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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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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장군은 신군부가 주도한 군사재판과 유신의 잔재인 대법원 판사들에 의해 사형판결을 받고 사흘만에 형이 집행되었다. 그는 유언대로 '제4심' 곧 역사의 심판, 하늘의 심판을 믿었고, 그래서 웃으면서 죽음(죽임)의 형장에 설 수 있었다.

제4심은 여전히 진행중인가,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가.

10ㆍ26거사를 뒤엎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박정희의 '정치적 사생아' 전두환 일당의 패악도 단죄받지 못하고,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김재규장군과 그 부하들의 행적은 여전히 '시해범'의 멍에를 벗지 못한 상태이다.

동양사회에서 하늘(天)은 정의의 심판관으로 인식되어왔다. 현실의 학정에 시달리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하늘이 악정을 물리치고 선정이 나타나게 될 것을 믿으며 견뎠다. 하늘은 역사와 동의어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역사의 심판'이 공정하리라 믿었다. 종교의 신은 믿지 않아도 '역사의 신'을 믿는다는 지식인도 많았다.

40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많이 변하고 바뀐 듯 하지만, 변하지 않는 부문도 적지 않다. 10ㆍ26거사에 대한 인식도 그중의 하나다. 강고한 '박정희체제'가 남긴 유산 때문이다.

박정희를 기점으로 전두환ㆍ노태우ㆍ이명박ㆍ박근혜로 이어지는 반세기의 권력사는 정치ㆍ사법ㆍ언론ㆍ학계ㆍ종교ㆍ재벌의 거대한 기득권 동맹체제를 형성하고 '박정희 신화'를 생산ㆍ유통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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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장군은 '아비를 죽인 패륜아', '과대망상증 환자', '내란수괴', '충성경쟁에서 밀리자 우발적 살인', '부정축재자' 등 온갖 음해와 패설로 색칠되었다. 저들은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는 조롱하고 모욕하고 저주하고 이죽거리면서 무력화시키고, 기득권체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 4ㆍ15총선은 이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박정희와 비슷한 시기에 많은 독재자들이 공포정치를 하다가 쓰러졌다. 칠레의 피노체트,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캄보디아의 폴 포트, 우간다의 이디 아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짐브바웨의 로버트 무가베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박정희처럼 딸 같은 여성들과 진탕한 술판에서 총맞아 죽은 사람은 없었다. 김재규장군의 거사 이유 중에는 이같은 지도자의 부도덕ㆍ탈선에도 한 원인이 있었다. 박정희 추종자들은 이 대목에서도 부끄럼을 알아야 한다.

흔히 김재규장군의 10ㆍ26거사를 고대 로마시대 공화정을 회복시키고자 은인이며 직속 상관인 카이사르를 살해한 부르투수에 비견된다. "나는 카이사르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로마를 더 사랑한다"는 부르투스의 행위는 바로 김재규의 심경으로 이어진다.

그가 과연 권력욕에서 거사를 했을까, 그랬다면, 궁정동 거사 뒤 자기의 수족이 있는 중앙정보부를 놔두고 왜 생소한 육군본부로 갔을까. 군사재판의 과정에서 쑥 지켜봤던 변호인들은 김재규가 간경화 말기였다고 증언한다. 집권욕이 아니라 남은 생명을 던져 유신의 핵을 제거했다는 진정성이 입증되는 대목이다.
 
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 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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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운명을 짊어지는 용기를 가지는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다." ㅡ 헤르만 헤세.

지난 세월 우리는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투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막상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주역에 대해서는 '건너 뛰었다'. '국가원수 살해'라는 도덕적 감성과 함께 유신세력과 족벌언론의 세뇌 탓이 컸다.

신문을 통해서 김재규 피고의 재판을 단편적으로만 전달받은 일반 국민은 김재규 씨가 느꼈던 고민 - 즉 대의(大義)를 위하여 소의(小義)를 버려야했던 고민 - 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으로써 김재규피고를 직접 대하고 또 법정에서 김재규 씨의 진술에 직접 대하여 온 많은 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한결같이 김재규 씨에게 감동하고 감명하고 감루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그들은 마음에 깊이 느끼는 바 있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소식을 여러분을 통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뜻하지 않던 분들로부터 들었다. 정치에 전연 관계를 가지지 않은 분들로부터도 들었고. 과거에 유신정권에 가깝다고 알려졌던 분들에게도 들었다. (주석 1)


이제 역사의 시각으로 10ㆍ26을 바라 볼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헌법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민주혁명. 둘째, 국민저항권사상의 발로. 셋째, 다수 국민의 희생을 예방하는 정당방위. 넷째, 민족사의 전통인 불의에 맞서는 의거. 다섯째, 살신성인 정신. 마지막으로 역사정의의 구현이다.

사육신으로부터 발원하여 의병, 안중근의거, 의열투쟁,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면면한 역사정의의 측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시대적 가치로 공유해온 국민이라면 반민주 유신독재의 심장을 멈추게 한 김재규장군(과 그의 부하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진 빚을 갚은 때가 되었다. 그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유언대로 '장군'으로 불러주고,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모란공원으로 유해를 이장하여 부하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는 일이다. '10ㆍ26거사의 진실찾기'는 역사학자ㆍ언론인의 책무이지만, 일반 국민도 모르쇠로 지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제4심'의 주도는 하늘의 대행자인 의로운 사람들의 몫이다. 따라서 김재규장군의 '재심'과 '복권'은 민주시대를 사는 깨어 있는 사람들의 '빚 갚음'이며 '역사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10.26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재심청구 기자회견'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강신옥 변호사, 유족 대표 김성신(김재규 여동생의 장남), '김재규 재심 변호인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재규를 변론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10.26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재심청구 기자회견"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강신옥 변호사, 유족 대표 김성신(김재규 여동생의 장남), "김재규 재심 변호인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재규를 변론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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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장군에 대한 재심의 요건은 충분하다. 최근 JTBC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10ㆍ26재판 당시 김재규 육성공개' (2020년 5월 21일 방영)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방송은 총 128시간 분량의 육성 테이프 53개를 공개하였다.

핵심은 군사재판이 재판관들의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것이 아니라, 뒷켠에서 조종하는 대로 판결했다는 점이다. 헌법은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정 뒷문 법무감 방에 권력의 실세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녹음을 하거나 쪽지를 보내는 등 재판에 개입하였다. 이 방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1,2심의 군사재판이 신군부의 의도대로 유죄 판결을 하고, 대법원이 '정찰제 판결'을 한 이상, 재심은 불가피하다.

김재규장군 교수형 집행으로 40년이 지난 올 5월 26일 유족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청구의 가장 큰 이유는 공판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JTBC가 취득한 김재규장군의 육성 녹음테이프만 살펴도 공판조서의 허위는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인격을 평가함이 있어서 우리는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직책을 2년 10개월 동안이나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일반시민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는 일, 중앙정보부장으로써 중요 기관의 기관장이면서도  자기 기관의 업무를 축소시키려고 노력하여 왔다는 일등은 무언 중에 김재규 씨의 인격과 그의 성향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10ㆍ26거사 후에 공모자로 재판을 받아온 부하들이 한결같이 김재규 씨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였다는 일, 그리고 그처럼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관의 책임자로 거의 3년 간이나 있었는데도 부정을 하였거나 치부한 증거가 전연 나타나지 않았다는 일, 그리고 과거에 그의 측근으로  일을 하여 온 인사들이 한결같이 그를 칭송하였다는 일 등은 인간 김재규가 덕망이 높은 인격의 소유자라는 결론을 가지게 한다. (주석 2)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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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하왕조의 폭군 걸왕(桀王)을 축출하고 은나라를 세운 탕왕, 은왕조 말기 타락한 주왕(紂王)을 쳐서 주(周)나라를 창건한 무왕(武王), 이 두 역성혁명을 들어 제나라의 선왕이 물었다.

"신하로서 그 군주에 반역한 것이 타당한가?"

맹자는 서슴없이, 말했다.

"인(仁)을 해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이미 군주가 아닙니다. 일개 야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개 야인인 걸과 주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군주를 반역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선왕이 다시 정승의 직책에 대해 물었다. 맹자의 답은 이랬다.

"주군이 큰 과오를 범하게 되면 간언을 합니다. 이것을 몇 번 거듭해도 듣지 않으면 주군을 폐하고 다른 임금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직책입니다." (주석 3)


2000년도 더 지난, 봉건군주시대 맹자의 폭군방벌사상이다.


주석
1> 이정식,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 인간 김재규』, 63쪽, 1980.
2> 앞의 책, 65쪽.
3> 임종삼 편역, 『맹자』, 102쪽과 107쪽, 문원각, 198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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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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