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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코카 스패니얼 강아지 '비니'를 입양했다. (자료사진)
 우리 가족은 코카 스패니얼 강아지 "비니"를 입양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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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가 우리 집에 온 건 2002년 5월이었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뜨거워지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축구 열기 못지않게 반려견 열풍도 뜨거웠다. 동물들이 출연하는 어느 방송도 그 유행의 배경 중 하나였다. 특히 그 방송에 출연하는 코카 스패니얼 '웅자'가 인기였다. 덕분에 우리 가족도 코카 스패니얼 강아지 '비니'를 입양했다.

우리 집에 온 비니는 첫날부터 우리 가족을 잘 따랐다. 가족들도 그런 비니를 좋아했다. 나의 귀가는 평소보다 당겨졌고, 주로 산에 가던 주말은 비니와 산책하는 날이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도 학교와 학원 갈 때를 빼곤 집에서 비니와 놀았다. 아내에게도 비니는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이었다.

비니가 집에 온 후로 가족들이 많이 변했다. 특히 집안일에 관심이 없었던 내가 비니 뒤치다꺼리에 푹 빠지게 되었다. 배변훈련이 필요했던 비니는 얼마간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때 비니가 똥오줌을 거실에다 저지르면 난 오물을 치우고 락스 청소를 했다. 나중에는 지문이 다 닳을 지경이었다. 비니는 털도 많이 빠졌다. 틈나는 대로 집안 곳곳의 털을 테이프로 찍어 내야 냈다.

빠르게 가는 비니의 시간

비니는 무럭무럭 자랐다. 강아지 시절의 개구진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비니는 얌전한 개가 되어갔다. 호기심은 그대로였지만 행동이 더는 천방지축 강아지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비니가 점잖아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강아지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 했던가. 비니는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비니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 '서서히'라는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비니가 늙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어느 주말이었다. 산책하려고 목줄을 챙겼는데 비니는 뭉그적거리며 현관으로 나왔다. 평소 목줄만 보면 뛰어나오던 녀석이었다. 아파트 주변 길을 걸으면서도 비니는 왠지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쳐다봤다. 녀석이 혹시 어디 아픈가 해서 바로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비니가 열 살이 넘었잖아요. 이제 할아버지예요. 무릎관절 치료제와 영양제 먹이고 찜질해 주면 나빠지진 않을 겁니다."

비니는 몸이 아프면서도 반려견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던 것이었다. 수의사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비니의 변화가 느껴졌다. 이도 안 좋은지 사료 먹는 속도와 양이 예전 같지 않았다. 우선 비니 사료부터 노령견용으로 바꿔주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비니를 더는 강아지로 보지 않았다. 사람보다 빨리 늙어가는 생명으로 바라보았다.

비니가 열세 살 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제일 먼저 집에 들어왔는데 현관 앞에 비니가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들이 귀가하면 비니는 현관에 마중을 나왔었다. 그런 녀석이 안 보이는 것이다. 난 가슴이 철렁했다.

"비니!" 난 크게 불렀지만 녀석은 나타나질 않았다. 내 가슴은 크게 뛰었다. 거실을 둘러보니 한 귀퉁이에 녀석이 누워 있었다.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비니?" 나직이 불렀다. 녀석은 꿈쩍하지를 않았다. 설마? 난 다가가서 비니를 슬쩍 건드렸다.

그제야 비니는 놀란 듯 화들짝 일어났다. 녀석은 내가 현관 여닫는 것도 모르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기척도 못 느꼈다. 비니는 소리를 못 듣게 된 것이다. 그 후로는 앞도 잘 못 보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비니의 몸은 점점 늙어갔다.

기억을 잃어가는 반려견을 돌본다는 것

어느 날 밤이었다.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쓱 쓱 쓱 쓱 하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인가 해서 나가보니, 비니가 거실 바닥을 혀로 핥고 있었다. 녀석이 듣질 못하니, 다가가서 살짝 흔들었다. 비니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바닥만 핥았다.

한참 지나서는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쉬지 않고 돌았다. 내가 몸으로 막아서자 비니는 벽 구석으로 가더니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 백태가 낀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헐떡였다. 마치 머리 위에 뭔가가 보이는 것처럼. 비니는 밤새 집안을 배회했다. 그날 이후로 매일 그랬다. 비니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것 같았다.

치매라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강아지 치매' 관련 게시물이 많았다. 증상도 비니랑 비슷했다. 우리 가족은 '설마 개가 치매까지 걸리겠어' 하며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개가 암에도 걸리는데 치매라고 안 걸리겠어요? 신체의 노화로 생긴 현상입니다."

열다섯 살 비니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개가 되었다. 녀석이 하는 짓은 진짜 치매에 걸린 노인이었다. 우선 식탐이 생겼다. 비니는 사료를 먹자마자 더 달라고 밥그릇을 발로 찼다. 그릇이 바닥을 시끄럽게 굴러다녀서 아내와 나는 사료를 조금씩 더 챙겨주곤 했다.

많이 먹는 만큼 비니는 많이 쌌다. 예전처럼 베란다에 놓인 배변 패드에 싸면 치우기라도 편했겠지만, 녀석은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었는지 패드 바깥에 싸기 시작했다. 그래도 베란다에 싸면 물청소하기라도 편했을 텐데. 나중에는 거실에다 싸기 시작했다.

비니는 엎드려만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먹을 건 먹고, 쌀 건 쌌다. 문제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용변을 보다가 그 위에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람이 집에 있으면 바닥도 치우고 몸도 닦아 줄 수 있지만, 만약 아무도 없다면? 비니는 오물 위에서 그냥 버둥대고 있어야 했다. 우리 집은 비니의 똥오줌 냄새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집안에 치매 가족이 있다는 불편은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였지만 이웃의 몫이기도 했다. 비니가 새벽에 돌아다니는 소리는 아랫집까지 들렸고, 비니의 똥오줌 냄새는 이웃집에도 흘러갔다. 당연히 민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이 이웃들에게, 관리사무소에 머리를 숙이는 날이 많아졌다.

마지막 일 년 비니는 경련으로 고생했다. 뇌전증과 같은 발작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어났다. 몸을 크게 떨며 비니는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고통스러워했다. 병원 치료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일 년여를 고생하다가 비니는 죽었다. 그날, 죽은 비니의 모습은 편해 보였다.
 
비니가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던 모습만 보던 가족들은 이제 녀석이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비니가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던 모습만 보던 가족들은 이제 녀석이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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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가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던 모습만 보던 가족들은 이제 녀석이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비니를 화장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청소를 했다. 비니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냄새를 날려버리려는 듯이.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비니 털을 보고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곤 했다.

우리 가족은 앙증맞은 외모와 귀여운 행동 때문에 강아지를 입양했다. 그리고 16년을 함께 살았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인이 되었고 30대였던 우리 부부는 50대를 지나게 되었다.

강아지 시절은 잠시였다. 우리 가족은 사람보다 빨리 늙어가는 비니 모습을 봐야 했다. 그리고 가족이었던 강아지, 막내였고 동생이었던 비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우리 가족은 비니에게 사랑을 배웠다. 사랑에는 길고 긴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배웠다.

6월 말이면 비니가 죽은 지 3년째다. 우리 가족 가슴 속에서 녀석은 아직도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천방지축 강아지로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노견, #치매 걸린 개,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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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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