어 닥친 '잃어버린 10년(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일본 경제 불황)'을 예고하는 전조로 가득했다. 이후 세기말까지 일본엔 오컬트 열풍이 불었고 각종 엽기 범죄가 증가했다.

이 시기를 다카하시 도시오 와세대 대학교 문학부 교수는 저서인 <호러국가 일본>에서 '시대의 경계선'이라고 정의했다. 일련의 엽기적인 살인 사건들을 통해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허구성이 드러난 시기로 해석한 것이다.

"현실 문제를 해석하고 설명하며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 왔던 '상식'의 근간이 의미를 잃고, 그 결과, 현실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뭉쳐 놓은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가정이, 아이들이, 주부가, 집단이, 회사가, 그리고 경제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끝없이 변형(괴물화)되면서 내적으로 파괴되기 시작되었다."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주온: 저주의 집>은 저주의 집에 얽힌 사연들과 사건들을 시대의 사건들과 연결 지어서 보길 요구한다. 그 유사성 속에서 저주의 집이 보여준 죽은 자의 공포와 실제 현실이 보여준 산 자의 공포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려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곧 현실을 반영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주온: 저주의 집>은 망각을 경계한다. 극 중에서 심령연구가 오다지마는 저주의 집에 계속 사람들이 오는 현상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번 사건은 곧 잊힐 겁니다. 또 사람들이 살겠죠."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은 왜 이런 이야기를 수집하세요?" 그는 쉽사리 답을 못한다. <주온: 저주의 집>은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오다지마는 저주의 집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동시에 저주의 집과 관련하여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일을 기록하여 책으로 내놓는다. 그의 책이 저주의 집 사건을 환기해주었듯 <주온: 저주의 집>은 살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주온: 저주의 집>은 오다지마를 통해 "기억하고 기록하라"라고 말한다.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주온: 저주의 집> 극 중 한 장면 ⓒ 넷플릭스


<주온: 저주의 집>은 인과 관계가 뚜렷하지 않다. 저주와 관련하여 명확한 서사를 내놓지 않는다. 저주의 집을 통해 시대와 사회의 공기를 그릴 뿐이다. 카야코와 토시에의 활약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긴다. 실제 나오는 장면은 없다시피 하다. 과거 <주온> 시리즈를 기대해선 안 된다.

<주온: 저주의 집>은 연속성을 가지면서 독립성도 지닌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리고 일본 사회를 '저주의 집'으로 은유한 사회성 짙은 호러다. 무한 반복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일본 호러 장르에 <주온: 저주의 집>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다. 현실 세계의 호러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라고. 그것을 호러 작품으로 발전시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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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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