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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으로 예적금을 신청하면 받을 수 있는 추가금리 1%를 받지 못하는 세대, 키오스크 출현 이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지 못하는 세대, 기차표를 끊기 위해서는 역에서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야하는 세대, 얼마 전까지도 마스크 재고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려면 발품을 팔아 직접 약국에 가서 물어봐야 했던 세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늙는다는 건, 억울한 일이 많아진다는 뜻일까?

얼마 전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하여 자가격리 중이던 80대 어르신이 자가격리 해제 전 코로나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불과 사흘 만에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했다. 증상이 전혀 없어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셨지만, 폐는 이미 하얗게 손상되어 있었다고 한다.

평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바라는 기도 후 내가 느꼈던 감정은 뜻밖에도 '억울함'이었다. 만일 이 어르신이 80대가 아닌 중장년이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을까? 30년 젊으셨더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그림자가 당신의 몸을 갉아먹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셨을까? 나이가 들면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사실조차 왠지 억울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 가을, 가을은 독서의 계절 아니겠는가 싶어 책이나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회사 근처 도서관에 대출증을 만들러 갔다. 어릴 적에는 대출 장부에 수기로 책의 제목과 이름을 적어서 책을 빌리곤 했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도서관 회원가입부터 대출, 반납의 모든 과정이 디지털화된 지 오래다.

인터넷으로 회원가입 신청을 하고, 도서관에서 확인 과정을 거친 후 대출카드를 받았다. 이제 원하는 책은 대출이 가능하다니 아직 책 한 장 펼치지 않았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백발의 어르신이 책을 정독하시는 모습에선 운치와 낭만이 느껴진다
 백발의 어르신이 책을 정독하시는 모습에선 운치와 낭만이 느껴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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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는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많다. 백발의 어르신이 두꺼운 돋보기 안경에 의지하여 한 장 한 장 책을 정독하시는 모습에선 그 나름의 운치와 낭만이 느껴진다.

두텁게 쌓인 당신의 연륜에도, 아직 난 늦지 않았다는 듯, 아직 배울 게 많이 남아있다는 듯 책을 읽으며 다른 이의 지식과 지혜를 보태려는 모습은 나에게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을 준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을 뵈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대출카드를 발급받던 그날, 한 분의 어르신이 도서관 직원에게 책을 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계셨다. 도서관 직원은 인터넷으로 회원가입을 해야 대출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며 "저쪽에 컴퓨터가 있으니 회원가입 하고 오세요"라고 사무적인 말투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회원가입까지는 내 업무가 아니라는 듯 직원은 전혀 도와줄 기색이 없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당황한 채 쭈뼛거리고 계셨다. 한눈에 봐도 할아버지는 인터넷이 익숙지 않으신 듯 보였다.

이 상황이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는지, 그날 할아버지는 과연 대출카드를 받으셨을까, 여전히 도서관을 이용하고 계실까, 요즘도 문득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내가 나서 회원가입 하는 걸 도와드렸어야 됐나 싶다가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제3자가 대신 해드리기에는 너무 많은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일이다 싶은 마음이 계속 오간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내가 그 광경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친절하지 않은 직원에 대한 '화'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이가 들면 책 한 권 대출조차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억울한 일이 많아지는 일인가 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늙고 허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노인이기에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 소외와 차별이 당연한 걸까?

아니, 당연하지 않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건 개개인 능력치의 문제가 아니다. 느리고 더딘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이다. 물론 돈이 들고 시간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차별받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나는 가끔 내 노년을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올 텐데 과연 난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의 어르신들보다 더 큰 괴리감과 소외감으로 사회에서 뚝 떨어진 섬처럼 살고 있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바이러스에도 끄떡없을 만큼 건강한 몸으로, 다른 세대의 존중을 받으며 억울한 마음 따위 발붙일 곳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면 참 좋겠는데 말이다.

그때쯤이면 노인들을 그대로 인정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려나. 노인들도 공평한 기회를 갖고 약자임에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이 오려나.

뉴스에 '소외없는 디지털 세상'을 위해 고령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다양한 방안을 수립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부디 방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정착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금부터라도 어르신들의 억울함이 줄어드는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태그:#늙는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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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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