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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물 파는 곳입니다.
▲ 인천 삼산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내 청과동 청과물 파는 곳입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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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10여 분 내의 거리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있다. 처음 그곳을 찾은 것은 10년 전이었다. 무척 가까운 거리지만 지금까지 그곳에 가본 총횟수를 따지면 10번도 안 된다. 그것도 주로 남편이 이끌어서 따라갔을 뿐이다. 물건을 사 올 생각을 한다면 버스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차를 가지고 가면 됐지만, 혼자서는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길눈 어두운 사람이라 한 번 길이 어긋나면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당황하게 된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목적지를 찾고, 가기도 전에 주차는 수월할지, 사람 많고 복잡해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나올 때에 헤매지는 않을지 여러 가지를 염려하기도 했다.

또, 평상시에 많은 양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도매시장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여러 핑계를 댔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해서였다. 이곳저곳을 무작정 돌고 돌아 물건을 사야 하고, 순서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이 먼저 주문을 하곤 했다. 또, 물건을 사면 아무렇게나 넣어 주는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힘들게 들어 날라야 하는 쇼핑 방식도 불편했다. 때문에 혼자서는 전혀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재난지원급 지급 이후로 재래시장이나 동네 작은 가게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니 본격적으로 재래시장을 다니게 되었다. 몇 번 가니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누이가 보내 준 깨도 시장에서 짜서 기름으로 만들었다. 시장을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꽤 즐길 수 있을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과일이나 채소를 넉넉히 사자고 말했던 터라 남편은 도매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이끄는 대로 두말없이 차에 앉아 있었다. 운전대를 잡을 때의 마음과 달리 조수석에서는 맘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시장 입구부터 늘어선 차량의 행렬과 시장 주변을 둘러볼 수도 있고, 물건들이 풍성하게 진열된 모양이나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들어왔다. 싱싱한 물건에 시끌벅적한 시장 구경을 하며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느껴보자 마음도 먹게 되었다.
 
채소 코너
▲ 인천 삼산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채소 코너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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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몇 번 와 본 것이기에 전체적인 시장의 규모를 가늠해보지 않았는데 이번엔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큰 건물 안으로는 탁 트인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오밀조밀 구획을 나누어 자리 잡은 가게들이 있었다. 상호 없이 번호판만 나란히 걸려 있는 그 밑으로 가득 쌓인 물건들과 다닥다닥 자리 잡은 가게 아닌 가게들이 빼곡했다.

그런 큰 건물이 세 동. 각각의 건물들은 다른 종류를 파는 전문 상가였다. 배추나 열무 등의 김치거리 파는 곳, 마늘과 고추와 양파, 오이와 호박 같은 채소를 파는 동, 그리고 청과물을 파는 곳이 한 동 있었다. 경매가 끝나고 물건이 많이 빠졌어도 동네의 시장에 비하면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박물관의 색다른 전시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이번 방문은 이상하게 마음이 들떴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3~4시경. 새벽부터 시작하는 도매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문을 연 곳보다 닫은 곳이 많았다. 도매 전문 시장이었지만 휴일에 장을 보러 나온 개인 손님들을 상대하는, 남은 물건을 소매로 처분하려는 가게들만 주로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소매 판매도 파장 직전이라 가격이 쌌다. 시장이나 동네 채소가게처럼 조금씩 팔지는 않았지만 많은 양을 저렴하게 판매했다. 그간 이곳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속상할 정도였다. 마지막 남은 채소 뭉텅이를 도매값도 안 되는 가격에 사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열무 4단에 2000원. 한 달은 넉넉히 먹을 수 있는 김치의 재료였다. 과일도 비슷했다. 참외 한 박스에 1만 원, 1만 5000원. 동네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가격이었다. 

마지막 물건을 처분한 아주머니는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남겨진 물건 없이 오늘 하루의 일을 조금 일찍 마무리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물건을 산 나도 역시 고맙다고 대답했다. 동네 가게나 가까운 시장에서 만날 수 없는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게 되었으니 저절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마늘 파는 곳
▲ 인천 삼산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내 마늘 파는 곳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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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물건을 사다가 시장을 가면 그 분위기가 말로 명확하게 할 수는 없지만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모두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같은 품목을 판매하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짚이지 않았다. 이곳은 동네의 가게나 시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그들이 늘상 취급하는 거래 단위에 비해 작은 양을 판매하는 것에 대한 상인들의 무심함이랄까. 작은 양을 대하는 마음이 다른 곳과는 다르게 넉넉함이 느껴졌다.

도매시장 구경도 하고 장보기도 마치고 나오다 보니 주변에는 식당 부자재 전문 상가도 몰려 있었고, 정육 상가도 몰려 있었다. 대단지의 아파트 정문과 바로 연결된 곳에 위치한 도매시장이라니. 새로운 세상처럼 보였다. 채소와 과일만이 아닌 온갖 생필품을 도매로 구입하는 것이 가능한 곳. 나도 모르게 근처에 사는 사람은 장보기가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장을 자주 찾게 되며 대형 마트보다는 시장이 푸근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중이다. 필요한 것을 하나씩 떠올리고 그것을 파는 곳을 찾아간다. 좌판에 널린 것을 오래 들여다보고 서로 다투어 주문하는 틈바구니에서 물건을 고른다. 계산을 마치면 다시 사야 할 것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몇 곳을 그렇게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 보면 양손 가득 들고 오는 묵직한 재미가 있었다. 이젠 동네 시장하고는 또 다른 도매 시장도 마치 내 스타일처럼 편하게 다가왔다. 이러다 시골 5일장 7일장을 쫓아다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이가 드니 동선을 고려하면서 빠르게 물건을 선택하고 떠밀리듯 줄 서서 한꺼번에 계산하고 다시 밀려 나오는 쇼핑은 부담스럽고 마음까지 지치게 하는 것 같다. 천천히 돌아보고 사람들 표정도 살피고 여기저기 물건도 비교하며 보는 재미까지 충족하는 느긋한 장보기가 몸에 맞는다. 아마도 이런 변화 때문에 도매 시장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런 편안함은 재난 지원금이, 살아온 시간이, 혹은 나이가 만들어 준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골에 대해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전원주택을 마련해서 살고 싶다는 말을 남편에게 가끔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은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돌려서 대답한다. 시장도 옆에 있고, 대형 쇼핑센터와 백화점, 영화관도 있고, 병원이나 공원, 도서관이나 시청, 경찰서도 가까이 있다며. 그 말에는 반박할 것도 없이 동의한다. 하지만 전원주택이 아니라면, 이제는 최적의 입지조건에 도매시장도 넣어야 할 것 같다.

태그:#도매시장의 맛, #살기에 편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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