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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꽃 산소가는 밭둑 돌무더기에 분홍 달맞이 꽃이 피어 있다
▲ 달맞이 꽃 산소가는 밭둑 돌무더기에 분홍 달맞이 꽃이 피어 있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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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버지가 돌아신 지 36년째가 되는 해이다. 오랜 세월을 큰아들인 남동생 집에서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올케가 많이 아프다. 제사를 지내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고 다른 동생이 제사를 지낼 형편은 아니다.

우리 형제들은 다른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서로 불편하지 않게 아버지 제사를 이어갈까 생각하게 됐다. 간단한 마른 음식과 과일만 준비해, 산소에서 추모하는 식으로 제사를 간편하게 지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제사가 여름이라서 덥기도 한 까닭이다.

지난 12월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기 돌아가셨으니 어머니 제사도 큰동생네 몫이다. 하지만 이제 더 무거운 짐을 맡기는 건 마땅한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더는 힘들지 않아야 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고, 어머니는 이제 막 돌아가셨으니 형제가 음식을 간단히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겨울에 두 분 제사를 함께 모시기로 했다.

제사란 돌아가신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거나 죽은 이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의식이다. 가장 가까운 조상인 부모와 조부모에게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이 제사다.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하던 과거부터 뿌리 깊게 내려져온 일이지만, 전통을 다 지키기엔 현대의 생활 의식이 많이 달라져 힘들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꾸어지면서 사람들의 삶의 형태도 많이 변했다. 모두가 바쁘다. 여성들이 집에서 살림만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친정은 형제가 모두 7형제이다. 나이 든 나만 빼고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바쁘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제사를 모시고 서로 아끼면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제사 방식도 바꾸기로 했다.

아버지 기일은 며칠 후다. 그러나 일하는 형제가 많으니 다 모이기 위해 주말로 날을 잡았다. 선산 산소에서 형제들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전날 비가 많이 온다는 뉴스를 듣고 조금 걱정이 됐지만, 사전에 약속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진행했다. 모두가 일이 바빠서, 군산에 있는 여동생이 제사 음식 등을 간단히 준비했다.

산소에서 제사를 지낸 후 형제들과 함께 콘도에서 하루 쉬고 오기로 했다. 필요한 물품들을 사니 꼭 캠핑을 가는 기분이 든다. 많은 세월 동안 큰 올케가 제사를 지냈으니, 그 노고를 새삼 알게 되었다. 모든 일은 내가 경험해봐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올케에게 고마웠다. 지금이라도 짐을 덜어 다행일까. 간결하고 힘들지 않게 살아야 한다.

집에서 제사 음식을 만들고 복닥거리는 일은 긴장되고 부담스럽다. 오늘은 소풍을 가듯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향해 달린다. 마음마저 가볍다. 군산 집에서 1시간 30분쯤 차로 달리면 산소에 도착한다. 그런데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일 년에 한번 추석에 산소를 찾는 일을 매년 거르고 살았었다. 마음만 내는 되는 일도 나이 탓인지 자꾸 미루게 된다.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달맞이 꽃 돌무더기 분홍 달맞이 꽃이 피어 너무 예쁘다
▲ 달맞이 꽃 돌무더기 분홍 달맞이 꽃이 피어 너무 예쁘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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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산소 주변은 변했지만 길들은 여전하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밭에 가셨다.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길들이다. 산골 밭에서 막 캐낸 고구마를 냇가에서 씻어 먹던 추억까지... 마음 한편에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잊었던 조부모도 그립다. 마치 오랜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수십 년 추억이 남아 있는 부모님 고향을 찾아가는 길, 남다른 포근함을 느낀다. 논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고 반가이 맞아 주었던 아버지 모습도 그립다.

차를 산 밑에 주차하고 산길을 걸으니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밭두둑 풀숲에서 꿩이 푸드득 날아간다. 신기하면서 반갑다. 언제 봤던 꿩이었나, 잊고 있던 풍경이다. 산길 옆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운치를 더해 준다. 돌담 위에 피어 있는 분홍 달맞이꽃도 우리를 반기는 듯 마음을 환하게 맞아 준다. 아버지 제사라는 핑계 아니면 이맘때 이 계절에만 느끼는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진다.

산에 올라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인사 드리고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서 제사를 소박하게 지낸다. 향을 피운다. 부모님을 추모하고 옛일을 추억한다. 싱그럽고 푸르름이 가득한 공간에서 친근한 마음을 나눈다. 부모님 산소 아래 형제들이 사후 묻힐 납골 묘를 바라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오래지 않아 하나둘 모두 이곳에 묻힐 생각을 하니, 서글프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세상과 이별하는 게 순리이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프고 슬프다.

사람의 삶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간 제사를 산소에서 지내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 누구 하나만 희생하고 살 수는 없다. 다 같이 나누고 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 길지 않은 인생이다.

아버지 제사 때는 1박을 하고 형제끼리 친목도 다질 겸 쉬러갔다. 한가로이 물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차도 마시고, 지난 삶을 되짚어 보고, 사는 이야기도 도란 도란 나누었다. 새로운 제사 방식 덕분에 변화된 삶을 경험하고, 가족으로서 더 따뜻한 정을 느낀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밀한 속살을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세상에 안 계시지만 우리 형제는 매년 소풍을 하듯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어 낼 것이다. 추억 하나로 세상이란 바다의 파도와 풍랑을 헤쳐 나가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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