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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나타났다."

정동원을 처음 봤을 때의 심정이다. 그 땐 열셋이었다. 지금은 한 살 더 먹었단다. 그래봐야 열넷이다. 애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목소리도 앳되다. 그 어린아이가 어른들이나 좋아하는 트로트를 부른다.

그냥 흉내만 내는 게 아니다. 기성가수 뺨친다. 어른들 틈바구니에서도 하나도 기죽지 않았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101명 중 무려 5등을 했다. 그만큼 잘 한다. 어떤 노래든 가리지도 않는다.
 
 보릿고개를 부르는 정동원. 보릿고개 원작자는 눈물을 터뜨렸다. 한 출연자는 '무슨 애가 그렇게 구슬프냐'고 물었다.
 보릿고개를 부르는 정동원. 보릿고개 원작자는 눈물을 터뜨렸다. 한 출연자는 "무슨 애가 그렇게 구슬프냐"고 물었다.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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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챙겨 본 건 아니다. 트로트를 즐겨 듣는 편이 아니었다. 시중에선 한창 화제였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TV를 켜 놓고 딴 일을 하는데 '누가 울어'가 흘러 나왔다. 배호였다.

배호가 누군가. 당대의 가객이자 희대의 로맨티스트다. 그는 트로트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그의 묵직한 저음은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린다. 그건 아무도 범접하지 못한다. 사후 50년이 되도록 그를 전설로 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배호에서 남진, 나훈아까지 마치 제 노래인 양

그런 분의 노래를 누가 부르는 걸까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린 애였다. 말도 안 됐다. 어른들, 심지어 내로라하는 가수도 따라 하기 힘들다. 예의 그 중후한 저음 때문이다. 그걸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았다는 아이가 부르고 있는 거다. 그것도 정말 잘 불렀다. 그렇게 구슬프고 처연할 수 없었다. 마치 제 노래인 양 했다. 직접 보고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었다.

흥미가 동했다. 인터넷에서 지난 영상들을 찾아 봤다. 제 손으로 골랐다는 레퍼토리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춘궁기 보릿고개부터 나라 잃은 젊은이의 한 많은 희망까지, 우리의 근대사를 섭렵하고 있었다.

그건 정동원의 증조나 고조할아버지 적 이야기다. 그걸 마치 그 시대에 살기나 했던 것처럼 불렀다. 보릿고개 원작자는 눈물을 터뜨렸다. 한 출연자는 '무슨 애가 그렇게 구슬프냐'고 물었다. 벤자민의 그것처럼 그의 시계도 거꾸로 가는 게 분명했다.

다음은 나훈아였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이별의 슬픈 예감이다. 우리가 헤어진다면 둘 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울 것이라 호소한다. 다분한 협박(?)조다. 애절함에 비장함까지 곁들여야 한다. 그걸 열세 살짜리가 불렀다. 이미 오래전에 떠난 여자도 돌아와 앉을 판이었다.

남진의 '우수'로 넘어 갔다. 제목부터 우울하고 서럽다. 어두운 밤에 들창가에 기대어 맺지 못할 인연과 사랑을 한탄한다. 빗줄기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남자의 심정, 그걸 그 작은 꼬맹이가 완벽하게 재현했다. '없던 한이라도 생기겠다'는 자막이 떴다.

그는 150살 먹은 사랑꾼이 분명했다. 그 엄혹한 시절을 겪지 않고서야, 엄청난 비극적 사랑에 눈물 흘려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노래를 그렇게까지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알았지만 거기엔 그의 친할아버지 영향이 많았다고 한다.

가정사때문에 유년기를 함께 지낸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기뻐하시고 대견해 하시는 모습이 좋아 트로트를 그리 열심히 불렀다고 했다. 물론 재능은 타고 났다. 그러니까 정동원이라는 이 시대의 괴물은 타고난 재능에 할아버지와의 교감과 사랑이 더 해 탄생한 셈이었다.

나처럼 음악에 문외한들도 어렴풋이나마 그의 강점이 뭔 줄은 알 것 같았다. 함께 경연했던 한 출연자의 혼잣말이 도움이 됐다. 그는 정동원의 노래를 듣고 '너무 정확하잖아, 어른들처럼 기교도 하나 없이'했다. 몇 번을 반복해 들어보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정동원은 그 나이답게 악보 그대로, 배운 그대로 노래를 부른다. 한 치 오차도 없다. 엇박자 같은 잔기술도 쓰지 않았다. 꺾기마저 그렇게 했다. 특히 가사 전달력은 완벽했다. 혀를 꼬거나 발음을 굴리지 않았다. 입모양까지 정확하게 만들며 한 자 한 자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시를 낭송하는 것 같았다.

패널 중 한 분은 '가사를 표현해서 잘 전달하는 것은 그만큼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건 정동원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자막이 필요 없었다. 눈을 감고 들어도 전곡의 내용이 고스란히 듣는 이들에게 전해졌다.

평소엔 잘 들리지 않던 부분의 가사까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게 이런 노래였어?' 하고 놀랄 때가 많았다. 젊은이들도 같은 경험을 한 듯했다. 평소 트로트를 싫어하던 그들은 기성세대 이상으로 환호를 올렸다.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3대가 열광

때마침 밖은 코로나가 활개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주 긴 방학 중이었다. 근데 '완전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제 또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인터넷이 난리였다. 본방사수가 지상과제로 떴다. 정동원 또래의 아이들도 열광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할아버지부터 막내손주까지 3대가 함께하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됐다.

그를 극찬했던 가수 주현미 식으로 말하자면 정동원은 그 자신이 소통의 달인이었다. 가사의 내용을 정확한 발음(언어) 그리고 표정과 손짓(비언어적 요소)까지 곁들여 듣는 이를 감동(설득)시켰다. 완벽한 소통의 공식이다.
 
 5월 24일 하동에서 열린 '정동원길 선포식'.
 5월 24일 하동에서 열린 "정동원길 선포식".
ⓒ 하동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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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세대 간 소통의 기폭제가 되었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막내손주까지 적어도 3대가 함께 그의 존재를 공유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건 일종의 가능성이다. 도무지 해결할 기미조차 없어 보였던 세대 간 갈등을 마침내 풀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세대를 뛰어 넘어 공유하고 공감할 '거리'만 있다면 그건 언제든 가능하다는 희망이었다.

세대 간 갈등이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요즘이다. 장년들은 주로 오프라인에서 '젊은 것'들을 힐난한다. 청년들은 그들대로 온라인 공간에 모여 그런 노인들을 비난한다. 서로의 언어는 몹시 거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이 혐오전쟁은 더 놔두면 사회 전체가 흔들릴 지경이다. 속히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차에 '짠' 하고 정동원이 나타난 거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거 키워 볼 만하다. 이 불씨를 꺼트려선 안 된다. 살려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섣불리, 억지로 하지는 말자. 그러면 잘 될 일도 망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자.

서로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어른들은 '라떼(나 때는)'부터 끊자. 쟤들도 알 건 다 안다. 시대는 바뀌었다. 젊은이들은 그 요상한 색안경부터 벗자. 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들은 오늘의 풍요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결코 벌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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