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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당시 여수 개표소의 투표지분류기
▲ 투표지분류기 4.15 총선 당시 여수 개표소의 투표지분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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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개표에 사용하는 투표지분류기의 제어용PC에서 랜카드를 제거한 건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이는 그 이전 공직선거에서는 투표지분류기에 대한 해킹의 위험성이 있었음을 알려주기에 논란이 예상된다.

4.15 총선 이후 일부 유명 보수 유튜버들이 '개표조작'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가운데 선관위가 개표에 사용하는 '투표지분류기'의 해킹 가능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4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4.15 총선 조작 논란, 미베인 보고서와 분류기' 편에서는 중앙선관위가 지난달 28일 개표 시연회를 열었을 때 컴퓨터 사이버 보안전문가 김호광씨에게 '해킹의 위험이 있는지' 살펴보게 의뢰하였다. 중앙선관위는 개표시연회에서 4.15 총선에 사용한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 노트북을 해체해 보여주었다.

그 과정을 살펴본 보안전문가 김호광씨는 "물리적 랜카드가 다 빠져 있어서 소프트웨어에서도 랜카드가 잡혀 있더라도 동작하지 않는다"며, "통신할 수 있는 모듈이 빠져 있어서 결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중앙선관위 선거2과 유훈옥 과장도 "저희가 이 (투표지분류기) 시스템을 도입할 때 제조사가 ○○전자 PC인데 이걸(투표지분류기)를 오프라인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이거(투표지분류기)를 주문 제작할 당시에 무선랜카드를 제거하고 (납품하게 했다)"고 말한다.

<스포트라이트>는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 납품 업체인 ○○전자 관계자에게서 "'무선 장치를 제거하고 납품해 달라'는 선관위 요청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고 당시 견적서로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16일 MBC <PD수첩>도 4.15 총선 '[대해부]개표조작설' 편에서 18대 대선 개표 당시 투표지분류기 해킹을 주장한 다큐 영화 <더 플랜> 내용이 현실 가능성 있는지 다뤘다. <PD수첩>은 "(영화 <더 플랜>은) 조작 프로그램을 담은 외장하드를 투표지분류기 컴퓨터에 꽂아 개표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개표가 조작됐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더 플랜> 주장을 검증 취재한 바 있는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가 투표지분류기의 해킹 가능성을 일축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보여줬다. 여기서 최 기자는 "결국 이런 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컨트롤해서 해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18대 대선) 당시에 여기 개표기에 연결됐던 노트북은 통신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만약에 이게 가능했다면 통신이 가능했다는 증거가 어느 한 곳에서라도, 하나라도 나와야 된다. 그런데 하나도 나온 게 없다"고 말한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 노트북의 랜카드를 대체 언제부터 제거했을까? 18일, 중앙선관위 선거2과 ICT팀 한 관계자에게 "18대 대선 당시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 노트북에서 무선 인터넷이 가능할 수 있는 랜카드를 제거한 상태로 납품 받았는지" 문의해 보았다. 그는 "그때는 (랜카드가) 장착돼 있었다. 저희가 시모스(CMOS, 채널이 다른 모스 집적 회로를 짜맞추어 구성한 칩)에서 사용할 수 없게 그거를 막았다"고 하였다.

이 직원에게 "그러면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 노트북에서 선관위가 랜카드를 제거한 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한 거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당시 공급 업체에서 제어용PC 노트북을 납품받은 후에 선관위가 랜카드를 직접 제거한 걸로 아는데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말씀하신 게 맞다"고 확인하였다.
  
제어용PC 노트북에서 무선 네트워크 장치 사용하지 않음을 설정하라는 중앙선관위의 지시 공문
▲ 무선 네트워크 장치 미사용 설정 제어용PC 노트북에서 무선 네트워크 장치 사용하지 않음을 설정하라는 중앙선관위의 지시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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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18대 대선 당시에 사용한 2006년, 2008년형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는 데스크톱이라 무선 네트워크 기능이 없었다. 다만 2010년형 제어용PC는 노트북 형태였는데 선관위는 시모스에서 무선 네트워크 기능 미사용으로 설정하도록 지시했다. 랜카드 자체를 제거하지는 않은 상태로 블루투스 네트워크와 무선 네트워크 연결 기능을 사용하지 않도록 시모스에서 설정한 거다.

당시 전국 253곳 구·시·군 위원회 중 29곳에서는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가 부족하자 해당 지역의 여러 업체에서 81대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PC를 임차해 사용하였다. 이들 업체와 선관위가 맺은 '임차 계약서'를 살펴보아도 랜카드를 제거한 상태로 납품하라는 내용은 없다.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어용PC 노트북의 칩셋을 제거하였는 여부를 알려달라는 민원에 대한 선관위의 회신
▲ 제어용PC의 칩셋 제거 여부에 대한 선관위 회신(2014년)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어용PC 노트북의 칩셋을 제거하였는 여부를 알려달라는 민원에 대한 선관위의 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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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둔 4월 21일, "(투표지분류기) 제어용 PC가 무선랜과 완전히 분리되려면 관련 칩셋이 제거되어야 하는데 이의 제거 여부"를 알려달라고 선관위에 정보공개 청구했다. 당시 선관위는 회신에서 "투표지분류기 제어장치는 인터넷이나 외부통신망, 무선 LAN접속이 차단되어 운영되고 있어 해킹이나 정보유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어 "쳅셋은 메인보드에 칩, 회로 등과 함께 통합되어 있어 이를 제거하는 경우 제어 장치의 정상적인 작동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제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킹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선관위는 선거 전 무선랜 카드를 직접 제거한 상태로 선거를 치렀다. 그 이후부터 선관위는 제어용PC 노트북의 납품 단계부터 수주 업체에 무선랜 카드를 제거한 상태로 공급하게 요구한다. 지난 4.15 총선에 사용한 투표지분류기 제작 제안 요청서(2017. 8) 내용에도 "장치연결 포트 외 유·무선, 블루투스 등 외부 통신기능 제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해킹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조치를 취한 거다.
 
2009년 투표지분류기 추가제작 제안요청서에 나오는 '실시간 전송 기능' 항목
▲ 투표지분류기의 "실시간 전송 기능" 항목 2009년 투표지분류기 추가제작 제안요청서에 나오는 "실시간 전송 기능"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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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관위는 지난 2009년 9월 USB 방식의 투표지분류기 484대(2010년형)를 추가 제작했다. 당시 제안요청서를 살펴보면 "(아) 분류결과의 실시간 전송"이란 항목이 나온다. 그 내용에는 "분류결과를 인터넷 전용망을 통하여 중앙선관위 서버로 전송할 수 있어야 함. ※ 운용프로그램 납품시에는 전송기능이 있는 프로그램과 없는 프로그램을 각각 납품하여야 함"이라 돼 있다.

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를 2002년 처음 도입했다. 당시 투표지분류기 개발·활용계획 공문에도 "개표결과의 실시간 전송기능"이란 항목이 들어 있다. 그 내용은 "개표가 완료된 후보자별 득표수(미분류투표지 집계수 포함)는 투표지분류기와 연결된 제어용PC에서 개표소에 설치된 개표관리 전산보고용 PC로 LAN으로 연결하여 공중망 또는 정부고속통신망을 통하여 중앙위원회서버(DB)에 전송하는 기능을 제공하여야 함"이라 적혀 있다.

이는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에 '실시간 전송 기능'이 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선관위는 2012년 18대 대선을 9일 앞둔 10일에 납품 업체 대표이사에게서 제안요청서에 나오는 '실시간 전송' 항목의 기능은 "실제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기능으로 귀 위원회 측의 요구에 의하여 기능을 구현하지 않았고, 따라서 전송기능이 구현된 프로그램은 납품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뒤늦게 받았다.

투표지분류기가 유·무선 인터넷망과 연결돼 해킹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음은 선관위의 투표지분류기 제작 제안요청서(2002년, 2009년) 내용에서 확인된다. 단 중앙선관위는 2009년 투표지분류기 추가 제작 제안서에 '실시간 전송 기능' 항목은 '담당자의 착오에 의해 포함된 사항'이라며, "해당 관련 기능을 제외한 채 본 계약 및 제작 납품이 이루어졌다"(2013. 7. 29 민원회신)고 밝혔다.
 
투표지분류기 추가 제작 제안요청서 결재자들.
 투표지분류기 추가 제작 제안요청서 결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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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과장 등 8명이 결재 서명한 공문서이고 제작비용만도 38억 7000만 원이 드는 사업 서류다. 더욱이 내용에 해킹 우려를 낳을 수 있는 항목이 들어 있음에도 '담당자의 착오에 의해 포함된 사항'이었다고 답변한 거다.

하지만 선관위는 해당 제안서의 기안자나 결재자들에 대해 어떠한 문책이나 징계를 한 바 없다. "선거2과에 향후 제안 요청서 작성시 문안 작성 등 관련 업무 처리에 있어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권고 조치하였다"고 밝힐 뿐이다(2014. 7. 18 민원회신).

이는 선관위가 투표지분류기의 '해킹 위험성'에 대해 상당 기간 안이하게 대처해왔음을 보여준다. 다행히 선관위는 2014년부터 투표지분류기 제어용PC에서 랜카드를 제거함으로써 해킹에 의한 개표조작 우려를 크게 줄였다. 지난 4.15총선 투표지분류기 해킹에 의한 개표조작 의혹에 대해 선관위가 제어용PC 노트북을 해체해 보여주며 '해킹이 불가능'함을 자신 있게 역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 <이프레스>에도 보냅니다.


태그:#투표지분류기, #개표조작, #4.15총선, #해킹,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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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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